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습관이 하나 생겼다.

바로 1년에 한 번이라도 온 집안의 짐을 정리하는 일이다.


처음 엄마의 옷을 정리한 후, 한동안 손도 데지 못했던 엄마의 짐도 그렇고, 오랜 기간 살아왔던 공간인만큼 구석구석 쌓여있는 짐들이 어느 순간 무겁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씩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을 때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물건을 버리는 것이 추억을 없애는 것 같았는데, 더 이상 물건에서 엄마를 느낄 수 없다는 걸 아는 건지, 엄마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건지는 몰라도, 엄마의 물건뿐 아니라 어릴 때부터 보관하던 내 물건도 아무런 미련 없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무의미했다.

그 물건 자체만으로는.




나는 쉴 수 있는 기간이 긴 명절 때마다 집을 뒤집어놓고는 1년 이상 손에 닿지 않은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는데 정리하면서 느끼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마음이었다.


베란다 한 장소에는 엄마가 "나중에 은영이 시집가면 줘야지." 하면서 모아놓은 여러 가지 주방기기와 그릇이 좋은 것들로, 뜯지도 않은 새 제품들이 가득 모여있었다.


내가 30대가 되었을 때부터 엄마는 "시집가면 그릇세트는 백화점에서 좋은 걸로 사줄게. 모아 둔 건 그냥 쓰기 편한 것들이니깐 나중에 우리 딸이 가져가."라고 버릇처럼 말했는데, 말로만 들었지 엄마가 차곡차곡 모아둔 걸 직접 보고나니 눈앞이 뿌옇게 돼버려서 정리하는 내내 말없이 움직이기만 했다.


또 한쪽에는 내가 엄마한테 썼던 편지나 선물들이 모여 있었고, 어릴 적 내가 사용하던 물건들도 소중한 듯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건 할머니의 물건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다 정리했다고 이게 맞는 거라고 하더니, 적게나마 남아있는 할머니의 물건을 보고는 결국 참을 수 없어서 주저앉아 한동안 울기만 했다.


짐을 정리하는 동안 내가 느낀 건 엄마의 마음이었다.


나에 대한 엄마의 사랑과 덤덤한 척했지만 할머니를 그리워했을 엄마의 마음. 집안 구석구석 결국 이 공간 자체는 엄마였고 할머니를 그리워한 엄마 마음을 엄마와의 이별을 통해 내가 이해하고 앉아있으니 속이 너무 상했다.


엄마가 정리하지 못한 할머니의 물건도, 모아둔 다른 것들도 이제야 내가 정리를 한다. 시집갈 때 주겠다며 모아둔 주방기기와 접시들은 내가 쓰는 걸 원했으니 열심히 쓰고 누리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다 꺼내서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1년에 한두 번씩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리를 한바탕 하고 나면 몸이 피곤해야 할 텐데 몸이 아닌 마음이 아리고 피곤해져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만 있고는 '이건 짐일 뿐이야. 물건일 뿐이지.'라고 스스로 다짐하듯이 말하면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자버리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정리를 하면 할수록 괜찮겠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헛헛한 마음이 들고 4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스스로 그 헛헛함을 감추기 바쁘다.


짐은 점점 줄어들지만 여전히 주저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면 지금은 다시 넣어두고 다음에 정리를 할 때 쳐다보고 정리를 할 수 있으면 그제야 한다. 못하겠으면 다시 넣어두고 조금 더 단단해진 다음에 또 보면 정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렇게 천천히. 내 마음의 흐름대로 정리를 한다.


그리고 나는 보관함 하나를 구입했다.


뭐 얼마나 들어갈까 싶은 작은 보관함을 마련했는데, 그 이유는 이 보관함에 들어갈 만큼만 엄마의 물건을 남겨놓고 들어가지 않는 나머지는 다 버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좀 속이 쓰리긴 한데, 더 이상 엄마는 이 세상에 없고, 그 물건이 남아있다고 한들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3년 내내 경험을 통해 알아버려서 그런 건지 그렇게 타협을 했다.


이 집에서 사용하는 가구들도 이사를 나가기 전까진 그대로 사용하다가 다 버리고 갈 참이다. 그 가구들. 가전기기를 살 때 엄마의 즐거워하던 모습은 이미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 더 이상 갖고 갈 필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조금은 단단해져서 이 집을 나갈 때는 '내 것'을 갖고 표현하고 살기에도 이른 나이는 아닐 테니까.


정리라는 게 내가 해야만 하는 것도 알고, 나밖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아는데, 할머니, 엄마, 앙꼬의 짐을 차례대로 정리하고 있자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가끔 왜 그렇게 또 서러운 건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여전히 짐 정리를 하는 것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




P20171113_131326330_096CDF51-BBD3-4D54-B258-C4FDC9A2314C.JPG 3년이 지나서야 보낼 수 있었던 엄마의 침대.


엄마의 3주기 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환자용 침대를 정리했다. 일주일 사용하고 바로 하늘로 가버린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집에서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침대를 보낼 용기가 나지 않아 끼고 있다가 3년이 지나서야 투병과 관련된 마지막 물건이었던 침대를 정리했다.


침대가 없어지고 텅 비어진 방을 보니 헛헛하다 싶다가도 이제 진짜 엄마가 아프지 않겠구나 싶은 마음에 편안하면서도 좀 그랬다. 이렇게 하나둘씩 천천히 정리를 하고, 빈 공간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채우지 않고 더 비울 생각을 하고 있다.


2021년 11월. 이 집 마지막 연장 계약을 마쳤다. 나갈 수 있을까 싶었다가도, 잘 정리하고 나가겠다는 이유를 붙여서라도 여기에 있었는데 4년이 지난 이제야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2년 후, 이 집을 나가야 된다 생각하니 정말 이제야 끝이 보이는 느낌이다. 남은 2년 동안 작은 보관함만 남기고 엄마의 짐도, 내 짐도 잘 정리하고 나가려고 한다.


죽음이라는 게 장례를 마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장례 후 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한 사람의 흔적을 정리한다는 게 참 쉽지 않다.


그래도 엄마가 나에게 사랑과 애정으로 남겨져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이런 엄마와 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다행이다.


이제야 끝이 보이고, 이제야 다 보낼 수 있겠다 싶다. 4년이 다 되서야 나갈 용기가 생기고, 앞과 뒤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남은 기간도 잘 정리해보려고 한다.


맘고생, 몸고생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내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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