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모든 장례의 절차를 마치고 긴장이 풀려버려서 그런지
집에 돌아와서 한 일이라곤 잠을 자는 것뿐. 동생과 나는 잠만 잤다.
다음날.
아침에 먼저 일어난 동생이 묵묵히 밥상을 차려 나에게 밥을 먹인다.
딱히 먹고 싶진 않지만 동생이 차려줬으니 밥을 먹는다.
조용히 밥을 먹다가 쉬어버린 목소리로 한마디 건넨다.
"이제 집에 가서 너도 좀 쉬어."
그 말을 하는 나를 조용히 쳐다보더니 동생이
"누나 혼자 있을 수 있겠어?"라고 물어본다.
이 집에서 이제 혼자라는 것에 적응을 해야 하는 첫날이었으니 걱정이 될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런 동생에게 나는 씩씩하게 말한다. "적응해야지, 그래도 앙꼬 있어서 괜찮아."
동생은 식사를 마치고도 바로 가지 못하고 괜히 이것저것 하더니
밥을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당부의 말을 남기고 망설이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동생에게 걱정 말라며 웃으며 배웅하고 나서
뒤를 돌아 조용해진 집을 둘러보고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와 누워 멍하니 천장만 본다.
그때, 남동생이 있을 때 내내 등을 돌리고 누워있던 앙꼬가
조용히 내 옆에 와서 눕더니 자신의 등을 나에게 붙인다.
마치 자기가 옆에 있다는 듯이.
나는 불안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앙꼬에게 코를 박고 몸을 한껏 웅크리고는 말한다.
"이제 정말 우리 둘뿐이다. 앙꼬야."
앙꼬와 나. 우리 둘만 남았다.
'앙꼬'.
이 녀석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앙꼬는 페키니즈로 나의 반려견이자 동생.
친구 강아지가 낳은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여자 아이.
귀염성 있는 외모와 하얀색 털을 갖고 있는, 내성적이며, 온유한 성격을 갖고 있는 아이.
주인을 닮아 먹는 것을 좋아해 제일 활발할 때가 먹을 때뿐이었고,
잠이 많아서 매일 잠자는 모습만 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가끔은 너무 잠만 자길래 죽은 거 아닐까?라고 의심이 들 때면
특유의 코 고는 소리로 살아있음을 알려 언니를 안심시키는 녀석.
삐지면 등을 돌리고는 한숨을 크게 쉬어 나를 긴장하게 만들어놓고는
풀어주기 위해 옆에서 온갖 애교를 부리면 째려보며 어이없음을 표현했던 녀석.
언니인 나랑은 매일 지지고 볶고, 엄마에겐 매일 사랑의 눈빛을 보내
맨날 차별받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내 동생 앙꼬.
앙꼬와 나. 엄마 이렇게 우리 셋은 가족이었고,
엄마를 보낸 후에도 내 옆에는 앙꼬가 있어주었다.
엄마를 보낸 후, 나는 잠을 못 잤다.
눈을 감으면 응급실 앞에서 손을 덜덜 떨며 서명을 해야만 하는 내가 있고,
눈을 뜨면 비어버린 엄마의 침대를 보게 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잠은 거의 2-3시간이 최대였던 거 같다. 거의 반년 이상을 그렇게 보냈다.
장례 후 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엄마의 모든 약을 버리는 것이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수면제만큼은 버리지 못했다.
그때의 난 죽고 싶기보다는 살아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던 상태였다.
아침에 눈이 떠진다고 한숨을 쉬고, 저녁엔 잠을 자는 것을 괴로워했었다.
가슴에 큰 구멍이 생겼는데, 채워질 수 없는 것을 알고있으니 체념하고 매일 고민했다.
"왜 살아야 하지?"라고.
그때였다.
잠을 못 자 괴로워하던 내가 남아있는 수면제를 발견한 것이.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걸 먹어볼까 말까.
차라리 이걸 잔뜩 먹고 일어나지 못하면 어떨까 싶었다.
한 며칠 잠을 자기만 하면 이 괴로움도, 이런저런 꿈도, 이 현실도 못 느낄 테니
죽지 않을 만큼만 먹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매일 수면제통을 앞에 놓고 고민했다.
엄마가 가신 후 우리 남매는 약속을 했다.
한두 달만 이라도 주말을 함께 보내보기로.
그렇게 해서 주말마다 남동생이 집으로와 함께 했는데,
동생과 맥주 한두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날은 아무 생각 없이 잠을 잘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동생이 나에게 말한다.
"새벽에 앙꼬가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누나 옆에 가서 눕더니 몇 초 있다가 누나가 악몽을 꾸는지 뒤척이고 소리를 내면서 괴로워했어. 그때 앙꼬가 바로 일어나서 누나 어깨에 얼굴을 올려놓고 가만히 있더라.
그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누나가 편히 잠을 자기 시작했어. 앙꼬는 그걸 확인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잠을 자더라고. 누나가 괴로워할지 어떻게 알았을까? 앙꼬는 누나를 지켜주는 녀석인가 봐. "
그 말을 듣고 순간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못 하고 한참 동안 앙꼬를 바라본다.
그래 네가 있었구나.
엄마가 아플 때도, 내가 혼자 슬퍼할 때도
엄마와 내가 무서워서 두려움에 발버둥 칠 때도
엄마의 죽음 후 내가 그 슬픔들에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도
앙꼬가 우리 옆에, 내 옆에 있었구나.
이 조그마한 존재가 무엇이길래 나를 지키려고 온 몸으로 노력하고 있는 걸까?
동생이 돌아가고 난 뒤, 나는 수면제를 찾아 다 버렸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면 우선 13살의 앙꼬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가기 전까진 살아야겠다고.
앙꼬랑 함께 할 남은 시간을 내가 잘 보내야겠다고. 그러니 아직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니 이 약은 필요가 없다고.
앙꼬가 나를 지켜주겠다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나도 앙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억지로 잠을 자려고 노력할 것이고,
눈을 뜨면 앙꼬가 옆에 있으니 눈이 떠졌다고 슬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울면서 앙꼬한테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시는 너를 두고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내 곁에는 앙꼬가 남아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셋이 아닌, 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