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11월 9일.

2017년부터 11월 9일은 엄마의 기일이 되었다.


그 새벽 엄마를 보내고 장례를 위해 집이 아닌 장례식장으로 향했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11월 9일은 마음이 시리다 못해 얼어붙어버리는 날이 되었다고나 할까.


2018년 엄마의 1주기는 집에 있을 수 없어서 호텔로 도망쳤다. 기일이 되기 전부터 시작된 앙꼬의 보살핌을 뒤로하고 엄마의 흔적이 남겨져있는 집을 벗어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고, 호텔 방에 갇혀 끝없는 공황과 슬픔에 허덕여야 했다.


2019년 엄마의 두 번째 기일은 앙꼬마저 보내고 맞는 첫 기일이기도 했다. 정말 혼자라는 걸 뼈가 다 시릴 정도로 느꼈던 그날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엄마도 앙꼬도 없는 그날. 하루 종일 울고, 자고의 반복이었다.


2년 동안 울지 못해 끅끅 거리며 삼키기만 했던 슬픔이 그날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다 터져 나와 아이처럼 엉엉거리면서 울면서 엄마, 앙꼬와의 이별을 제대로 한 날이었다. 그렇게 울어본 적은 태어나 처음인 듯했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차곡차곡 쌓여 높고 단단해진 댐이 무너진 그날부터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터지기 시작했다. 조금은 시간이 지나니 울 수 있구나 싶었던 엄마의 두 번째 기일이었다.


2020년 엄마의 세 번째 기일. 나는 직장을 옮기면서 첫 출근을 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안에 앉아 웃는 얼굴로 슬픔을 가리고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 걸어오는 내내 눈물이 나서 고개를 숙이고 걸어야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눈이 퉁퉁 부어있는 거울 속 나를 보고 "뭐가 그리 서럽냐." 말하고는 울어버렸다.


엄마의 기일은 이상하게 괜히 서럽고, 슬프고 그런 감정이 공존하는 날이다. 날이 좋아도, 좋지 않아도 그냥 다 힘들고 잠만 자고 싶은 날. 그런 날 처음 일을 시작하고, 엄마한테 가지도 못하고 표현할 수 조차 없었으니 서러웠나 보다.


3년을 그렇게 보냈다.

돌아보면 정말 이 시간들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기도 할 만큼 3년이 참 지독히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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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엄마의 네 번째 기일.

월. 화 휴가를 내고 호텔로 갔다. 트라우마의 기간을 보내고, 긴장으로 시작된 11월. 네 번째지만 여전히 힘들고 지치는 그 시간을 견뎌온 나는 집을 벗어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공간이 필요했다. 1주기 때 도망쳤던 그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앉아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않고 한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하고 싶은 말도, 내뱉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 가득한데 들을 대상은 내 앞에 없고, 그 말들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니 답답한 마음에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와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다 맥주를 마시고 보지도 않는 TV를 켜놓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 공간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눈물이 나면 그냥 운다. 차라리 잠이라도 실컷 자고 싶은 마음도 가득하다. 며칠을 잠을 못 자고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으니 피곤할 만도 한데,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다음날. 11월 9일.

엄마한테 가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출발을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중간까지만 갔다가 다시 되돌아온다. 나는 유독 엄마를 모신 그 납골함을 보는 것을 힘들어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여전히 가는 게 힘들고, 막상 가면 같은 곳 다른 공간에 모셔진 할머니 앞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할머니 엄마한테 못 가겠어." 하고 발을 동동거리다 운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였고, 이미 시간은 지나가고 있는데 왜 그렇게 힘든지 참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결국 이번에도 중간까지 가다가 공황이 심하게 와서 멈추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하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혼자 있고 싶고, 괜찮다가도 무언가 울컥울컥 올라와 터져 버리는 11월 9일은 정말 진이 다 빠진다.


엄마한테 가지 못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기도하는 맘으로 엄마한테 전하고 나 자신에게는 1년을 또 잘 버텼다고 잘 살아냈다고 도닥거리고는 기절하듯이 잠이 들어버렸다.




사람들은 '벌써 4년이구나.' 한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한데, 나는 '이제 겨우 4년이지.'라고 생각한다. 10년이 넘으면 좀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지금은 나에겐 '벌써'가 아니니 겨우 붙잡고, 버티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나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다. 난 여전히 내 삶을 충실하게 잘 살고, 만들어가고 있고, 나조차도 내 삶이 망가지기를 원하지 않으니 열심히,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결국 지워지지 않을 슬픔이지 않은가?

평소에는 꾹꾹 참다가 11월 9일 마음껏 슬퍼할 뿐이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서 1년을 또 버티겠다 다짐한다.


누군가 "이제 괜찮니?"라고 물어보면 "아니."라는 답만 있을 뿐. 슬픔과 그리움은 나아지지 않는다. 다만 전 보다 덜 울고, 조금은 멀리서 바라볼 줄도 알게 되었다. 슬퍼하는 모습이 바뀌었을 뿐, 엄마와의 이별은 쉽게 괜찮아질 문제가 아니다. 그냥 체념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


4주기를 이렇게 보냈다.

내 트라우마의 기간도 이제 끝나간다.

다시 1년을 잘 보내겠다고 엄마에게 약속했다. 항상 말했듯이 작년보다는 나아지겠다는 다짐과 함께.

내년 엄마 기일에는 꼭 엄마를 찾아가 만나볼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고생했어 엄마. 그리고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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