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꼬가 삐졌다.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일본 여행이 끝나가는 날 사촌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동생은 내가 여행을 하는 동안 앙꼬의 식사를 챙겨주기 위해 집에 잠깐씩 들르곤 했는데, 혼자 남겨져있는 녀석이 안쓰러워 동생집으로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언니, 안 그러던 녀석이 갑자기 서글프게 울더라. 그리고 털도 빠지기 시작하더라고. 너무 놀라서 늦은 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언니 집으로 다시 데려다줬는데 자기 자리에 가서 등을 돌리고 눕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았어."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처음이었다. 앙꼬의 이런 모습은.


워낙 동생을 좋아하고, 동생이랑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던 앙꼬였다. 일이 있어서 집을 비울 때도 꿋꿋하게 집을 지키고, 문제없이 지냈던 녀석인데 털이 빠지고 울었다는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여행을 오기 전, 호텔에 맡겨볼까 해서 고민을 했었지만 낯선 환경에서는 많이 불안해하는 녀석이라 주변 친구들과 동생에게 조금씩 시간을 보내줄 것을 부탁하고 떠나온 여행이었다.


집에 도착해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이 없고,

자리에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앙꼬.


망했다. 진심으로 앙꼬가 삐졌다.




집에 돌아와 한참 동안 앙꼬 옆에서 애타게 불러봤지만 요지부동. 결국 우선 해야 할 간단한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쌓여있는 먼지를 걷어내고 청소를 한다. 빨래를 돌리고 앙꼬와 관련된 것들도 청소하고 한참을 그렇게 종종거리고 나서야 자리에 앉는다.


여전히 앙꼬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옆에 붙어있거나 애교를 떨어야 하는 시간. 나는 조용히 다가가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앙꼬 옆에 누워서 앙꼬에게 코를 박고 한참 동안이나 앙꼬를 쓰다듬어준다. 그리고는 앙꼬한테 말했다.


"앙꼬야 미안해. 언니가 너무 언니 슬픈 것만 생각했나 보다. 언니가 너무 오래 안 와서 놀랐지? 엄마도 없어졌는데 언니마저 기다려도 안 오니깐 너무 놀랐겠다. 언니마저 없어진 게 아니야. 마음 정리가 필요해서 여행 다녀왔는데 평소보다 너무 길었던 거야. 미안해."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믿음이 있다. 적어도 이 녀석들이 조금은 알아듣고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한참 동안 앙꼬 옆에서 마음을 전한다. '언니마저 없어진 게 아니야.'라고.


앙꼬는 말을 알아들을 때 하는 행동이 있다. 귀를 파닥거리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하기 싫거나 마음에 안 들면 무시하거나 째려보곤 한숨을 쉰다. 등을 돌릴 때는 진짜 화가 나거나 삐졌을 때를 말한다. 계속해서 말하니 앙꼬가 귀를 파닥거린다. 하지만 여전히 쳐다보진 않는다.


앙꼬는 삐지면 정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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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쓰다듬어주면서 이야기를 한 후 "맘 정리되면 언니한테 알려줘" 하고는 자리에 가서 가만히 앉아 앙꼬를 기다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앙꼬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내 옆으로 온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한다. 앙꼬를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내 다리 위로 올라와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는다.


근데 이게 뭐라고 울컥하던지 한참 동안 말 한마디를 못했다. 사실 앙꼬가 털이 빠질 정도로 불안해했다는 것이 나에겐 너무 큰 충격이었다. 같이 산 세월이 13년이다. 그 긴 세월 동안 함께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평소 내가 외출을 하거나 떨어져 있어도 앙꼬가 불안을 느낀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우리였으니 앙꼬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충격이 말도 못 하다.


아무리 불안해도 나한테 저리 와서 안아달라고 할 녀석이 아닌데 얼마나 속상했으면 이럴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앙꼬를 어깨에 올려서 꼭 안아준다. 원래 이러면 바로 내려달라고 해야 하는데 앙꼬는 몸에 힘을 빼고 한참 그렇게 안겨있었다.


앙꼬가 많이 힘들었나 보다. 이 녀석도 나도 이 시간이 너무 아프구나. 앙꼬도 나도 지금은 너무 아픈 상태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오롯이 우리 둘만 공감할 수 있는 슬픔. 결국 눈물이 터졌다.


나는 나만의 슬픔에 너무 빠져있었고, 앙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했는데 울부짖고, 털이 빠질 정도라면. 이 녀석도 힘들고 엄마의 부재에 대해 느끼고 있구나 싶었다. 그런 앙꼬 앞에서 수면제를 놓고 나만 생각하면서 고민했던 나였으니 미안함에 또 눈물이 터진다.


결국 우리 둘 다 엄마를 잃었고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슬퍼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앙꼬는 엄마의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엄마의 휠체어가 놓여 있던 곳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거나, 엄마가 퇴근할 시간에 문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엄마 침대 옆에서 몸을 돌돌 말고 누워 땅만 쳐다보기도 한다. 너무 기다리는 거 같아서 "앙꼬야 엄마는 이제 오지 않아."라고 말하고 나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괜히 내 옆에 와서 손을 핥는다.


이 날 이후로 웬만하면 앙꼬 옆을 떠나지 않았다. 강아지들도 우울증이 온다는 말이 그제야 귀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던 건지 평소보다 더 많은 말을 건네고, 쓰다듬어주고 안아줬다. 앙꼬가 내 곁을 떠나 무지개다리를 건너기까지 우리는 더 친해졌고, 의지했고 유일하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 모든 시간을 함께한 건 앙꼬가 유일했으니까.


그리고 앙꼬의 불안을 보면서 깨달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익숙함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고 내가 갖고 있던 관점이 바뀌어야만 한다는 것을.


엄마의 보호막이 없어졌다. 아주 명확하게.

그러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엄마의 자리 빼고는 변화는 없다. 앙꼬라는 생명도, 이 집도. 삶의 전반적인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오직 나만 변화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동안은 엄마가 주된 책임자였고, 내가 옆에서 지켜보던 관찰자의 관점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주된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내가 책임지고 가꿔야 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어려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도.

여행에서 마음 정리를 하고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참 어려웠다. 사람이 하나 빠진 자리 뒤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바꿔야 한다. 근데 그것 중 하나가 앙꼬를 바라보는 내 관점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앙꼬가 삐졌다. 근데 나는 이 날 이후로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아지 한 마리의 단순한 행동일지 모르지만, 13년을 함께 한 존재의 처음 보는 모습을 통해 앙꼬의 감정이 무엇인가 고민해본 건 엄마가 가고 나서 처음인 것 같아서 나의 무심함에 어이가 없었을 정도였다. 결국 나는 앙꼬를 통해 깨닫고 생각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앙꼬는 내 가족이니까.


홀로서기, 독립이라는 것은 결국은 모든 주체가 "나"라는 사람으로 맞춰지고 시작될 때 비로소 첫 발을 떼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과정이 쉬울 수도, 누군가는 어려울 수도 있고 빠르거나 늦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다는 것을 이제 와서 인정한다. 가족과의 이별로 시작된 건 아니었으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남들보다 조금은 느리게 혹은 조금은 빠르게 겪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을.


모든 주체가 나로 맞춰지기 시작한 첫 발자국이 그날이었다.

앙꼬가 삐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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