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장례를 마친 후 내 삶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직업이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다 보니 아이들 앞에선 웃기도 하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앙꼬와 함께 생활을 한다.
그때를 나는 이렇게 표현한다.
'무중력 상태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라고.
몸과 정신이 붕 떠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그런 애매함과 '괜찮아.'라는 말이 습관이 된 시간들.
불을 끄고는 눈을 감을 수 조차 없고, 여전히 잠을 잘 수 없는 상태로
좀비처럼 눈이 떠지면 일어나고 걷고 움직이던 시간들.
밖에서 사람들이 보는 나는 변화가 거의 없다.
얼굴에 슬픔이야 있겠지만, 앞에서 울지도 않고 괴롭다고 술을 퍼마시지도 않으니
우습게도 내가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장례 후 2주도 되지 않는 시간에 이 모든 것들이 시작되었다.
'너는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밥을 먹고, 웃는구나?'
'엄마를 모신 곳에 가봐야지 왜 안 가고 있어?'
'오늘은 왜 밥을 안 먹어? 왜 울고 있어?'
'네가 결혼을 했으면 엄마가 얼마나 맘 편히 가셨겠니.'
'루게릭이 유전병인가? 그럼 너도 나중에 루게릭에 걸릴 수 있어?'
'찜찜하겠다. 희귀병이라니. 너도 조심해'
'성형했니? 분위기가 좀 달라졌는데? 원래 이런 일 겪으면 좀 달라지나?'
'차라리 지금 돌아가신 게 나아. 너 50 넘고 그러면 또 추억이 얼마나 많겠어.'
이제 겨우 몇 주가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괜찮지?'라는 그들만의 판단을 바탕으로
너무나도 쉽게 선을 넘는 사실이 너무 우습게 느껴졌다.
사람이 맞나? 아니면 무식한 건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인가?
밖에서 보는 나는 변화가 거의 없을지 몰라도,
내 속은 이미 엄마의 투병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망가져있었고,
엄마가 떠난 후에는 매일 가슴이 찢겨 피투성이가 되는 느낌이었다.
울지도 않았다. 아니 울지 못했다.
울컥하면 엉엉 울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기만 한다.
소리를 내지도, 울지도 못하고 삼키고 삼키다 기절하듯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면 앙꼬가 옆에서 한 없이 손을, 얼굴을 핥고 있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내 상황을 알지 못하는, 관심도 없었을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은 괜찮아져야지. 빨리 잊어야지'라는 이 말이 얼마나 나에게 잔인한 말인지
말을 한다고 해서 알아먹을까 싶었다.
그러다 결국,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한 달. 한 달만 나에게 준비할 시간을 줘야지."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시간을 정했었다.
억지로 지금 당장 이 모든 것들을 직면하지 않고
그럴 힘도 없으니 우선은 가만히 있어보기로 하는 시간.
엄마의 죽음과 병이 누군가에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시간.
내 슬픔과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이 적어지는 시간.
그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어쭙잖은 가르침과 질문이 사그라들 시간.
그리고 앞으로 계속 듣게 된다는
"산 사람은 살아야지." , "죽은 사람 생각해서 뭐하게"
이 말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일.
그때는 슬픔에 직면할 힘도, 생각할 힘도 없었으니 그냥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조금은 힘이 생긴다면 엄마의 사망신고를 하기로 결심했다.
한 달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고, 교회에서는 예배만 드리고 빠져나온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크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차피 이 엄청난 관심은 잦아들 것이고 이후에 연락하는 사람이
오히려 남은 사람들이겠거니 생각하고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아있는 엄마의 짐을 정리하지도 않고,
해결해야 하는 서류나 일들도 우선 최대한 미뤄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결심한다.
한 달이 지나도 안되면 또 한 달을 주자고
내 방식대로, 내 방향대로 흘러가 보자고.
나는 지금껏 그래 왔듯이 이 모든 걸 잘 해결할 사람이라고.
나는 강한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일 테니 걱정하지 말고.
만약 내가 나를 못 믿는 상황이 오면, 엄마가 믿고 있는 나를 믿어보자고 결심한다.
한 달은 너무 빠르게 지나갔지만,
이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결국,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엄마와의 이별 후 지금까지를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족을 잃은 나에게 사람들은 생각보다 잔인했고, 무자비했다.
그들은 할 수 조차 없는 기준을 내세워 나에게 요구하기도 했고,
나를 나 자신보다, 혹은 우리 엄마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너는 이런 사람이잖아.'라는 말도 안 되는 말들을 지껄이기도 했다.
물론 위로를 해주고 싶은데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따라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내가 안다. 나를 얼마나 위로해주고 싶어 하는지를.
혹시라도 만약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겪게 된다면
'괜찮아져야지.'라는 생각으로 본인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장례식 이후의 일들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장례 절차에 대해서는 순서에 맞게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그 후에 겪어야 될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 것은
너무 큰 슬픔이기에 감당하는 법을 말해주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괜찮지 않을 것이다.
왜 나만 이런 슬픔을 겪어야 하는지 화가 나기도 할 것이고,
먼저 간 사람이 안타까워 가슴을 치며 우는 날들도 있을 것이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못할 만큼 괴롭고 아플 것이라 확신한다.
감정적인 문제와 함께 현실적인 문제들이 나를 괴롭힐 수도 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생각보다 오랜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너무 빨리 '괜찮아져야 한다.'라는 생각은 접어두길 바란다.
그리고 혹시 언제까지 아프냐고 묻거나,
4년 정도 지나면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난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똑같아요. 그냥 체념을 할 뿐 슬픔은 똑같아요. 아마 평생 슬플 것 같아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