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많이 느끼기 시작한다. 아마 살면서 조금은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크게 느끼기 시작했던 건 아무래도 엄마와의 이별을 통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충만한 느낌으로 살았다. 비어있거나, 외롭다거나 하는 감정들을 잘 느끼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외로움이 많은 성격이라고 했지만, 크게 체감하지 못했던 건 아무래도 엄마와 앙꼬의 존재가 언제나 든든하게 곁을 지켜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의 끝없는 사랑을 받았다. 비록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빠와 연락을 하지 않은 건 내 선택이었지만,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을 만큼 부모님의 사랑은 절대적이었고, 앙꼬의 사랑. 기독교인으로서 느끼는 하나님의 사랑. 친구들. 가족들의 지지와 사랑은 언제나 차고 넘쳐 그지 같은 성격도 찰떡같이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허하거나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없었던 삶이었다.
그렇게 언제나 꽉 차 있던 마음에 큰 구멍이 난 건 엄마 때문이다.
어느 날 미친 듯이 뭘 사기 시작한다. 지름신의 강림이다.
그동안 사고 싶었던 것과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걸 마구마구 사기 시작한다. 택배가 도착하고 정리하고 또 반복하는 기간이 생긴다. 항상 내 힐링의 끝이었던 화장품의 위시리스트를 청산하는 즐거움은 그때뿐 무언가 전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또 어떤 날은 너무 배가 고팠다. 먹고 뒤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무언가 먹는 걸 찾는다. 배가 불러 터질 것 같은데 정말 꾸역꾸역 입안에 넣고 먹기를 반복하다 불현듯 깨닫고는 말한다.
"내가 지금 속이 허하구나."
저 말을 뱉자마자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더니 "내가 지금 엄마가 보고 싶은가 보네." 하고는 그제야 깨닫는다.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감정의 실체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결국. 그리움이었다.
끝없이 채워지지 않을 그리움.
마주하고 보니 절대 채워지지 않을, 해결되지 않을 그리움이었고 결국 받아들이고 체념을 해야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감정이 되어버렸다. 같은 서울 아래, 혹은 지구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과는 다른 이 그리움을 마주해버린 나는 주저앉아버렸다.
정말 엉엉 울었다.
이렇게 한번 인정해버리니 TV를 보다가,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친구와 신나게 대화를 하다가도 이 감정이 올라오면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당황스러울 만큼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시간에 그렇게 터져 나오는 감정이 되어버렸고 울고 나서도 그 허함과 그리움은 채워지지 않는다.
이때부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라는 말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빈자리에 적응해나가는 것, 살아서는 볼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괜찮아지는 건 결국 체념을 통한 삶의 진행이었고, 덜 울고 슬픔을 숨기는 방법이 조금 다양해진다는 것일 뿐, 슬픔은 나아지지 않고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진다.
그래서 가끔은 앞으로 남은 내 삶에서 엄마의 빈자리를 통해 느끼게 될 모든 감정과 그리움이 두려울 때가 있다.
어느 날 친구가 "결혼 언제 할 거야. 아이 낳고 싶지 않아?" 하고 묻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결혼이나 출산. 뭐 하면 하는 건데 잘 모르겠어.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말까 봐. 왜 여자들은 아이를 낳게 되면 엄마의 마음을 더 잘 알게 된다고 하잖아.
그래서 내가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나를 보고 느꼈을 수많은 감정과, 나를 놓고 가야 했을 엄마의 마음을 지금보다 100배는 더 잘 알게 될 것 같아서 두렵더라. 지금도 너무 힘들거든 그 마음들이 너무 세세해서. 그래서 모르겠어."
내 대답을 들은 친구는 순간 말이 없더니 갑자기 울었다.
나는 당황해서 "어우 야. 아니야 이러다 또 좋은 사람 생기면 결혼한다고 아이 낳는다고 난리일 거야. 울지 마 왜 울어 갑자기" 하고 말리는데 친구가 말한다.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그렇게 깊은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지 몰라서 미안해. 너무 아프다 은영아."
엄마로 인해 만들어진 가슴속 빈자리는 아마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엄마를 대신할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자리에 대해 억지로 무언가를 끼워 맞춰 넣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연인이던 친구던 그 자리는 절대 채워지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내가 선택한 건 '체념'이었고, 낯설지만 받아들인다.
그리곤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래서 사람들이 "외롭다. 허하다."라는 감정을 느끼는구나 싶어서. 참 우리 모두 힘들게 사는구나 싶었다.
경험이라는 건 나 자신조차 깨닫지 못하는 내 감정에 대한 이해와 깊이를 만드는 일이 되기도 한다.
지금도 여전히 엄마가 그립다. 가끔은 "너무 안 보고 싶어 하는 거 아니야?" 하고 자만할 때도 있는데,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그리움에 점령당할 때가 있다. 그러면 또 뭘 사고, 먹고 하다가 "또 이러네" 하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어차피 뭘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깐.
"보고 싶다."
이 말은 어느 순간 나에겐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깊은 감정의 표현의 말이 되었다. 가끔 이 말의 깊이가 나에겐 너무 달라져서 놀라기도 하는데 아마 엄마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간혹 내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사랑한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네 이여사. 진짜.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