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지긋지긋했던 병원.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2017년 11월 1일.

엄마가 입으로 삼키는 것을 어려워하기 시작하면서 '위루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위나 소장에 직접 관을 삽관해 배 밖으로 연결하여 직접 유동식을 넣어주는 일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 담당 교수님과 진료실에 앉아 위루술에 대해 설명을 듣는 중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호흡기 삽관이나 심폐소생술 거부에 대한 환자분의 생각이 너무 확실하네요. 지금 호흡도 많이 얕고, 루게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위루술 중 갑작스럽게 호흡이 부족하면 삽관을 해야 하는데, 거부를 하시는 상태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현재 어머님의 상태로 볼 때, 돌아가시는 부분도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오세요."


상담을 마치고 밖으로 걸어 나와 의자에 앉자마자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느낌이었던 것 같다. 10월은 끊임없이 응급실에 들락날락거렸고, 엄마의 호흡이, 목소리가 약해지는 걸 나도 느끼고 있었으니 그 모든 순간을 겪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자리에 앉아 펑펑 울면서 "하나님. 정말 저에게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엄마한테 사실을 알리고 출근을 하기 위해선 지금 일어나야 했다. 한참 울다 눈을 들어보니, 내 무릎 위에 휴지가 놓여있다.


누가 가져다 둔 것일까?




엄마가 증상이 시작되고 나서 확진을 받기까지 1년이 걸렸다. 그리고 8개월 후 엄마가 돌아가셨다. 보호자로서 시작된 엄마의 투병생활 중 병원에서의 시간은 굉장히 복잡했다. 결정해야 하는 것도, 들어야 하는 것도, 알아야 하는 것도 너무 많았다.


루게릭 치료 중 EPO주사 치료가 있다. 한 달에 한번 주사를 맞기 위해 입원을 한다. 매달 입원 준비를 하고, 짐을 챙기고 엄마의 상태를 확인한다. 외래, 입원 치료 등 일정들이 빠듯하고, 생활복지 선생님 배정을 위한 서류 절차도 진행한다. 병이 진행될수록 엄마의 진행상황을 알아야 하고, 병원과 상의하고 외래를 잡고 상담을 하고 장애진단의 시기를 논의하며, 이를 위한 서류를 받기 위해 또 수없이 움직인다.


매일이 정말 지옥이었다.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는 것도,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병에 적응을 해야 하는 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 속에서도 힘을 내서 엄마를 돌봐야 하는 것도- 알아야 하고, 파악해야 하는 수많은 서류들과 이야기들도 너무 많았던 그때 병원 복도 구석에서, 병원 문 앞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위루술을 위해 입원하기 하루 전날, 엄마는 119 구급차량을 타고 입원을 했다. 그 전날 삼촌, 사촌들과 영상통화를 하고, 갑자기 앙꼬를 불러 한참 둘이 멍하게 앉아있는다. 다음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한 엄마는 구급차를 타기 전, 집을 한번 둘러보고는 병원으로 향한다.


위루술이 시작되는 날. 담당 교수님이 바쁜 와중에도 내려와 주셨다. 다른 과에서 진행되는 시술인데 내려오셔서 상황을 설명하고 대기실로 나를 보낸다. 얼마가 지났을까 교수님이 직접 나와서 나를 부른다.


"엄마 살아 계세요?" 이게 내 첫 질문이었다.


질문을 하고 불안해하는 나를 본. 위루술을 집도해주신 교수님이 나를 보더니 한마디 하신다.


"어머님이 의지가 강하세요. 마취를 하고 위루술을 진행하는 그 상태에서도 호흡기 삽관이 될까 봐 입을 다물고 버티시더라고요. 위험한 상황도 잘 넘어갔어요. 어머님이 삶보단 딸에 대한 마음이 강한 거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잠들어있는 엄마를 보고 자리에서 서서 울기만 한다. 교수님들이 어깨를 도닥여주곤 자리를 피해 주신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가 눈을 떠서 나를 찾고는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위루술을 한 이유가 이거 안 하고 죽으면 네가 너무 마음 아파할까 봐 한 거야. 그러니까 은영아. 넌 나한테 최선을 다한 거니까 울지 마"




2017년 11월 9일 새벽.

병원에 안녕을 고하는 날.


위루술 이후 물이 도는 걸 확인하고, 긍정적인 말을 듣고 출근을 했는데, 지금 나는 중환자실 앞에서 장례식장을 정하고 엄마의 부고를 전한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싶은 그때 담당자분이 나와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시신 인계를 위해 보호자 한 분만 남아 주시고, 모두 내려가서 기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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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새벽. 중환자실 앞 복도에 홀로 남아 엄마를 기다리는데 엄마가 누웠던 침대가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방금 전까지 엄마가 숨 쉬고 누워있던. 나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해주었던 그 침대. 이제는 비어버린 엄마 침대에 앉아 멍하니 벽만 보고 있는데, 하얗게 싸인 엄마가 나왔다.


엄마를 모시고 병원 밖으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 돌고 돌아서 가야 하는 길이었다. 살아있을 땐 문 하나 통과하면 되는 길이 었는데, 죽어서는 최대한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면서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외부와 연결된 어떤 통로에 내려 나가려는데, 갑자기 그 길목에서 꽃향기가 났다.


엄마가 꽃을 좋아했는데, 병원을 벗어나는 이 마지막에 소독약 냄새가 아닌 꽃 향기라니. 어이없기도 하고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 한마디 건넨다.


"엄마 꽃향기가 난다. 병원에서.

이제 우리 진짜 병원이 마지막인가 봐."라고




가족들은 먼저 장례식장으로 출발했고 나는 엄마를 차량에 태우고, 기사님과 함께 앞자리에 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멍하니 창밖을 보며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는데 기사님이 한마디 건네셨다.


"첫째인가 봐요. 어떻게 알았냐면, 원래 첫째가 잘 못 울더라고요. 눈에 눈물이 가득한데 내려오는 동안에도 못 울고 있길래 바로 알았어요. 엄마가 젊으셨을 것 같은데, 중환자실에서 나오는 걸 보니 많이 편찮으셨나 봐요. 딸 마음이 더 아프겠어요. 고생했어요. 엄마 모시고 나오느라. 가는 길만이라도 울어요. 장례 치를 때 첫째들이 잘 못 울더라고. 그러니 지금이라도 울어요."


기사님이 해주신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막아두었던 무언가가 끊어진 것처럼 엄청 흐느끼며 운다. 중환자실에서 엄마를 보낼 때, 엄마를 모시고 나올 때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무너졌다.


하얗게 싸인 엄마를 봐도 실감하지 못했던 엄마의 죽음이 병원을 벗어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그 차 안에서 처음으로 실감을 했던 거 같다.


엄마는 살아서 병원을 나오지 못했지만, 우린 엄마의 투병, 병원 생활과 이렇게 안녕했다. 엄마는 이제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만 하기로 하고 엄마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안녕. 지긋지긋했던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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