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엄마를 잃은 슬픔과 지금까지의 과정들을 글로 적어 보인다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어렵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록하고 싶었던 이유는 "엄마"와 "나"의 이야기를 남겨놓고 싶은 이유였다.
그때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열어볼 때마다 다시 그 시간,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조금은 먼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 없이 기분이 가라앉을 때도 있고, "잘했네."라고 응원을 할 때도 있어 글로 기록하는 이 시간이 힘들면서도 좋다.
요즘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지만 선뜻 발행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또다시 시작된 트라우마 기간이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의 기간'은 엄마가 돌아가신 11월을 앞두고 9월, 10월이 유독 공황 증상이 많이 올라오는 기간이라 매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나에겐 혹독한 기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글이 난장판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새로운 증상들을 생겨났다.
잠을 못 자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고, 길에서 울리는 구급차량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거나, 귀를 막고 한동안 숨을 못 쉬기도 했다.
병원이나 장례식은 쳐다보거나, TV에 나오는 화면만 봐도 숨을 쉬기 힘들거나 공황이 올라오기도 해서 한동안 의학 드라마나 죽음과 관련된 영화는 보지도 못했을 정도였고, 몸은 작정이라도 한 듯이 거의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아프기 시작했지만 검사를 해도 딱히 문제가 없고, 약을 먹어도 나아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통증으로 괴로워했다.
사실 위의 증상들은 돌아가신 후 매일매일 경험했던 일이라 '그냥 힘들구나.'라는 생각으로 넘기고 있었는데, 엄마의 1주기를 앞둔 가을. '트라우마'라는 말을 직접 고민했을 정도로 더 힘든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 시기를 '트라우마의 기간'이라고 부른다.
엄마는 9월 추석 연휴 이후 휠체어에 앉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몸이 약해지기 시작했는데 10월은 거의 매주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였고, 숨이 얕아지고 움직임이 점점 힘들어지면서 아슬아슬한 시간들을 보냈다.
매일 밤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숨이 가빠지는 엄마를 보며 기도하는 맘으로 밤을 보내야 했고, 응급실에 가서는 희귀병 환자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라는 말을 들으며 산소호흡기만 낀 체 호흡을 원활하게 하는 처치만 받을 수 있었고, 나는 응급실 앞 보호자 석에 앉아 점점 약해지는 엄마를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1월. 엄마가 돌아가신 날을 기점으로 내 세상은 망가졌다.
유독 힘들었던 그때의 가을. 시간이 지나 엄마의 1주기가 되었을 때 정확히 9월부터 공황 증상이 말도 못 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은 작정이라도 한 듯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왜 이러지?" 싶었지만 3개월 내내 평소보다 강도 높은 공황에 시달리게 되니 결국 인정하게 되었던 것 같다.
1년 전 힘들었던 나를 기억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엄마의 기일까지만 버티자 하고 참아냈던 난, 결국 기일이 지난 후 주저앉아버렸고 한동안 집 대문조차 열지 못할 정도로 공황이 심해졌다. 회사는 나갈 수 없었고, 매일 집에서 기도만 했다. 이 공포와 슬픔을 어찌 이겨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기도하는 것이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결국 다시 공황장애 약을 먹기 시작했다. 선생님께 그동안 겪은 증상들을 말씀드렸는데 트라우마처럼 그때의 힘듬과 아픔이 남은 거 같다는 말을 해주셨다. 그리고 버티고 있는 게 용하다. 싶을 정도로 걱정이 많이 된다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울어야 해요. 울지 못할 정도로 큰 슬픔이 계속 남아있는 건 알겠지만, 참지 말고 삼키지 말고 울어야 해요. 그래야 몸이 나아요.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어요. 몸도 마음도 한계일 수 있어요. 그러니 울어요. 울어도 돼요."
생각해보니 나는 슬픔이 너무 커서 제대로 울 수 조차 없는 시간들이었다. 혹독했다. 너무나도.
엄마의 4주기를 앞둔 2021년의 가을. 다시 시작되었다.
잠을 자도 2시간에 한 번씩 깨고, 잠을 잔다 해도 꿈을 꾸기 시작한다. 몸은 늘어지고 여기저기 다 아프다. 그래서 기록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언젠간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알고 있다. 언젠간 괜찮아질 일이다. 그런데 그 '언젠가'를 기다리면서도 나는 계속 아플 것이다. 이렇게 매 해마다 똑같이. 결국 겪어내야만 되는 일이고, 매번 이런다는 건 공포스럽기까지 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 트라우마의 기간을 잘 이겨내길.
작년보다는 좀 더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가끔 사람들이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하는데 난 잘 살아가고 있다. 아니 비슷한 경험을 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지독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심각한 공황 증상에 빠지기도 한다.
살아가고 있으니 겪는 증상들이다.
나는 가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죽으면 없어질 증상이지 않은가?라고 말이다.
그래도 죽지 못해, 혹은 살기 위해 이런 시간들을 겪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가볍고 쉽게 "잊어야지, 그만 해야지"라는 말로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한다.
'그만 해야지'라는 말이. 어떤 뜻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매일 그 슬픔에 묶여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슬픔이 영원히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언제든지 꺼내어질 수 있고, 어디서든지 튀어나올 수 있는 슬픔이다.
내가 경험을 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깊고, 아프고, 괴롭고, 끝이 보이지 않을 슬픔이라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그만하고 싶어도 그만할 수 없는 슬픔이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 수많은 증상들로 나올 정도로 말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이었다.
그리고 제일 많이 주저앉았던 가을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어떤 계절이 유독 힘들 수 있다.
바로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