여전히 우리 집.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엄마가 떠난 지 3개월. 그제야 집구석 구석을 쳐다보고 마주한 느낌이었는데 이 집이 이렇게 낯설었나 싶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물어봤던 것 중 하나는 "그 집에서 계속 살 거야?"였다. 추억도 많지만 힘든 투병의 시간을 보낸 곳이니 다들 새롭게 출발을 하라며 이사를 하는 게 좋지 않겠다는 말들을 많이 했는데, 나는 사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손길이 닿아있는 마지막 장소이기도 했고, 나이 든 앙꼬가 제일 안정감을 느끼는 곳도 이곳이었기에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움직이고자 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새롭게 출발을 하려면 마무리를 해야 할 텐데 마무리를 시작도 안 해보고 급하게 생각 없이 하고 싶지 않았고 이곳을 나가는 건 앙꼬를 보내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겠다 싶었다. 급할 것 없이 내 순서와 내 시간에 맞춰서.


이 집에서의 시작을 엄마가 했다면, 끝과 정리는 조금은 단단해진 내가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오기까지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리 가족은 아빠의 사업을 정리한 후 경제적으로 많은 타격을 받았다. 어릴 적 아빠는 큰 기업의 이사로 재직 중이었고, 부족함 없이 굉장히 풍족하게 살았다. 그러다 아빠가 퇴사를 하고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IMF 영향으로 사업이 실패로 이어지면서 오랜 시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몇 년이 지나 부모님의 이혼이 결정되었고 엄마를 따라 나온 나는 정말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사는 집에서 나와 친구들 집을 돌아가며 신세를 지기도 했고, 전업주부로 살았던 엄마는 밤낮없이 공장이나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거의 반년 이상을 산거 같은데 그 후에 큰 외삼촌이 외국으로 들어가시게 되면서 우리가 외할머니 집으로 들어갔었다. 하지만 엄마가 볼 때 10대 애들이 뭉쳐있으니 걱정이 되었는지 나는 근처에 집을 얻어 사촌 오빠나 동갑인 사촌과 함께 따로 생활하게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우리는 사촌들과 함께 생활했는데 각자 독립을 하면서 지금 이곳이 시작부터 엄마, 나, 앙꼬. 우리 셋이 사는 첫 집이었다. 엄마가 이 집에 들어올 때 엄청 좋아했고 애정도 많이 쏟아서 그런지 그냥 집 자체가 엄마 같다. 여기저기 다 엄마다. 그래서 아무리 촌스러워지고 낡아도 지금 당장 바꾸고 떠나기보단 고쳐가며 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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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집과 친해지기 위해 시작한 건 '청소'였다

생각보다 청소할 곳도 망가진 곳도 엄청 많다. 오랜 시간 동안 신경쓰지 못한 공간들이니 구석구석 장난 아니다. 엄마나 나나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았고, 투병이 시작되면서 세심하게 신경 쓸 수 없었으니 청소를 하면서도 괜히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정말 깨끗해질까? 싶은 집은 조금씩 깨끗해지고 있다. 사실 만족할 만큼 깨끗해지진 않아서 진짜 다 엎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차라리 이사를 갈까 싶다가도 잘 정리하고 나가려면 버텨보자 싶기도 하고 리모델링이나 뭐 이런 것도 생각을 해봤는데 어차피 이 집은 나에게 나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내려놨다.


거슬려도 이렇게 투박하고 오래된 모습도 좋다. 신경 써주지 못한 만큼 가꾸고 가꾸다가 정말 홀가분하고 후련한 마음으로 집과 안녕을 하고 싶다. 아마도 엄마가 아꼈던 공간을 청소하고 정돈하고 마무리를 짓는 것으로 엄마를 떠나보내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집도 물건도 은근 엄마의 빈자리를 아는 건지 여기저기 고장 나고 망가지는 게 많아졌다.


세상 튼튼해 보이던 우리 집은 엄마의 손이 닿지 않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여기저기 망가지고 고장 나고 난리가 났다. 처음엔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 모른다. 멀쩡하던 베란다 빨래 건조대가 망가지질 않나, 화장실 수전이며 변기 부품들까지 망가지고 방 조명들이 돌아가면서 망가지는 바람에 다 수리를 하고 바꿔야 했다.


엄마가 키우던 화분들은 아무리 때맞춰 물을 주고 해도 결국 다 죽어버렸고 잘 사용하던 가구들은 망가지더니 하물며 드라이어도 2번이나 바꿨다. 진짜 내가 살면서 이렇게 뭐가 망가지는걸 처음 경험해봐서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괜히 집도 물건들도 사람을 알아보나 싶어 진짜 우울해질 뻔했다.


그래도 이제 집도 나도 적응을 해 나간다.

망가지고 고장 나고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집에 대한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던 거 같다. 돌보는 것.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나만의 방식과 루틴이 생기기 시작하고 비우는 법도 자연스럽게 깨닫기 시작한다. 이제 진짜 '엄마'에서 '나'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느낌이다.


사실 청소라는 게 두려움에 먼저 시작한 하나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도저히 무언가 정리할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엄마의 옷이나 사용한 제품들을 정리하려고 시작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등 거부반응이 너무 강해서 먼저 시작할 수 있는 걸 찾다 보니 그게 '청소'였던 것 같다.


우선 주변의 내 것부터 청소를 하기 시작하니 마음이 안정되기도 했고 치워야 하기 때문에 버릴 수 있는 마음도 생겨났다. 그러다 조금씩 '엄마의 물건' 들도 열어보기 시작했고 정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완전하게 정리가 된 건 아니지만 차근차근 나만의 순서와 시간대로 움직이고 있다.


근사한 나만의 공간 따위는 나에게 아직 없다. 예쁜 가구와 모던한 느낌의 집을 꾸며보고 싶기도 하지만 투박하고 낡은 이 상태 이대로 조금은 더 유지해보려고 한다.


유일하게 남은 공간이다.

나와 엄마, 앙꼬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나는 이곳에서 엄마를 잘 보내고 있고, 엄마의 흔적도 천천히 잘 정리해나가고 있다. 언젠가 이 집을 나가게 될 때는 더 단단한 모습으로 나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언제나 말했듯이 나는 잘 해낼 것이다. 어디서든지.



아직까지도 나에게 이곳은 여전히 우리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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