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푹 자는 흔치 않았던 날. 아침부터 앙꼬가 귀 옆에 앉아서 낑낑거리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실눈을 뜨고 앙꼬에게 묻는다.
"앙꼬야 언니 좀 더 자면 안 될까? 겨우 잠들었어."
일어나기 힘들어 눈만 겨우 뜨고 있는 나를 보더니 밥그릇 앞으로 달려가 밥그릇을 한참 건들고는 다시 내 옆에 와서 낑낑거린다. '밥을 내놓으란 말이야.'라고 말하는 앙꼬의 모든 행동이 귀여워서 피식 웃어버리곤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켜 밥을 가지러 간다.
앙꼬는 신나서 귀도 올리고, 발걸음도 통통 거리며 옆으로 다가오더니 난리가 났다. 밥그릇을 내려놓기 무섭게 앙꼬는 정말 숨도 쉬지 않고 밥을 먹는다. 잘 먹는 모습을 본 나는 다시 자리에 돌아와 눕고는 다시 잠을 자고 싶어 버둥거린다.
밥을 다 먹은 앙꼬는 바쁘다. 갑자기 온 집 안을 정찰하듯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내 옆에 털썩 누워버리고는 한참 내 손을 핥는다. 나는 그런 앙꼬를 껴안고 "앙꼬야 좀만 더 자자." 하고는 둘 다 잠에 빠져들었다.
둘이 단잠에 빠진 지 얼마 안 된 시간. 갑자기 앙꼬가 발작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갑작스러운 발작에 놀라 일어나 평소처럼 마사지를 한다. 요 몇 달 이런 발작들이 잦았기에 '앙꼬야 괜찮을 거야.' 하고 마사지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앙꼬가 숨을 크게 뱉어내더니 몸에 힘이 빠진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나는 앙꼬를 잡고 흔든다. 앙꼬는 반응이 없다. 나는 정신없이 병원에 가야 하는 건가 싶어 주변 동물병원을 검색하다가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내 앞에 누워있는 앙꼬를 쳐다본다.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다.
2019년 5월. 앙꼬가 떠났다.
"앙꼬의 심장박동이 조금 느려지기 시작했어요."
꾸준히 다닌 앙꼬 병원에서 선생님이 심장박동이 느려진 거 같다고 말을 들은 그날은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날 본 앙꼬가 눈을 힘겹게 뜨고는 반갑다고 꼬리를 치며 다가오는데 힘이 하나도 없어 이상한 느낌에 앙꼬를 안고 병원에 뛰어간 날이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탈수가 심했다고 했다. 아침까지 문제가 없던 녀석이 저녁에 돌아오니 탈수 증상이라니 억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피를 뽑아야 하는데 핏줄이 터져 결국 방법을 바꿔야 했던 그날. 나는 마음속 무언가가 계속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앙꼬는 매일 무언가 버티고 싸우는 것처럼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밤에는 갑자기 열이 오르는지 몸이 빨갛게 돼버려서 선풍기와 가습기를 틀어놓고, 그러다 갑자기 체온이 떨어지면 바로 담요를 덮어야 할 정도로 앙꼬의 몸은 무언가와 싸우는 듯 힘겨워하고 있었다.
기운이 떨어지고, 밥을 먹을 때 앞 발로 지지하는 걸 힘들어한다. 잘 누워있다가 갑자기 눈이 찢어지기도 하고, 자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앙꼬를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이별에 대해 이제는 받아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밤. 그날도 여전히 앙꼬는 갑작스러운 체온 변화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앙꼬를 내 배 위에 올려놓고 선풍기 바람이 조금 더 가까이 올 수 있도록 자리를 잡은 후 앙꼬를 쓰다듬다가 말했다.
"앙꼬야. 힘들지? 근데 버티기 힘들면 이제 가도 괜찮아. 혹시라도 언니가 가지 말라고 해서 버티는 거면 언니는 괜찮을 거야. 언니 지키겠다고 엄마 가자마자 최선을 다해서 옆에 있어준 거 알아. 그래서 언니가 살았어. 아마 네가 가면 진짜 혼자가 되니깐 슬프겠지. 힘들 거야. 근데 네가 힘든 거보단 그게 나을 것 같아.
그러니깐 이제 언니 지키지 말고, 엄마한테 가서 엄마 지켜줘. 그리고 신나게 놀아.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많이 돌아다니고 자유롭게 살아 앙꼬야. 고생했어. 언니 진짜 잘 버텨볼게."
앙꼬는 갑자기 눈을 뜨더니 고개를 들고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또 이 느낌이다. 무언가 정지된 느낌. 그때 앙꼬의 표정이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면서 이 말이 진심인지 자꾸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웃으면서 말해줬다. "정말 괜찮아. 버텨볼게. 엄마한테 가."라고. 다음날 앙꼬는 거짓말처럼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앙꼬를 보내고 난 뒤, 그동안 앙꼬를 보살펴 주신 병원에 인사를 하러 갔다.
"앙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그동안 앙꼬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만나서 앙꼬 마음도 더 잘 알게 되고,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낸 거 같아요. 감사했습니다."
선생님도 미용 선생님도 앙꼬 너무 착했다고, 고생했다고 말씀해주시면서 많이 위로해주셨다. 이제 돌아가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처음 앙꼬를 봤을 때 사실 반년도 못 버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1년을 버티는 걸 보면서 참 대견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나 본 페키니즈 중에 장수한 강아지 중 하나예요. 보호자님도 최선을 다하신 거예요. 그리고 제가 볼 땐 앙꼬가 보호자님을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 그걸 잊지 마세요.
그리고 어느 강아지들은 그렇게 발작이 오면 하루 이틀 정도 병원에서 호흡기 끼고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앙꼬는 바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하니 또 보호자분 속상할까 봐 그랬나 싶었어요. 큰 고통 없었을 거니깐 보호자님도 힘내세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 앙꼬가 정말 1년을 버텨줬다는 것을. 우연이라고 하기엔 정말 딱 1년이었다. 그리고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주었다는 걸 또 한 번 깨닫고는 돌아오는 길에 정말 엄청 울었다.
앙꼬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내 모든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였다. 동물이었지만 이 녀석만이 나를 이해해준다는 것을 느꼈다.
앙꼬뿐이었다. 정말.
사람이 죽으면 3일이라는 장례 기간을 거치지만, 강아지의 죽음은 정말 오직 나만 슬퍼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제 엄마랑 같이 있겠구나 싶으니 안심이 되면서도 괜히 서럽고 그렇다.
집에서 돌아다니는 앙꼬 발자국 소리도 없어졌고, 내 몸에 남아있는 앙꼬 냄새도 더 이상 없다. 털이 붙어 있지 않는 옷을 입고, 강아지 관련 제품을 살 기회도 볼 기회도 없다. 그래서 가끔 이 털북숭이가 없는 게 슬플 때도 있지만 다른 강아지로 앙꼬의 자리를 채우고 싶진 않다.
아직도. 여전히 나에겐 앙꼬뿐이다.
그리고 정말 혼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