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망신고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뭐가 가장 망설여졌어?"라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엄마의 사망신고를 하는 것."



P20170414_185501307_1E316ABF-A958-4BC1-8960-0BF179854D01.JPG 엄마의 병원생활.


그 새벽.

엄마가 하늘로 떠나고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병원 수납과 더불어 짐 정리를 하던 중, 사촌 오빠가 나에게 와서 묻는다.


"은영아 사망진단서는 몇 장 필요한지 알려달래."

"글쎄. 잘 모르겠는데 3-4장 정도면 되지 않을까?"


둘 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그때,

병원 관계자분이 최소 10장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고 말해주셨다.


'10장이라... 그렇게나 많이 필요하구나.'


사망진단서 10장이 담긴 봉투를 받아 들고는 사망진단서가 이렇게나 필요한 곳이 많을까? 생각하다가 한숨이 나왔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이라는 게 이 10장을 가지고 필요한 곳에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일을 할 텐데 그때마다 엄마의 죽음을 매번 생각하고 확인해야 하는 건가 싶으니 벌써부터 앞이 깜깜 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후로 한 달.

최대한 미루고 미뤄왔던 일을 이제야 하러 간다.

왠지 모르게 혼자 조용히 하고 싶어서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사망진단서 1장과 엄마의 주민등록증을 들고 주민센터로 향한다.


그날은 엄마의 사망신고를 하는 날이었다.





그날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12월이라 춥고 내 마음같이 우중충한 날씨를 기대했는데, 날도 좋고 하늘도 너무 예뻐서 괜히 심술이 났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한 주민센터에 도착했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는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바로 창구로 가지 않고, 주민등록등본을 출력했다.


사망신고를 하기 전, 서류상으로라도 살아있을 엄마를 확인하고 싶었는지 엄마와 내가 함께 나란히 적혀있는 등본을 보고는 한동안 말없이 쳐다만 본다. 그게 뭐라고 그거라도 남겨놓아야 된다고 생각했을까?


엄마와 내가 함께 있는 주민등록등본.

그 종이 한 장이 뭐라고.


주민센터에 들어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린다.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괜스레 손만 만지작만지작, 손가락을 꾹꾹 눌러서 긴장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드디어 내 번호가 불리고 창구로 걸어가 담당자님께 '사망신고를 하러 왔어요.'라고 말한다.


말없이 건네주신 '사망신고서'와 '재산조회 통합처리 신청서'를 자리에 앉아 펜을 꾹꾹 눌러 신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주민번호는 이제 자다가도 외울 정도였으니 거침없이 쓰기 시작하고 끝까지 빈칸을 채워간다. 작성을 마친 후, 엄마의 주민등록증과 사망진단서를 함께 제출을 하고 서류 제출 후 5분도 지나지 않아 사망신고가 처리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허무함. 맞다 내가 느낀 건 허무함이었다.

그리고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고개를 든다.

사실 그때 느낀 감정을 지금까지도 말로 풀어내기가 어렵다.


너무 허무했던 건지 대답도 안 나온다.

혼자 멍하니 앉아있는데 담당자분이 물어보신다.


"주민등록증은 폐기해드릴까요? 저희에게 반납하셔도 되고, 가지고 가셔도 돼요."


순간 엄마 지갑 속 넣어두었던 할머니의 주민등록증이 생각났다.

난 당연히 가지고 오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싶더니 괜히 울컥한다.


"제가 가지고 갈게요."라고 대답하고는

주민등록증을 받아 들고 주민센터를 나왔다.

그리고 내 지갑 속에 넣어두고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엄마. 엄마 주민등록증이랑 할머니 주민등록증이랑 같이 내가 간직할게.

할머니 것도 내가 소중하게 간직할 테니 걱정하지 마.'


눈이 벌게진 채로 주민센터를 나와 무작정 걷는다.

엄마의 사망신고를 마쳤다.




10년을 모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어느 날.

나는 엄마의 삶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서 질문을 했다.


"엄마. 엄마는 나를 낳은걸 후회하지 않아? 너무 어린 나이였잖아. 결혼을 늦게 했으면 꿈을 펼치고 살 수 도 있었을 테고, 이혼할 때 내가 따라간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덜 고생했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그런지 난 가끔 엄마한테 미안해. 외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기까지 하고, 엄마는 엄마의 삶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어?"


가만히 내 말을 듣고는 한동안 말없이 생각하던 엄마가 나에게 대답한다.


"양양.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 너를 낳은 일이야. 너라는 사람의 엄마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기뻐. 그래서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 내 삶이 누구는 답답하다, 안쓰럽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억울하지도 속상하지도 않아. 결혼한 걸 후회하냐고? 아빠를 만나 결혼을 했기 때문에 너를 만났잖아. 그걸 왜 후회해야 해?


은영아 나는 내 삶에 한 번도 부끄러웠던 적이 없어.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 부모님을 모신 건 내 엄마, 아빠잖아. 힘들었지. 너무 힘들었지만 후회는 안 해. 그 시간 동안 네가 힘들어서 그게 미안할 뿐이야.

네가 그랬지? 엄마는 살면서 사는 모습으로 너한테 다 증명했다고. 그 말을 듣고 되게 감동받았었어. 딸이 알아주고 있는 거잖아. 자식이 엄마를 인정해준다는 게 당연한 건 아니거든. 그런데 너는 내가 한 모든 것을 알아주고 인정해주었으니 잘 살아온 거 같아. 그래서 행복해."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후회는 없다고 했다.

나를 남겨두고 가는 것만 빼고는.




엄마의 사망신고를 마치고 나와 속상한 마음에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는

'괜찮아 은영아. 괜찮아.'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걷는다.


나에게 있어 엄마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주는 엄마이자,

내 모든 비밀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가장 친한 친구.

마지막으로 내가 믿고 의지하는 유일한 멘토.

엄마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의 사망신고는

사랑하는 엄마, 가장 친한 친구,

유일한 멘토라는 존재에 대한 사망선고와 같았다.


그래서 정말 별로였다. 괜찮을 수 없어서.


그나마 다행인 건 엄마는 엄마의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해 후회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인정해주고 기억해주는 이들이 있고, 적어도 엄마라는 존재가 서류상에서 지워지더라도 누군가에게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엄마는 없을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할 때 엄마에게 의견을 구할 수 없고,

구구절절 이런 일이 있었네 어쩌네 라는 수다를 나눌 수 도 없다.


엄마가 나에게 남겨놓고 간 수많은 마음들,

살면서 지금까지 나에게 알려주었던 것들,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의 기억만을 갖고

앞으로 살아야 하는 날이 남았을 뿐이다.


잘 해낼 것이라 결심한다.

반드시 잘 해낼 것이다.

하늘에서도 엄마가 나를 보고 행복할 수 있게.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는 나를 보고

"고생했어 내 딸."이라고 말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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