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11년? 2012년으로 기억한다.
퇴근을 하는 버스 안. 꽉 막힌 도로 위 갑작스러운 공황발작이 왔다. 심장이 빨리 뛰고, 다리가 떨린다. 숨을 쉬기가 어려워지면서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다음 정류장에 내릴 때까지 그 5분도 안 걸린 시간 동안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것처럼 내리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런 증상은 거의 1년 넘게 지속되기 시작했고, 결국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서 진단받은 것은 높은 불안장애상태. 1년 정도의 휴직을 권고받았다. 이때 치료를 받았다면 좋았을 텐데 공황장애가 지금처럼 널리 알려진 병은 아니었으니 '내가 많이 피곤한가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집에는 알리지 않고, 업무를 변경하는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불안장애는 공황장애를 포함한 개념으로 오랜 시간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때 유발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공황 증상이 나오기 전에 이미 온몸에서 '힘들다'라는 표현을 많이 했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결국 탈이 났고, 치료를 많이 미뤘던 탓에 지금까지 고생 아닌 고생을 좀 하고 있다.
처음엔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했을 정도로 심했다. 여전히 차나 버스를 타는 건 굉장히 힘들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치과나 미용실도 가지 못하고, 영화관에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황이 오기도 한다. 사람이 많은 곳, 가끔은 산책을 하다가 공황이 오기도 해서 참.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병이 바로 공황장애다.
내가 공황장애라고 말을 했을 때, "네가 정신력이 약해서 그런 병에 걸리는 건가 봐."라는 무식한 소리를 참으로 많이 들었다. 가족들조차도 이렇게 말했을 정도였으니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다.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건 교회였는데 "너는 교회를 다니는 애가 이런 정신병에 걸리니?"라는 말. 뭐 등등.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공황장애는 정신증이 아닌 신경증 쪽으로 들어가는 병이고, 정신력의 문제와는 다른 부분이다.
가끔 제약이 많아지는 나를 보면서 단체생활에서 이동 때문에 나를 배려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니 툴툴거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나는 오히려 그런 상황이 생기면 내가 알아서 빠지거나 늦더라도 따로 갔었다. 그런데 하는 말이 '또 그렇게 빠지면 분위기가 별로잖아.'였다. 내가 참여하지 않는 것일 뿐인데 되게 큰 배려를 해주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믿는 사람들이었다. 어이없게도.
여기서 궁금했다. 나보다 저들이 더 힘들까?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는 병이다.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이렇게 공포를 느끼는 것인지.
차를 탈 때 천천히 가던 빨리 가던 이미 차를 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면 온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 어떤 실수나 약해진 모습을 보이기 싫다. 스스로 행동에 대한 제약이 많아진다. 언제 공황이 올지 모르니 불안감이 높아진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난 가끔 이렇게 설명해준다.
"매일 엄청난 공포를 느끼게 하는, 내릴 수 없는 롤러코스터 위에서 사는 느낌"이라고.
다시 2017년의 겨울.
도쿄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오사카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으로 간다. 연말이라 오사카로 이동하는 노조미 티켓을 구하지 못해 일본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공항에 도착해 티켓팅을 하고 이동하는데 갑작스럽게 공황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또 시작이다.
비행기에 탑승하여 승무원에게 공황장애가 있다는 말을 하면서 너무 안쪽에 배치된 자리를 복도 쪽으로 이동이 가능한지 물어본다. 잠깐 기다리라는 말에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고 출발을 하게 되면 말을 해달라고 했지만 출발은 아직 멀었다고 말하더니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의를 했던 승무원은 눈을 피하기 시작하고 불안증상이 급속도로 올라간다.
공황을 잠재우기 위해 1분이라도 화장실에서 진정할 시간을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불안감에 떠는 나를 보고 옆에 앉아있던 일본 여성분이 손을 잡아주고, 주변에 있던 외국인과 일본인 분들이 대신 항의를 하며 시간을 주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비행기가 뜨겠구나 싶어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아버렸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멈추더니 승무원이 내리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요구에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요구를 무시한 건 승무원들인데 왜 내려야 하는지 이유를 말하라고 항의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호했고 비행기에서 내려 노조미를 타고 가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지체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항의해준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는 비행기에서 내렸다.
내 짐을 받아 들고 버스에 올라타서 억울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해서 울었다. 너무 놀라서 진정이 되지 않으니 손과 발이 떨린다. 단순히 패닉 때문에 내렸다면 이렇게 비참하지도 않았겠지만 미리 문제를 말을 했는데 이렇게 철저히 무시를 당했다는 게 더 어이가 없었다. 자리에 앉아 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는데 순간 전화를 할 곳이 없었다.
'아. 이제 엄마한테 말할 수가 없구나. '
나를 위로해 줄 엄마는 이제 없다는 것.
정말 잔인한 순간에 깨닫게 되는구나 싶었다.
신은 참 잔인하게도 내가 제일 약할 때 더 약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순간 의심할 정도로 그 짧은 시간에 묵혀둔 서러움이 터지기라도 한 건지 게이트로 이동하는 내내 울었다. 괜한 서러움에 동생이랑 언니한테 전화해서 또 펑펑 운다.
이제 내 비상연락망에 엄마는 없으니깐.
공항에서 빠져나와 도쿄역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하루가 완전히 망가졌다.
공황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서 이렇게 하루를 망치기도 한다. 괜히 이걸 왜 이렇게 갖고 있어서 사는 게 힘들까 싶어 지더니 자신에게도 화가 나기 시작한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까 싶으니 또 서럽고 마음이 힘들고,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배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또 억울해서 울컥한다.
도쿄역에서 오사카역으로 이동하는 내내 눈물이 끊임없이 나왔다. 오사카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어도 그 기분이 나아지지 않으니 훌쩍거리다가 안 되겠다 싶어 밖으로 나가 식당을 찾는다. 이럴 땐 밥을 먹어야지. 이러면서 식당에 들어가 '매운 된장찌개'라고 한글로 적힌 메뉴와 맥주를 시켜 먹고는 잊어버리자고 생각한다.
친구들에게 오사카에 잘 도착했냐는 카톡이 와서 오늘 공황 증상이 와서 이렇게 되었다고 설명하지만 '아 그렇구나.'라고 말할 뿐 크게 생각하지 못한다. 경험하지 못하면 아무도 모를 공포일 테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나는 당장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낀 하루가 누구에겐 '아. 그렇구나'라고 넘길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별로였다.
아픈 건 약점이 될 수 있다.
아픔을 더 잔인하게 이용하는 게 세상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어쩌면 유일하게도 내가 아픈걸 약점으로 보지 않고 나보다 더 속상해하고 걱정하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엄마' 일 것이다.
내 딸이 아픈 것에 대한 속상함. 내 딸이 이로 인해 겪어야 하는 불편함에 대한 속상함. 본인이 어찌해줄 수 없는 아픔. 그런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 서러운 일이다.
일본에 다녀와서 남동생과 친구에게 이 날 이야기를 했더니, 차별을 당한 거 같다고 항의하자고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그 승무원들의 무심함보다 더 슬펐던 게 엄마의 빈자리였다.
이 날 이후 나는 굉장히 겁을 먹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피해를 줬구나, 너무 창피하다 라는 생각에 힘들었는데, 아픈 나도 배려받았어야 한다는 생각을 몇 년이 지나서 할 정도로 지난 몇 년간 엄청 힘든 기억이 되어버렸다.
서러움은 참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가오나 보다.
참 별일이 다 있었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