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있을 순 없다.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2017년 12월. 유명한 한 가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팬은 아니었지만, 목소리를 좋아해서 음악은 즐겨 듣는 편이었다. 그룹이었을 때부터 솔로로 나온 모든 노래를 좋아했고, 엄마의 투병기간 동안 내 출퇴근을 책임졌던 건 그 사람이 쓴 수많은 노래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가사는 한마디로 '위로'였다.

잘하고 있다고,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토닥거리는 느낌.


옆에서 끊임없이 노래로 위로를 건네주던 사람. 더군다나 '죽음'이라는 말에 대한 예민함이 극에 달했을 때 접했던 그의 죽음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이 남긴 유서를.


'유서'로 명명된 그 글을 보고 또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한다. 한 문장 한 문장 내 마음 같았다.

'이겨낼 수 있는 건 흉터로 남지 않아.' 이 문장은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 글을 보면서 앙꼬가 아니었다면 그와 같은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은 생각보다 멀지 않으니깐.


그런데 한 아티스트의 죽음을 공감하고,

그의 말을 곱씹는 나를 보면서 깨닫는다.


"내가 정말 힘들구나. 지금."


사회복지사로 상대방의 마음을 보듬기 위해 상담을 하고, 이야기를 듣고 산 세월이 10년인데 정작 내 아픔과 힘듬에 대해서는 이렇게 무딘가 싶더니, 세상을 등진 한 아티스트의 유서를 보고 공감하는 나를 보면서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네.'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대로 있을 수 없어.'라고 생각한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나의 상태를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11월. 그리고 12월. 엄마의 사망신고 후 정말 의욕 없이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또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힘도 없어서 멍하니 있는 상태의 반복이었다.


내가 느낀 건 무기력이었다.

엄마의 투병이 시작되고 나서 제일 혐오했던 것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이었다. 루게릭이라는 병은 나에게 환자도, 보호자도 무언가를 시도해보기에도 어렵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병이었다. 그러니 투병기간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이러고 있다니 아무리 움직여보려고 하고 무언갈 해보려고 해도 몸과 마음이 말을 듣지 않는다.


몸은 너무나 편해졌다.

새벽 1-2시간마다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잠을 못 잔 상태에서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매일을 분으로 쪼개어 하나하나 계획하거나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출근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마음을 졸이거나, 종종걸음으로 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정신은 더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허무함, 무기력 그리고 죄책감이 어우러져서 아무것도 돌볼 수도 없고 생각을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고 가장 무서웠던 건. 내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지 답을 내릴 수도 끝을 이야기할 수도 없는 나 자신이었다.


스스로 이 무언가를 정리해야만 했다.

이 무기력과 죄책감. 슬픔에서 탈출해야 하는 일.

나는 바닥으로 점점 더 가라앉고 있었고,

나를 살려줄 이는 오직 나 자신밖에 없었다.





우선 병원에 갔다.

평소 엄마와 내가 자주 가던 가정의학병원이었는데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인사를 하러 갔다. 간 김에 현재 내 상태를 말하고 싶지만 아직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아 결국 괜찮다고 말하고 나가려는데 선생님이 주사를 맞고 가란다.


"엄마가 스스로 몸을 안 챙기면 속상해할 거예요. 고생했으니 오늘은 내 선물이다 생각하고 주사 맞고 가요.

그리고 빈혈치료를 해야 한다고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신신당부를 하고 가셨으니 다음 주에 병원에 와요."


우리 엄마는 참 용의주도하다. +_+

이미 선생님과 이모들에게 은영이가 몸을 챙길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을 미리 해놓고선 가다니 이렇게 내가 사랑을 받고 자란다는 걸 또 이렇게 널리 퍼트리고 말이지. 역시 우리 엄마다.


주사실에 들어가 자리에 누워있는데 간호사 선생님들이 나를 보고 울컥하셨는지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시고는 '나도 네 엄마가 많이 보고 싶다.'라고 한 마디 하시고 한 숨 자라며 자리를 비켜주신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하다 잠이 든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를 챙기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과정도 순탄치는 않다.


어쩌면 오랜만일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해 고민하는 일.

나는 이기적이고, 스스로를 굉장히 사랑했던 사람인데 왜 이렇게 어색할까?


그러다 불현듯, 서울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고 싶었다.

집을 떠나 온전히 혼자 새로운 곳에 떨어져 보는 일.

아무도 나의 슬픔을 모르는 곳에 떨어지는 일.


집과 동네, 하물며 곳곳이 다 엄마였다.

숨을 쉬는 곳도, 눈을 돌리는 곳 모두.


하긴 내 삶에서 엄마를 빼놓고 살아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그 당연함이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한동안 내가 내렸던 모든 결정과 선택은 부담과 두려움의 끝이었으니 단순하고 가벼운 결정을 하기에 좋은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환경이 바뀌고, 새로운 것들을 보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혼자서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자신감을 찾을 수 도 있고, 끊임없는 무기력에서 조금은 벗어나 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들었던 것 같다.


고민의 고민을 하다.

12월의 마지막 주. 혼자 일본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 1월부터 하자.

그게 뭐든. 1월부터 하자.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가져보자 싶은 마음이었다. 마음 정리를 하기 위해 이렇게 떠나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눈을 돌리는 모든 곳에서 엄마가 보이는 이곳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래서 떠났다. 낯선 곳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멘붕이었고, 슬펐고, 신났으며 홀가분했다.






P.S 제 일기를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안녕하세요! '남다른 양양'입니다.

명절을 맞이해서 짧게나마 인사를 남기려고 부끄럽지만 이렇게 글을 남겨봅니다.

우선 꾸준히 제 글을 읽어주시고 흔적을 남겨주시는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가장 아팠던 시간의 기억을 끄집어 이렇게 글로 쓰기까지 4년이 걸렸어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쓸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지치는 시간들이었는데 잘 버티고 버텨 이렇게 글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글을 쓸 때마다 마음이 참 이상합니다.


제 지인분들께서도 글을 보고 연락을 많이 주셨는데 다들 '미안하다.'라는 말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제가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이제서라도 알게 돼서 고맙다고 마음 아프다 말해주시는데 참 제가 민망하고 그렇네요. ^^;;


모든 이야기는 제 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꾸밈없이 정말 그대로의 이야기들이에요. 그리고 오랜 시간 성장했던 이야기이기도 해서 지루하실 수도 있고 계속 어둡다 느끼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그 시간을 잘 버텨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꾸준히 관심 갖고 들어봐 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


그리고 같은 일을 겪고, 또 지금도 겪고 계실 모든 분들께 우리는 이 모든 걸 잘 이겨낼 것이라 생각해요.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질 일은 아니고 여전히 힘들고 마음 아플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공감해주시고 마음 나눠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너무 힘이 납니다! 다가오는 명절 너무 허하다 생각지 마시고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건강 챙기시는 연휴가 되길 정말 정말 기도합니다.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추석명절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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