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마지막 날.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그날은 엄마의 위루술 이후 오랜만에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괜히 바쁘고 정신없는 그런 날.


출근 후 일을 한참 하다가 간병인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엄마와 통화를 할 수 있게 부탁드렸는데, 엄마가 대뜸 " 언제 와? 지금 오면 안 돼? "라고 나에게 묻는다.


엄마는 평소에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 신경 쓰인다며 엄마가 넘어져서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도

내가 퇴근을 하고 나서 집에 들어왔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그제야 말을 했던 엄마였다.


" 엄마 오랜만에 출근해서 오늘은 지금 갈 수 없을 것 같아. 조금만 기다려줄래? 나 퇴근할 때까지? "

엄마는 알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이때 엄마는 목소리가 나오긴 하지만 말을 알아듣기 힘든 상황이었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 말하지만 말이 뭉개지고 어눌하게 나오면서 의사소통이 어려워지고 있었는데, 신기하게 나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근데 그날. 엄마가 오면 안 되냐고 물었던 말은 왜 그렇게 명확하게 발음이 되어 나에게 들렸던 것인지

일을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날이었다.




퇴근을 하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하는 길.

먼저 병원에 와 있던 사촌동생이 전화가 와서는


"언니 언제 오냐고 고모가 계속 물어봐. 빨리 와야 할 것 같아."


불안한 마음으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를 마주 봤는데 엄마는 평소처럼 활짝 웃으면서 맞이해줬다. 딸이 왔다고 좋아하는 얼굴을 보니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엄마의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엄마도 나도 왜 이러지 하면서 이상하다 생각이 들 때쯤. 갑자기 엄마의 심박수가 200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처음에 잘 버티던 엄마도 심박수가 계속 올라가니 점점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간호사를 호출하고 주치의 선생님을 기다리는 도중.

엄마의 어깨를 잡고 옆에 서 있었는데 엄마가 나를 보고 한 말이 "은영아. 죽여줘. 너무 힘들어"였다.


그 순간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엄마에게 조금만 버텨달라고 말하고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갑자기 엄마의 몸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지더니 엄마가 정신을 잃었다.


나는 엄마를 부르기 시작한다.

"엄마 정신 차려봐. 엄마!"

갑작스러운 일에 병실은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하고 호흡기를 들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들어왔다.


바로 이 상황이었다. 엄마와 내가 1년을 싸우며 준비했던 상황이.


엄마는 호흡기 삽관을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루게릭 환자가 호흡기 삽관을 하면, 죽을 때까지 호흡기에 갇혀 있어야 한다고. 나아지지 않을 병이니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연히 심폐소생술도 거부했다.


매일 나에게 말했다. "너를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꼭 그런 상황이 닥치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 줘 은영아.

네가 나를 죽이는 게 아니야. 나를 보내줘야 하는 일인 거지. 너 밖에 없어 날 보내줄 사람."


내가 엄마의 이 결정을 받아들이는 시간은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나를 생각하면 엄마가 숨만 쉬어도 좋으니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지만 몸의 고통뿐 아니라, 옆에서 시들어갈 딸을 보기만 해야 하는 고통도 생각해달라는 엄마의 마음이 너무 슬펐고, 왜 우리는 이런 결정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서러움에 말할 수 없을 만큼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 온 것이다.


호흡기를 들고 들이닥치는 선생님들께

"엄마는 모든 심폐소생술 거부 환자입니다." 하고 양팔을 벌려 선생님들을 막아서고 있는 나.

순간 호흡기를 든 손들이 아래로 떨어지고 다음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결국 엄마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얼마 후 담당 교수님이 내려오셨는데 엄마의 상태를 설명해주셨다. 환자분이 호흡기 삽관은 거부한 상태에서 혈압이 떨어져서 혈압을 올려야 하는데 혈압을 올리기 위해서 여러 처치를 해야 하지만, 한다고 해도 호흡기 삽관이 없이는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말이었다.


맞다. 엄마는 루게릭. 즉 희귀병 환자다.

그 어떤 가능성도 의료적으로 이제 없어진 상황.


선생님도 나도 알고 있었다.

입원 전 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병원에 들어오라는 말을 해주셨던 분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병원 의자에 앉아 펑펑 울면서 결심하고 또 결심하고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여야 했던 상황이었으니, 더 이상의 긴 설명은 필요가 없었다.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안다.

언젠가 엄마가 웃으며 나에게 "꼭 부탁해 은영아."라고 말했던 일.

내가 엄마를 위해 내가 해야만 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단 한 마디.


"엄마의 모든 치료를 중단하겠습니다."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데, 덤덤하게 그 말을 하는 나를 보고 그 어려운 상황들을 설명해야 했던 선생님들 조차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서류를 준비하겠다는 말과 함께 응급실 안으로 선생님들이 들어가신 후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생각한다.


