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점에 나를 세워준 사람들에게.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하나님은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을 붙여주신다.

앙꼬를 보내고 난 후, 사람들이 계속해서 안부를 물어오기 시작한다. 다른 일을 하다가 전화를 못 받고 나중에서야 전화를 하면 "무슨 일 난 줄 알았잖아."라는 말을 하며 안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인스타나 블로그에서는 평상시처럼 아무렇지 않은 일상들이 공유되긴 했지만, 내 사람들은 그 자체를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차라리 울고, 슬퍼하고 하면 좋겠다고 티를 안내서 불안하다는 말과 함께 생사를 확인하듯 매일 전화를 하거나 톡을 보내왔다.


다들 내가 앙꼬 때문에 그 시간을 잘 버텨왔던 걸 알기 때문에 앙꼬마저 없어진 상황에서 '아프다. 힘들다.'라고 표현하지 않으니 이상한 생각이라고 할까 봐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참 감사한 마음들이다. 진짜.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항상 그 시기에 내게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신다고 생각한다. 한 때는 엄청 찐했던 사이들도 함께해야 할 시간이 지나면 소홀 해지는 건 지금 내게 더 필요한 사람들을 붙여주시는 게 아닐까?라는.


물론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도 기대감과 실망감. 놀라움과 당연함 등등 여러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내 인간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진 않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언제나 반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사람들보다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 크게 와닿을 때가 있으니까.


그래서 그 반전 때문에 오만가지 감정을 다 느끼게 하는 게 '사람'이지 않나 싶다.




엄마와 앙꼬와의 이별을 겪고 난 뒤, 걱정을 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유난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뭐가 힘드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타인의 아픔을 대하는 모습을 통해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과 표면적으로만, 또는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추려지고 그건 말이나 행동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른들이 큰 일을 겪고 나면 사람이 추려진다고 하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추려진다는 말을 직접 경험해보니, 막 슬프거나 아쉽다기보단 차라리 잘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각자 살아왔던 시간과 모습이 다른만큼 위로를 하는 방법도,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도 각각 다르기 때문에 내 마음과는 달리 불협화음이 날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30대를 보내면서 사람이 들고 나는 것에 대해서도 무감해졌지만 반대로 기대하지 못했던 인연들과 이어지고 삶은 나눌 수 있는 일에 감사함을 많이 느낀다.


P20180905_163416954_8D2E12E3-0DEA-4C16-BEA1-F5B5E9064EED.JPG 자주 갔던 마포구청역 '꼬르소산도'


그리고 그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던 첫 번째 시작이 바로 '스타트업 피플팀' 사람들이었다.


교회 동생이 대표로 있던 피플팀은 앱을 개발하는 회사였는데,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고, 시기를 조절하는 기간을 거쳐 2018년 8월 합류했다. 그곳에서 하얀이와 희두를 만났다.


사실 나는 그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반년이 지난 상태였기 때문에 굉장히 지쳐있고 바닥에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 내가 살아온 시간 동안 제일 예민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불안정함.

내가 삼십몇년을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 감정이 나를 덮치고 있던 그때, 피플에서 만난 하얀이와 희두가 아니었다면 그 팀과 스타트업 업무에 잘 적응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인연인 그들에게 받은 배려와 애정 때문에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스타트업은 모든 게 다 새로웠다. 딱딱 정해진 수직관계가 명확한 곳에서만 일을 했던 내가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에 적응을 하는 것, 그리고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에 대한 적응은 생각보다 간단하면서도 답답했다.


나 자신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조직생활을 했고, 사회복지사로서 일을 했다면 어디 가서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편이었고, 모르면 배우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성격이라 크게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 커뮤니케이션 문제 등은 기획팀인 우리와 개발팀 사이에서 흔들리는 일들이 많다 보니 생각보다 힘들었다. (정말 긴 이야기라 더 이상 말로 풀어내기가 어렵다.) 아직도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정말 새로운 많은 생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지냈다. 오랜만에 또래들과 이런 시간을 겪는다는 게 나에겐 즐거움이었고, 그 안에서 나누는 대화들도 너무 즐거웠다. 그중에서 한 가지 신기했던 건 일을 하면서 서로의 장점과 강점에 대해 끊임없이 발견하고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정한 기준이 스스로 높아서,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칭찬을 받으면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성향이다. 누구는 자존감이 낮은 거 같다 하기도 하고, 누구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스스로 이 정도까지는 되어야 하는데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강해서 스스로를 낮추거나 괴롭히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하얀이와 희두가 말해주는 내 강점과 장점 중 스스로 인정하는 것보다, 처음 듣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많았다. 처음엔 엄청 어색해했는데 '아 내가 이런 장점이 있구나. 이런 걸 잘하는구나.' 하고 무언가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맞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가?"


맞다. 나는 근 몇 년동안의 나를 스스로도 낯설어하고 있었다. 이게 내가 아는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바닥으로 떨어져 있던 나 자신을 스스로도 낯설어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피플팀을 통해 내 안에 무언가가 깨지고 다시 쌓이는 과정의 시작점에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한 인연이 서로 만나기까지의 과정과 시간은 내 의도와 상관없이 이루어질지라도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서로 만나 그동안의 삶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P20181113_105746408_20DD60C8-1BF7-4D65-82DB-507AEDCC27AD.JPG 우린 매일 사무실에 둘러앉아 밥을 해먹기도 하고, 회의도 했다.


하얀이가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그래도 괜찮아요. 언니."였다.


무언가 메여있던 삶을 산 내게 하얀이가 "그러면 어때서요?"라고 해주는 말이 얼마나 어색한 말이면서도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말들이었는지 그때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하얀이는 내 동기부여의 한 시작점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얀이와 희두가 아니었다면,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브런치라는 공간을 소개해준 것도, 글을 쓰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자신들이 생각한 내가 글을 쓰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이유를 세세하게 알려주면서 용기를 준 것도 하얀이랑 희두다.


앙꼬를 보내고 나서 정신이 번쩍 들게 된 것도 피플팀에서 이런 시간들을 천천히 쌓아왔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시기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건 축복이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라 해도.


스타트업에 있는 동안 무엇을 얻었냐고 물어보면 나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너그러움을 갖기까지 옆에서 그들만의 방식과 인정으로 날 움직이게 해 준 하얀이와 희두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대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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