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후회가 많이 남는다는데 너는 어때?"
아직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건지,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가끔 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살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00가 제일 후회되었어요."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많이 궁금해한다.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나는 후회로 남은 게 없어. 엄마랑 난 정말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어."라는 대답.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정말이냐고 되물어보는데 믿을 수 없겠지만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어쩌면 우리가 후회 없이 정말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엄마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둘이 살기 시작했을 때 엄마는 엄청 바빴다. 15년을 전업주부로 살다가 중학생 딸을 데리고 돈 한 푼 없이 세상에 나왔으니 바쁠 수밖에.
서로 눈을 뜨고 있는 모습보다 자고 있는 모습을 더 많이 봐야 했던 그때. 엄마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건지 어느 날부터 내 공책에 편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학교에 도착해서 가방을 열 면 처음 보는 공책이 있거나, 내가 사용하는 연습장 한 면에 항상 엄마의 편지가 있었고, 나는 그 옆 페이지에 답장을 남기곤 했다. 그때 우리는 그렇게라도 서로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하고 있었다.
별거 아닌 말들이었다. 엄마는 오늘 뭘 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내 편지를 보고 엄마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혹은 딸인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엄마가 놓치는 게 있는지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 대해서 끊임없이 궁금해했고 삶을 나누었고 그 짧은 편지들이 내 마음엔 차고 넘치는 엄마의 애정 그 자체였다.
그리고 편지에는 "은영아. 힘든 와중에도 엄마를 위해서 노력해줘서 너무 고마워."라는 고마움을 전하는 말들이 항상 가득했었다.
힘든 건 엄마였을 텐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내가 노력을 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엄마한테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내 질문을 들은 엄마는 웃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엄마와 딸이라고 해도 서로를 위한다는 게 당연한 건 아닌 거 같아. 세상의 모든 부모 자식이 사이가 좋고, 서로를 위해 노력하며 사는 건 아니거든. 근데 가끔 사람들은 그게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더라.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너무 많은데 말이야.
엄마는 너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모녀 사이가 돼서 좋아. 우리가 아무리 싸워도 다시 풀고 대화를 하는 것도, 너랑 내가 서로를 믿고 있고 의지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니 엄마는 하나하나 다 감사해. 이혼 자체가 너에게 상처였을텐데 망가지거나 방황하지 않고 버티려고 노력하고 나에게도 든든한 딸이 되어주니 그 노력이 가끔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해. 그래서 고마워 은영아. 엄마를 믿어주고 이해해줘서."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저런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이 깨닫지만 그때의 나는 엄마랑 함께 있으면 재밌고, 즐겁고, 좀 무섭기도 한데 너무 좋았고 고생한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으니까 엄마의 고마움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은영아. 엄마가 언제까지 살지 모르고,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르잖아.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 매일 최선을 다할게 엄마가. 엄마는 정말 너를 사랑하고 믿고 있어. 그건 알지? 나중에 우리가 헤어졌을 때 후회가 남지 않게 최선을 다할게."
그리고 엄마는 내게 말보다는 행동으로 모든 걸 알게 해 줬다. 엄마가 나를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당신의 삶 그 자체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를.
엄마는 언제나 말보단 행동으로 나에게 보여줬고, 자주는 아니지만 정확하게 말로 엄마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엄마와 나는 성향이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래서 '당연히,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모르는 부분도 있는데 엄마는 꼭 한 번씩 엄마의 마음을 되짚어 전달해줬고, 그 어쩌다 한 두 번 표현해주는 엄마의 마음이 나에게 얼마나 큰 거였는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더 잘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한테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무언가 걸려하거나 고민을 하는지 다 아는 사람처럼 설명해주고 알려줬다.
엄마의 투병기간에도 내가 무언가를 못해서 괴로워하면 "우리는 이 병이 낯설고 어려운 건데 당연히 못 할 수도 있지. 그런데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내가 알아. 너의 최선이 언제나 엄마를 눈물 나게 해. 그러니 아무것도 마음에 남기지 마"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나를 안심시키면서 오히려 나를 도닥거리고 있었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둘은 정말 세세하게 장례와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영정사진, 엄마 물건에 대한 정리에 대한 부분. 나에게 당부하고 싶은 마음들. 말도 잘 못하는 엄마는 천천히 엄마의 마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부분을 듣고 묵묵히 정리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다 전하고 정했을 무렵. 엄마가 나에게 한마디 한다.
"은영아. 후회가 남을 거 같아?"라는 말에 나는 "잘 모르겠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더니 "너는 나에게 최선을 다했어. 나는 그렇게 너의 마음을 받고 가. 그리고 나도 너에게 최선을 다했어. 우린 진짜 천생연분인가 봐."라고 마음을 전하면서 우리는 그날 둘 다 울었다.
맞다. 우린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사람들이 후회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나마 후회가 남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건 엄마의 투병 동안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는 게 아니라 매일 엄마에게 "사랑해 엄마."라고 말을 했던 내 모습 때문이다.
엄마는 엄마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삶으로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내가 어릴 때 다짐했던 것 중 하나가 "엄마에게 꼭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줘야지."였다. 내 기억엔 이 생각을 하게 된 건 초등학생 때부터였고 사춘기를 지나 애정표현이 어색해지는 10대에도, 사느라 바쁜 20-30대에도 꼭 빠지지 않고 전했던 건 '내가 엄마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 그거 하나였다.
다른 건 다 후회해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던 걸 후회하고 싶진 않아서 언제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을 전달했다.
중학생 시절 노트 속 글 속에 표현된 마음, 항상 엄마 옆은 안전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바빠서 서로 얼굴을 못 보는 상황이라도 평생 푸짐하게 채워놓은 밥과 반찬들. 엄마가 확진을 받은 날. 하필 그날이 내 생일이었는데 "미역국 못 끓여줘서 어쩌지?"라고 말하면서 아픈 자신이 아닌 내 생일을 챙겨주지 못해 속상해하던 엄마의 마음처럼.
물론 엄마는 사랑한다고 말하면 "징그러."라고 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우린 참.. 그랬다.
자식의 마음이 어찌 부모의 마음보다 클 수 있을까 싶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서로를 위해 살았다. 하나님이 우리 모녀에게 허락해 준 이 시간을 정말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내가 잊을만하면 꼭 그걸 되짚어주고, 가는 마지막까지도 내가 괴로워할까 봐 어떻게든 다 전달해준 엄마의 마음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후회가 남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것도 엄마의 지혜로움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가고 나서 딸이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길 바라는 마음 덕분일지도.
다 엄마 덕분이다. :)
만약 그대들에게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말들과 기준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묻고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 말처럼 모든 부모 자식이 좋을 수 없고, 당연한 관계도 아니다.
결국 부모님과의 관계도 관계성이니 '서로' 노력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뭘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기준에 맞춰서 무언가를 못했네 잘했네 하고 말하고 후회하기보단,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한다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엄마를 내 엄마로 만날 수 있어서, 서로 그리워할 수 있는 모녀가 될 수 있는 인연이었음이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도 엄마는 하늘에서 나는 땅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끊임없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사랑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삶을 사랑하고, 살다가 엄마를 만나면 좋겠다. 엄마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