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음' 님과의 대화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여행을 다녀와서 앙꼬와 극적인 화해를 한 후,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엄마를 보내고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지만 사실 아무리 내가 생각을 고쳐먹고 노력한다 해도 여전히 힘들 시간이니 빨리 이 시간이 지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시간만이 해결해준다는 말들을 믿어보고 싶었던 그때였던 거 같다. 물론 소용없었지만 -


생활하면서 별 문제는 없지만, 바꿔야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엄마의 명의'로 된 것들이었다. 집 계약자 명은 재계약 시즌이 엄마가 돌아가 시 전이라 미리 변경했지만 나머지는 다 그대로. 핸드폰, 인터넷, 각종 고지서, 통장 등등 사망신고 후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있으니 바꿔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놀랐던 건, 엄마가 투병을 했을 때 보다 일 처리가 되게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말도 명확히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발음이 명확한 답을 요구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을 영상통화도 안되고 굳이 휠체어에 태워서 눈앞에 데리고 와야지만 처리를 해주겠다는 일들을 겪어서 그런지 '사망진단서' 하나가 프리패스처럼 일처리를 빠르게 해 준다는 것에 괜한 실소가 나오기도 했을 정도였다.


각 은행에서 엄마 명의로 된 통장이 해지되었는지 확인하고, 각종 고지서와 관련된 부분은 전화를 통해 명의를 변경한다. 가족관계 증명서, 사망진단서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왠지 모를 씁쓸함은 또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일 테니 버릇처럼 '괜찮아 은영아. 괜찮아.'라는 말을 정말 자주 하기 시작한다.


괜찮다고 말해서 괜찮아지는 거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처음 해보는 일이니 상담센터에 전화를 해서 해지나 명의변경에 대해서 문의를 한다. 그럼 하나 같이 이유를 물어보는데 "엄마가 돌아가셨어요."라고 덤덤하게 말을 하는 나보다 상담사 분들이 순간 말을 못 하시고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설명을 해주신다.


어느 날 어떤 상담사분이 "마음이 너무 힘드실 거예요. 이 전화조차. 하지만 잘 이겨내시길 바라고 제가 혹여나 상담하는 과정 동안 마음의 상처를 드리지 않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시고는 전화를 끊었는데, 내가 경험해본 위로 중 가장 고마운 위로의 말 중 하나였다.


상담과정 동안 "네, 그렇군요."가 내가 한 답이 전부였다. 어차피 과정을 설명을 해주셨어야 하기에 크게 마음이 다칠 일도 없었는데 이 상담을 하는 자체가 힘들었을 거라고 알아주셨던 그분의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아마도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마음도 있는 거니깐.




어느 정도 일을 정리하고 남은 건 단 하나. 엄마의 핸드폰이었다.


엄마는 손을 움직일 수 있었던 여름. 돌아가시기 3개월 전에 이미 폰 속에 나와 사촌들에게 남기는 유서 같은 글을 남겨두고는 "내가 가면 사람들에게 보내줘. 그리고 너한테 남기는 글도 있으니 꼭 봐. 이게 내 유서가 될 것 같다."라고 거의 마지막에 나에게 알려줬다.


엄마의 장례식장이 정리된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엄마의 폰으로 가족들에게 그 글들을 전송했다. 참 말을 잘 듣는 건지 장례 첫날 눈물범벅이 된 모습으로 장례식장으로 돌아오고 있는 가족들에게 그 글을 보내고, 나에게 쓴 글을 그제야 확인한다.


말해 뭐할까. 심장을 누가 뜯어가는 느낌이다.


나에게 남긴 엄마의 마지막 마음을 다 보고 난 뒤 엄마의 핸드폰을 유심히 하나하나 보는데,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사진과 단체 톡방 외에 나와 나눈 톡과 문자만 남겨둔 엄마. 통화목록도 사진도 쓸 때 없는 건 다 지웠고, 내가 알아야 하는 것들을 정리해둔 글과 각자에게 남기는 유서 같은 글만 남겨두었다.


