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2018년 새해를 맞이했다. 그것도 일본에서.
그리고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오사카에서의 시작이 멘붕 그 자체였다면, 그게 이유가 돼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여전히 걷고,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었고 또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한다고 해도, 서울에 있을 때보다 가볍고 가벼웠다.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마음 정리를 조금은 했던 것 같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이미 벌어진 일이고, 현실에 대해서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오사카로 오는 날. 그 멘붕의 사건이 어찌 보면 정신을 차리게 도와준 일이 되었던 건지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쿵'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고, 그럴 때마다 정신을 차리라는 뜻이겠거니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는 멈춰있었다. 2017년 11월 9일 그 새벽에.
하지만 이제는 움직여야 내가 산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내가 움직여야 앙꼬도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지킬 수 있으니 결국 내가 이 홀로서기를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나는 살아갈 수 있다고 이제야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나는 아직 지킬 것이 남아있으니.
어쩌면 단순한 이 결론이 그때의 나는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내릴 수 없는 정도로 힘들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현실에서 벗어나 있으니 힘을 조금이나마 쌓아놓을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만 징징거려야지. 잘 살아내야지.
소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내야지.
일본에서 조금은 털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하는 저녁, 엄마 침대 옆에 앉아있는 나를 쳐다보고는 갑자기 엄마가 이렇게 말한다.
"은영아. 내가 가면 죄책감 갖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여행도 다녀와. 내가 해봐서 아는데 아마 네가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져있을 거야. 그동안 내가 할머니를 모시니깐 여행이며 노는 거 나한테 미안해서 안 했던 거 내가 알아. 그게 엄마가 항상 마음에 걸렸어.
그러니 내가 가면 자유를 누리고 와. 엄마는 아마 같이 있을 거야 너랑. 앞으로 내가 옆에 없어도 네가 보는 모든 것을 내가 같이 본다고 생각해. 네가 누리는 모든 것을 나도 누리는 거라고. 그러니 잘 살아 딸. "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죽음을 준비하듯이 매 순간 나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들려주곤 했었다. 여행도 어찌 보면 엄마가 꼭 하면 좋겠다고 했던 부탁이기도 했다. 여행을 하면서 처음에는 고생했으니 좀 쉬라는 뜻인가 싶었는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었나 보다 싶었다.
엄마는 알 것이다. 엄마와 같이 가자고 한 여행을 나 혼자 하면서 얼마나 사무쳐할지를.
그래도 준비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시간들을 벌어서 삶에 잘 녹여내기를. 엄마는 유독 내가 생각이 많다고 했는데 그때는 공감을 못 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고... 엄마는 나보다 나를 너무 잘 안다. 그래서 괜히 눈이 시큰거릴 때가 너무 많다. 아직도.
서른다섯에 떠난 나는 서른여섯이 되어서 다시 돌아왔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안도감이 든다.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안심이 되는지 낯선 곳, 혼자 뚝 떨어졌던 내가 다시 무사히 돌아왔다니!! 돌아오는 비행에서 승무원들의 큰 배려와, 도착 후 켜진 핸드폰 속 잔뜩 들어와 있는 친구들의 응원 문자와 새해인사가 괜히 시큰거리게 만들었던.
끝과 시작이 공존한 것 만 같은 기이한 날이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짐을 챙기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간다. 앞만 보며 걷는데 갑자기 옆에서 '은영 언니!'라는 소리가 들린다. 옆을 돌아보니 친한 동생들이 마중을 나왔다. 나오는 과정부터 동생들을 발견하고 눈이 똥그래진 나를 촬영을 하고, 핸드폰 속 메시지로 "우유빛깔 양은영"이라고 적어놓고는 걱정돼서 마중 나왔다며 반가워한다. 이 엄청난 녀석들 같으니. 이게 뭐라고 반가운지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한참 수다를 떨고 헤어진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정말로.
이제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간다. 앙꼬가 기다리는 집이자 엄마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우리 집.
그리고 돌아가면 이제 하나씩 용기를 갖고 정리를 하고자 마음먹는다. 언제까지 우리 집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집을 나오기 전에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정리를 하고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 엄마를 보내는 일도, 내가 살아야 하는 일도. 더는 미룰 수 없으니.
끝과 시작이 공존했던 여행을 그렇게 마무리한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조급해진다. 캐리어 끌리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얼른 가서 앙꼬를 봐야 했으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그 짧은 복도도 뛰어간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앙꼬야 언니 왔어!' 하고 짐을 현관문 앞에 그냥 던져두고 앙꼬에게 바로 간다.
그런데 앙꼬가 쳐다도 보지 않고 등을 돌리고 누워만 있는다. 앙꼬가 못 들었나 싶어서 계속해서 불러본다. 아무리 불러도 답이 없다. 분명 숨은 쉬고 있는데 왜 그러지 싶다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하다.
망했다. 앙꼬가 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