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엄마가 조금은 걷고,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던 어느 날
늦은 저녁, 엄마의 발을 닦아주고 있던 날이었다. 화장실에 앉아 엄마의 발을 닦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나를 한참 보더니 볼을 쓰다듬는다.
"아니, 엄마가 웬일이래. 스킨십을 다하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한참 말없이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던 엄마가 갑자기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한다.
"안쓰러워서. 내 딸이. 앞으로 내가 없는 시간들을 살아가야 하는 게 벌써부터 너무 안쓰러워서. 은영아. 엄마가 너무 미안해."
예상치 못했던 그 말에 우리 둘은 그날 잠들 때까지 펑펑 울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 갑자기 왜 그때 생각이 났을까?
'엄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 훨훨 날아가고 있어?'
이른 새벽에 도착한 장례식장.
기본적인 것들을 정하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그 시간 가족들은 회사로 출근하고 언니와 형부. 나, 그리고 남동생이 남아있다.
그때 스페인에 계신 삼촌이 전화를 주셨다. 한국으로 오실 수 없는 삼촌도 마음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씩씩하게 대답한다.
삼촌과 통화를 마치고 숙모와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어떡하니 은영아." 하고 숙모가 우셨다. 나는 "괜찮아요. 숙모."라고 대답하다가 갑자기 나도 울기 시작한다.
거대한 무언가가 나를 덮치는 기분이었다. 숙모와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을 그렇게 목놓아 운다.
하늘을 보며 울다가 나도 모르게 말한다. "엄마 가지 마. 나 두고 가지 마. 빨리 가버리라고 한 거 거짓말이야.
엄마가 보내달라고 해서 보낸 거야. 나는 아니야"라고 하면서 운다.
울다가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언니를 부른다. 급하게 뛰어들어온 언니한테 말한다. "언니 나 엄마 때문에 열심히 산 건데, 이제 어떡해? 언니 나 어떡하지?" 하고 또 운다.
이런 나를 보고 언니가 속상해할 것을 알지만, 언니는 내가 살아온 모습을 알고 있으니 언니한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언니는 그저 나를 안아준다.
나는 이 이후로 그 몇 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계속 '숨을 못 쉬겠어.'라는 말을 한 것만 기억이 난다. 나중에 동생이 누나가 그저 오래 울었다고만 했다.
너무 많이 울었다고.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엄마의 장례가 끝날 때까지 다시는 목놓아 울지 않았다.
아직 나는 엄마를 보내야 하는 일이 남아있으니 참아야했고, 엄마가 내가 우는 것을 보고 가지 못할까 봐 울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의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장례식은 생각보다 북적북적했다.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엄마를 아는 모든 분들이 와 주셨고, 나보다 더 많이 울어주었으니 엄마의 마지막은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의 입관식. 입관식을 하러 내려가기 전에 수 없이 속으로 다짐한다. '울지 말자. 내가 버텨야 다 버틸 수 있으니 버티자.'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내 속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마지막이다. 엄마의 모습을 보는 마지막.
입관식 장소 앞에서 결심한 듯이 숨을 크게 한번 쉬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주 본 엄마.
아파서 퉁퉁 부어버린 몸.
지그시 감고 있는 눈.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는 우리 엄마.
가족들은 모두 엄마 옆에 섰다.
모두 눈이 빨개진 채로 엄마를 보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그리고 미루고 미뤘던 내 차례가 되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같은 공간에 있는 우리 가족들도,
유리창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나와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
조용해진 그 순간에 나는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는 이 마지막 시간.
하고 싶은 말은 많은 거 같은데 정리가 되지 않고 단어로, 음성으로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엄마의 얼굴을 계속 보다 머리에 눈이 갔다.
머리를 감고 싶다고 했는데, 목 근육이 약해져 목이 꺾일 위험이 있어서 머리를 감겨주지 못했다.
그 생각을 하다 울컥한다. 이제 다시는 엄마를 만질 수 없겠지. 머리카락조차.
시간은 가고 있었고, 나는 말없이 엄마만 본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눈물이 터지기 시작하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엄마를 보내야 한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다시 한번 내가 아닌 엄마를 위해서.
'잘 가. 엄마.'
마음속으로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든다.
결국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입관식은 진행되었다.
그것이 엄마를 본 마지막이었다.
3일간의 약속한 시간이 지나고 발인을 하는 날.
마지막으로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이게 현실인가 싶어 말없이 엄마의 사진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갑자기. 모든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소리도 못 내고 눈물만 뚝뚝 떨어트리는 나를 보고
가족들이 양 옆에서 나를 부축하고 걸어간다.
한참 후 도착한 화장터.
마지막으로 관에 손을 한번 올리고는 엄마를 들여보낸다.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
엄마와 함께 활동하셨던 교회 지역장님이 나에게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은영이가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은 그날.
엄마를 만났는데 엄마가 기도를 했었다고 했어.
엄마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더 이상 너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은영이가 알면 화를 내겠지만 하나님께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그날 그 응답을 받은 거 같다며 기쁘다고 했어. 엄마가 원했던 일이었어.
은영아 그러니까 너무 오래 힘들어하지 마."
엄마는 그렇게 끝까지 나를 울리고 만다.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엄마는 새하얀 모습으로 나와 묵직한 납골함에 담겨 내 품에 안겼다.
묵직하지만, 아직 따뜻한 엄마.
느낌이 낯설지만, 엄마의 일부는 여기에 있다.
그렇게 엄마의 장례식이 끝났다.
3일이었다. 모두가 엄마와 이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엄마와 이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