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지다.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가족과의 이별 후, 거의 매일 아팠다.


엄마와의 이별 후부터 거의 매일. 몸이 돌아가면서 아프기 시작했고, 조금 나아질 무렵 앙꼬가 떠났다. 그리고 난 후 몸은 다시 예전처럼 계속 아프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랬다. "슬픔은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몸을 아프게 한다고." 그래서 큰 슬픔을 겪고 난 후에는 자기 몸을 돌보는 것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 말을 뼈저리게 느낀 건 앙꼬까지 보내고 난 후 온몸에서 느껴지는 감당할 수 없는 통증을 겪어보고 나서였다.


일을 하던, 쉬고 있던, 잠을 자던 몸은 정말 작정이라도 한 듯이 아팠다. 이미 겪고 있던 공황은 말할 수 없이 심해지고 있었고, 온몸에 느껴지는 통증은 말로 할 수 없었다. 하루에 소화제 3-4병은 기본으로 마셔야 조금 무언갈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더니 잠을 푹 잘 수 없고, 살도 계속 찌고, 손목은 매일 아파서 파스를 감고 있어야만 했다.


고생이었다. 눈 뜨고 사는 거 자체가.

몸은 "여기까지가 한계야."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나는 그걸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이렇게 너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데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맞아?"





나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죽을 용기도 없었을뿐더러, 슬픔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제대로 즐기면서 살지도 못했는데 아프면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내가 나를 돌보기로 했다.


더 이상 나를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병원, 장례식장 등 투병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경기를 일으킬 만큼 힘들어했다. 집 앞에 큰 소방서가 있는데, 매일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도 매번 주저앉을 정도였고 병원을 가서 진찰을 받는 거 자체가 정말 힘들었다. 그나마 어릴 때부터 꾸준히 다녔던 가정의학 병원은 내 상황을 알고 계셔서 아프면 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어떨 땐 병원까지 가는 것 자체도 힘들어서 집에서 끙끙 앓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살아보겠다 했으니 다니던 병원과 함께 한의원도 다니기 시작했다. 크게 정기검진을 받을 컨디션도 아니었으니 작은 증상들부터 하나씩 하나씩 치료해보고자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오래 꾸준히 양약, 한약을 먹으면서 치료를 했어야 했다.


한의원 선생님께서 나를 처음 보시고 하셨던 말씀이 "지금 막 수술을 받으신 분들만큼 몸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요."였다. 사지 멀쩡 하게 살던 내가 지금 막 병원에서 수술을 마친 사람처럼 맥 상태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니 참 당황스럽지 않은가.


침을 하루 이틀 맞으면 2-3kg이 빠져있을 정도로 몸의 붓기도 심했고, 공황이 오는 기복 자체도 너무 심했다. 공황장애도 결국은 몸이 받쳐줘야 고치든지 말든지 하는 일이었으니 꾸준히 침 치료를 병행하고 한약을 먹기 시작했다.


결국 꾸준함만이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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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회사, 병원, 집이 습관이 될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했다.


치료하는 중에 힘들었던 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말들이었다. 특히 살을 빼면 좋겠다는 말들을 정말 많이 했는데, 나도 빼고 싶지만 몸 자체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을 해도 핑계라고 말하면서 사람을 참 힘들게 했다.


몸 자체를 다운시켜야 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던 나였으니 살을 빼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고, 선생님들도 약을 먹는 동안은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셨기 때문에 사실 나는 거의 포기 상태였다.


요즘 한 아이돌이 공황장애로 인해 활동을 중단하고 약을 먹으면서 체형의 변화를 겪는 사진이 많이 돌아다니던데, 그 친구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지 가끔 맘이 아플 때가 있다.


'자기 관리를 못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을 때도 있었는데, 내가 왜 '내가 지금 아파서 지금 당장은 그게 어렵데'라는 말을 설명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몸이 성치 않은 사람에게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지들이 병원비를 내주거나, 운동을 할 수 있는 이용권을 끊어주던지.


나는 치료를 시작하면서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걱정이라고 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끊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른 중반. 모두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통해 맞고 틀리고 가 명확해지는 나이가 되는 만큼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내 주변에서도 '너를 함부로 보는 거 아니야?'라는 의문을 갖게 할 만큼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 모르는 사실은 본인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모두 자유로울 수 없었다. 티를 내거나 화를 내지 않았을 뿐, 솔직히 내가 살아온 경험이 그들에게 어떤 지적과 가르침을 받을 만큼 어리숙하지도 평탄하지도 않았으니 나는 속으로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니 심해졌고 나는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그런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살면서 그 무엇보다 내 가족이 우선이었기에 자잘한 것들은 무시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나' 자신이 우선이 되기 시작했으니 무시하고 넘어가는 일은 이제 없어졌어야 했다.




한의원에서의 치료는 거의 1년 동안 지속되었고, 공황장애 약은 지금도 먹고 있지만, 나는 처음부터 최소한의 약만 사용했고 방치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한 번에 확 좋아질 순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나 확실한 건 몸이 조금씩 안정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까지 거의 3년이 걸렸다.


한의원 선생님도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 주셨고, 병원 선생님은 언제나 내 상태를 정확하게 알려주시기 때문에 지금은 정기적으로 여러 검사와 함께 의학적인 의견을 믿고 구할 수 있는 내 주치의 선생님이 되어주시고 계신다.


참 신기하게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크다. 슬픔이 몸속에서 돌아다닌다면 건강한 방법으로 이 슬픔도 잘 극복되길 원했는데 함께 노력해주시는 분들을 만났고, 오랜 시간 동안 나 스스로도 노력한 덕분에 많이 좋아지고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망가졌기 때문에 좋아질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생각.


항상 좋았다면 이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을 느끼거나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힘든 시간을 지나왔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런 순기능도 겪는 게 아닐지 생각해보곤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모든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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