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되어 주는 것도 '사람'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엄마와 앙꼬를 보내고,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생각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가장 위로가 되어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지금까지도 곁에서 제2의 가족처럼 꾸준히 안부를 묻고, 삶의 고민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혼자 지내는 것에 큰 불편함을 느끼진 않는다. 떠 안겨진 숙제가 있어서 힘들 뿐이지 삶의 질은 많이 좋아지고 있고 마음도 더 단단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4년 동안 살겠다고 미친 듯이 발버둥 친 결과겠지만, 그 과정 동안 옆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 새롭게 내 옆에 나타나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대들이 있어 마음판이 차갑게 얼었다가 다시 녹기도 하고, 엄청 뾰족해졌다가 다시 보송보송해지기도 했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었다.




언젠가 친구 하나가 전화가 왔는데 울먹거리면서 말을 한다.

"은영아. 진짜 미안한데 너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 나 어머님이 너무 보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울컥한 지 말을 더 하지 못하고 있어서 "나도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 하고는 같이 울었다.


한 친구는 퇴근길 통화를 하다가 내가 "우리 엄마가 이랬고 저랬고" 하면서 신나게 말을 하는데 순간 말이 없다. 그래서 내가 "너 혹시 우냐?"라고 물어봤더니 그 친구가 대답한다.


"나는 어머님 이야기만 나오면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 어머님이 보고 싶나 봐 내가."


애들이 가끔 이렇게 나오면 사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다가도 왠지 모를 고마움에 울컥 터지게 될 때가 있다.


엄마를 나만 기억해야만 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


가끔은 그 생각이 너무 무거울 때가 있는데 아직은 혼자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게 안심이 되는 건지 든든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엄마가 많은 사람들에 기억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구나 싶고 아직은 기억해주는 이들이 있어 혼자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평온해지기도 한다.


엄마는 내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 내가 없어도 집에 찾아와 엄마랑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고, 연락을 주고받았던 녀석들도 있었고, 고민이 있으면 "어머님은 뭐래?"라고 물어봐 달라고 말하는 녀석들도 있었고, 나랑 통화를 하다가 결국 엄마를 바꿔달라고 해서 안부를 전하고 한참 수다를 떤 후에야 전화를 끊기도 했다.


장례식장에서 한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들도 '어머님 가는 길은 뵈야지. 인사드리러 왔어.' 하면서 찾아와 엄마를 보고 함께 슬퍼하기도 하고, 장례가 끝난 후에도 '어머님 모셔진 곳이 어디라고?' 묻고는 혼자 다녀왔다는 녀석들도 있었다.


정작 나는 그들의 부모님들과 인사를 하는 정도이거나 아예 뵌 적이 없는데, 도대체 내 친구들은 왜 이렇게 우리 엄마를 보고 싶어 하고 기억해주는 건지 "야 나는 너희 부모님한테 이렇게 못해."라고 말을 하면 "당연하지. 어머님이 나에게 해주신 건 쉬운 일은 아니거든. 그러니 괜찮아."라고 쿨하게 대답하는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어떤 인연이었건 연락이 끊겼던 아니면 꾸준히 이어졌던 상관없이 함께 위로하고, 엄마를 기억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엄마가 많이 좋아하겠구나 싶다가도 엄마가 곁에 함께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하다.




가끔 "엄마"라는 단어를 너무 쓰지 않고 있다는 걸 자각할 때가 있다. 매일 눌렀던 엄마의 핸드폰 번호를 누르지 않고 사는 것도, 그 번호가 희미해지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마다 왠지 모를 허전함이 불쑥불쑥 찾아올 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내 앞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꺼내는 걸 극도로 미안해하기도 하지만 나는 차라리 아무렇지 않게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허전함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만난 외가 식구들과의 자리에서 다들 의식적으로도 엄마의 이야기를 피하는 걸 느꼈는데, 나를 배려해서겠지만 그게 더 서글펐다. 물론 각자 슬퍼하는 방식이라는 걸 알고 있다. 말을 꺼내면 누구 하나 눈물이 터질 것이고 그러면 우린 다 각자의 방식대로 우느라 바쁠 테니.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엄마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게 아닐까 했다. 나 혼자라도 기억하면 되지 하면서 웃다가도 그게 또 버겁다고 느껴져서 슬플 때가 있겠다 했는데, 사람들이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 감정의 공간마저 잘 메꿔주고 있다.


새롭게 알게 된 인연들과도 자연스럽게 엄마의 이야기를 하고, 또 브런치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매일 말하고 있는 지금. 아직은 조금은 맘 편히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라면, 이렇게 감정의 공간을 채워주고 같이 기억하고 있다고 엄마를 그리워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또 메꿔지고, 녹아지고, 보송보송해진다.




엄마를 보낸 후 새롭게 알게 된 인연들이 가끔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어머님을 직접 만나 보았더라면 너무 좋았겠다." , "그런 어머님이라면 충분히 아파하고 힘들어할 수밖에 없겠다. 그러니 충분히 힘들어해도 되겠다 싶다.", "대화를 나누면 너무 행복했을 것 같은 분이 어머님인 것 같아."라고.


지나간 인연도, 오래된 인연도, 새롭게 알게 된 인연들도 결국 엄마를 기억하고, 알게 되고 있다는 것 이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기대하지 못했던 선물을 받은 거 같아 마음이 멍멍할 때도 있다.


친구 하나가 그랬다.

"어머님이 사랑이 많아서 그런 거 같아. 다들 집에도, 친구에게도 말을 못 하는 걸 어머님한테는 이야기를 하고, 또 대화를 하고 속마음을 위로받고 그랬던걸 꺼야. 그러니 지금까지도 어머님을 좋아하게되고 기억하고 있겠지. 넌 정말 복 받은 거야. 그런 어머님을 엄마로 둔 것을. 어머님을 만나게 해 줘서 고마워 은영아."


아마 이 모든건 엄마가 사람들에게 뿌려놓은 마음 덕분일 것이다. 아직도 엄마를 그리워하는 건 엄마가 사랑이 많고 정이 많아 누구에게나 친절했기 때문에 엄마가 뿌려놓은 그 사랑을 내가 '위로'라는 이름으로 선물처럼 받고 있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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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에게 많이 고맙다.

당연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아직도 엄마를 그리워하고, 기억하고 보고 싶다고 말해줘서. 내가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내가 모르는 엄마의 모습을 듣고 싶을 때 끊임없이 알려주고 들려줘서 너무 고맙다. 그렇게라도 조금씩 감정의 공간을 채워주고 메꿔줘서 또 살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정말 꼭 말하고 싶었다.

조금이나마 내 맘이 전달되길.


엄마 덕분에, 앙꼬 덕분에, 그리고 그대들 덕분에 그 시간들을 잘 이겨내고 이렇게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정말 고마워요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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