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주말 아침. 빵을 씹으며 조용히 한참 생각에 잠긴다. 다 먹은 접시를 정리하면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 주먹을 불끈 쥔다. 도전적인 눈빛으로 집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옷장 앞에 섰다.
오늘이다. 바로 오늘.
엄마의 짐을 정리하는 첫째 날.
굳이 어떤 날을 정해놓고 기다렸던 건 아니지만,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날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정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엄마의 옷이었다.
엄마는 하늘로 가기 전, 내가 해주었으면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내 짐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버려줘. 아무것도 남기지 마 은영아."였다. 이 말을 듣고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냐며 투덜거렸는데 엄마는 그게 날 위하는 길이라 했다.
"나와 관련된 것들이 보이면 네가 힘들고 슬플 거잖아. 적당히 울어. 적당히 슬퍼해야만 해 은영아. 엄마는 그게 소원이야."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난. 딸이니깐 말을 가끔 안들을 때도 있다. +_+
짐을 정리하기 싫었다기 보단,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느낌이었다. 대부분 옷은 태우고, 짐들을 정리하고 버리고 이런 과정들에 대해 들었던 거 같은데, 하나하나 소중하다고 느끼는 지금. 버리고 정리할 용기는 없었다는 게 맞았던 것 같다.
그때는 그 물건 하나가 없어지는 게, 엄마가 없어지는 거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가끔 궁금한 게 사람들은 고인의 짐 정리를 먼저 이야기하는데, 나는 남겨진 자들의 마음의 정리가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했다. 어차피 누가 쫓아온다거나 고인이 살아 돌아올 수 없는데, 그 짐 정리를 조금 늦게 한다고 해서 누가 무어라 할 일인지, 꼭 이걸 해야만 고인이 맘 편히 간다고 여기는 생각들이 나에겐 "강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난 내 마음대로, 내 시간이 가는 대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이것도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투병이 길어졌던 만큼, 엄마가 입던 옷들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나머지 엄마의 옷들은 한동안 손이 가지 않았던 만큼 옷을 먼저 정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옷장 속 봄, 여름옷부터 하나하나 꺼내고 모으기 시작한다. 엄마는 겨울에 돌아가셨으니 먼 계절부터 본능적으로 가장 최근의 옷은 건드리지 않는다. 하나하나 열어보고 정리하는데 엄마 냄새가 나는지 앙꼬가 오더니 한 옷 위에 둥그렇게 몸을 말고 눕는다.
"너도 엄마 냄새나는 게 느껴지나 보다 앙꼬. 언니는 앞으로 엄마 없이 잘 버티고 살 수 있을까?"
괜히 앙꼬에게 답이라도 해달라는 듯 말을 하곤 가슴이 요동쳐서 가슴을 퍽퍽 때려가며 정리를 한다. 차곡차곡 옷을 봉투에 담기 시작한다.
그러다 이건 사촌 00가 사줬다며 좋다고 몇 번 입지도 않은 외투 하며, 생신선물로 옷을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 좋다고 아껴입어야 한다고 특별한 날에만 입었던 옷들을 소중히 보관해두었던 모습을 보니 눈앞이 뿌옇게 되기 시작해 숨을 크게 내쉬고는 "괜찮아. 은영아."라고 중얼거리며 옷을 정리한다.
엄마가 투병 기간 입었던 상의와 하의를 마지막으로 옷을 다 정리하고 보니 생각보다 옷이 없는 것 같아 속상함에 눈물이 터진다. 여전히 소리는 내지 못하고 삼키느라 끅끅 소리만 나지만 이게 뭐 하는 건지 모르겠고, 내가 왜 지금 이걸 해야만 하는지, 엄마는 왜 죽었어야만 했는지 해소되지 않은 원망과 슬픔이 나를 덮친다.
마지막으로 앙꼬가 누워있던 옷을 빼려고 하는데 앙꼬가 버틴다. 왜 가져가냐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보자마자 엎어져서 앙꼬에게 안겨서 운다.
"너무 잔인하다. 앙꼬야. 이 모든 걸 내가 해야만 하는 게."
앙꼬는 한동안 내가 가라앉을 때까지 정말 인형처럼 가만히 있어주더니, 내가 눈물을 닦고 자리에 앉자마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 누웠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 옷을 봉투에 담아 옷 수거함에 모두 다 넣었다.
옷 정리를 마친 후, 엄마와 친하게 지내던 이모가 전화를 주셨다.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어떻게 사는지 등등. 이모와 대화를 하다가 "이모 어제 엄마 옷 정리를 했는데 옷이 생각보다 너무 없더라고요. 기분이 별로였어요. " 했더니 이모가 말씀하셨다.
"옷이 얼마 없지? 사실은 엄마가 너 없을 때 나를 불러서 옷을 미리 정리했어. 이걸 왜 하냐고 그랬더니 나중에 당신이 가고 나서 은영이가 정리를 하면 많이 울 거라고. 반 이상 미리 정리를 해놔야 된다고 하더라. 그래야 조금은 시간이 줄어들어 덜 울지 않겠냐고. 그래서 그래 은영아."
엄마의 이런 준비성. 정말 별로다.
"엄마가 아마 은영이는 이 집에 남아서 끝까지 정리를 다 하고 나갈 거라고. 그때마다 네 마음이 무너질 텐데 미리 짐 정리를 좀 해놓을 걸 그랬다고 하면서 엄마가 울더라. 미안하다고. 엄마는 정말 네 곁에 남아있고 싶어 했어. 엄마가 널 너무 사랑한다는 거 알고 있지?"
안다. 엄마가 날 너무 사랑하는걸.
그래서 나에게 당신을 보내줘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던 엄마였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그 두려운걸 엄마가 날 사랑해서 선택한 걸 알기 때문에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내가 싫었다. 엄마의 희생으로 먹고 살아가는 지금이 너무 괴로웠다. 편하게 잠을 자고, 먹고, 일상생활을 하는 지금은 엄마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평화이기도 하니깐.
이모와 전화를 끊고 멍해진 나를 보더니 앙꼬가 옆에 와서 앉는다. 앙꼬를 붙잡고 운다. 앙꼬는 또 말없이 움직이지 않고 내가 다 울 때까지 가만히 옆에서 자리를 지켜준다. 그렇게 또 정신을 잃고 깨기를 반복하며 첫 짐 정리를 마쳤다.
이 짓을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할까?
남겨진 사람은 하루하루가 정말 말할 수 없을 만큼 아프다.
별로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