하나하나 이미 죽음을 준비하듯 깨끗하게 정리되어있으니 그걸 보는 딸의 입장에서는 엄마가 이걸 준비했다는 자체가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정말 차라리 어딘가 찢기고 부러지는 게 덜 아프겠다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준비성은 지금까지도 날 너무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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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여전히 엄마의 번호를 누르면 통화음이 가는 게 안심이 되는 건지 핸드폰 해지를 미루고 미루다 간 여행에서 이제는 미룰 수 없으니 해야 된다는 결심을 하고 돌아왔기에 서류를 들고 대리점으로 향했다.


대리점에 도착해 상황을 설명하니, 직원분들도 많이 해보셨을 일일 텐데도 순간 조용해지고는 일처리를 해주신다. 해지 신청서를 쓰는데 되게 마음이 안 좋다.


준비된 서류와 함께 제출하고 처리가 되기를 기다리는데 직원분이 "마음 안 좋으시겠어요. 고생하셨네요." 해주신다. 참 이게 뭐라고 코끝이 시큰한지 대답도 못했다. 해지를 마치고 나와 하늘 한번 쳐다보고 한숨을 크게 쉬고는 '괜찮아. 또 한고비 넘겼다.' 하고는 집으로 향한다.


그 후 꼬박 3일을 앓아누웠다. 간단한 거 같은 그 일은 3일을 앓아누울 정도로 너무 힘든 일이었다. 나에게는.




핸드폰 해지 후 한동안 엄마의 카톡 프로필은 달라진 게 없었다. 해지 후 바로 무언가 바뀌는 건가 싶다가도 그냥 이렇게 계속 남아 있다보다 하고 지내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의 이름이 '알 수 없음'으로 바뀌었다. 그걸 보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눈에서 떨어졌다. 충격으로 한동안 멍하다.


이제 여기서도 엄마를 볼 수 없구나.


필사적으로 살려보겠다 이것저것 해봤지만 아이디로 로그인을 해보려고 해도 휴대폰 인증이 필요했기에 불가능했고, 손이 떨릴 만큼 제정신은 아니고 충격이 커서 방법을 알았다 해도 못했을 것 같다. 근데 그게 뭐라고 충격을 받고 이거라도 살리고 싶었는지... 어느 정도 예상은 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엄마의 존재와 이름을 바꾸고 하는 과정들이 나한테는 엄마를 두 번 세 번 보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매일 엄마의 장례를 다시 치르는 느낌.


너무 당연히 해야만 했던 과정들이지만 딸의 입장에서는 너무 잔인하고 힘든 시간이다. 누군가와 이별이 아닌 죽음으로 인한 이별 후의 일들은 꽤 오랜 충격과 슬픔을 가져다주기에 작은 거 하나하나 다 서럽고 슬프고 그렇다.


엄마가 빠진 자리는 생각보다 너무 크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무도 공감해주지 못한다.


각자 부모와의 관계성은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일을 겪은 사람도 어느 정도 공감은 해줄 수 있지만 내가 겪는 모든 감정은 진짜 세상에서 나 혼자 느끼는 감정이다. 오롯이 혼자.


그리고 어느 정도 이럴 것이라 예상을 하고 준비를 해도 그걸 훨씬 뛰어넘는 감정들을 느끼게 되니 참 갈길이 멀다 싶고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공감해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엄마가 살아계실 때 썼던 내 핸드폰을 버틸 만큼 버티다가 사용이 어려워지기 전까지 바꾸지 못했다 대화가 지워질까 봐. 결국 엄마와의 대화를 다 캡처하고 따로 저장을 한 뒤에서야 핸드폰을 바꿨다. 그것도 몇 년이 지나서.


그리고 엄마의 깨끗한 휴대폰은 장례식 이후로 아직까지도 만지지 못하고 있다.


참 산 넘어 산이다.

엄마를 보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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