잠시 후, 서명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난 서류 한 장.

그 서류를 보는데 환자명에 엄마의 이름이, 보호자명에 내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앞으로 엄마와 내가 한 서류에 이름이 있는 일이 없겠구나 싶어 한참 그 서류를 쳐다보다 선뜻 서류에 서명을 하지 못한다.


도망가고 싶었다.

온 신경과 몸이 예민해지고 떨리면서 도망가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손이 덜덜 떨린다. 이 서명을 마치면 엄마는 이제 내 옆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 일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엄마의 유일한 보호자이니깐. 엄마만 생각한다. 웃으면서 꼭 다른 사람이 아닌 네가 해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그 말을 생각하며 서명을 마쳤다.


서명을 마치고 세상이 무너진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사촌들이 와서 '고모를 위해선 잘한 거야 은영아. 다른 생각하지 마.'라고 말을 하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서명 후 스페인에 계신 외삼촌과 통화를 하면서 내가 울면서 말했다.

"삼촌. 이게 뭔지 모르겠어요. 내가 미쳤나 봐요."라고 삼촌은 "은영아. 내가 부모라서 잘 아는데 이게 엄마를 위한 일이야. 잘한 거야." 나는 계속 모르겠다고만 말하다가 전화를 끊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엉엉 울었다.


내가 엄마의 치료를 거부했다.

엄마가 원했던 일이었다.

소원이라고까지 했던 일이었다.

나보다 엄마를 위해서 해야만 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그 새벽 전화로 동생을, 가족들을 부르고 엄마의 마지막을 위해 가족들과 함께 중환자실에 들어간다.


들어가다가 순간 멈칫했다. 엄마가 누워있던 자리는 예전에 간 절제술을 받고 누워있던 자리였다. 그때는 살아서 나왔는데, 지금 엄마는 생과 이별을 하기 위해 저 자리에 누워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내가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엄마 옆에 쭉 둘러 서있다.

엄마의 상태를 체크하는 모니터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갑자기 경고음이 나면,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그 소리를 꺼주고 그렇게 우리는 도착하지 못한 가족들이 올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서서 기다리고 도착한 가족들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한다. 다들 얼굴이 말이 아니다.


맞다. 우리 모두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 옆에 서 있다가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나는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억지로 붙잡고 있지 말고 가도 된다고. 병원 들어오기 전에 다 영상통화로 인사를 먼저 다하고 하더니 혼자 준비 다하고 이제 와서 뭐가 미안해서 가지도 못해.


근데 이렇게 빨리 가는 건 좀 슬프다. 엄마 고생했어. 그리고 엄마한테 짜증내서 미안해, 내가 더 잘 모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


이 말을 하는데 엄마의 혈압이 잠깐 올랐었다.

예전에도 엄마가 네가 나를 못 모셨네 어쩌네, 미안하다는 말 절대 하지 말라고 하더니 누워있어서도 그건 속상했었나 보다 싶었다.


"엄마가 말했던 대로 우리는 천생연분 엄마와 딸이었고 맞아. 우린 서로에게 너무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 엄마는 나한테, 나는 엄마한테. 잘 되지는 않겠지만 엄마한테 미안해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생각하면서 살아볼게. 결국 이 상황도 엄마는 나를 너무 사랑하고,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결정한 일인 거잖아. 그러니 어서 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계속 울리는 기계 소리를 끄고는 의사 선생님이 내 옆에 섰다.

이제 엄마를 보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엄마를 만지지도 못하고 엄마 얼굴만 쳐다본다.

숨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도 이제 마지막이구나 싶어서.

그러다 갑자기 엄마의 입이 살짝 벌어지고 마지막 숨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엄마가 떠났다.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엄마의 마지막을 보고 선생님을 쳐다보고 선생님께 말했다.

"엄마 가신 거 맞죠? 저는 괜찮으니 선고하셔도 됩니다."라고.






엄마의 사망선고가 내려진 후, 나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 바로 중환자실을 나왔다.

안고 오열을 해도 모자랄 판에, 나는 그냥 나와버렸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게 뭐냐고 하면서 울컥 터져버린다.

그 새벽 중환자실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슬픔을 참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엄마의 마지막 날 하루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내가 출근하고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출근 잘해.'라고 웃으며 마중을 하더니 갑자기 바로 오면 안 되냐는 그 말을 했던 엄마가

내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던 딸의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며 버텼을까.


결국 또 그 생각을 하다가 나는 중환자실 앞에서 무너져 버렸다.


P20171104_014212199_EFE5F312-5329-484F-A931-83FD5C8B1708.JPG 엄마의 입원 전 마지막으로 손 잡은 날.


이게 과연 현실일까?

엄마가 내 옆에 없다는 것이?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2017년 11월 9일 새벽 2시 30분.

내 나이 서른다섯. 엄마가 내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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