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나에겐 항상 설렘과 새로움이라는 키워드가 공존했던 달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12월은 유독 설레고, 행복한 일들이 마법처럼 일어나길 바라는 한 달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된 건 아마 어릴 때부터 12월은 항상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많이 느껴서 일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도 12월을 좋아하고 또 크리스마스에 진지하게 임하는 편이다. 그리고 큰 슬픔을 겪고 지나온 지금도 여전히 12월은 설레고 기분이 좋은 시간이다.
물론 이 즐거움과 설렘을 몇 년은 잃어버리고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가끔 그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가 누군가에겐 꿈과 희망의 시간이 되겠지만, 누군가에겐 절망으로 보내는 한 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버린 것이 다행이면서도 슬프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의 마지막 가을. 엄마와 대화를 하다가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우리 뭐할까?"
엄마는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같이 보내 줄 수 없을 것 같은데."라고.
이미 우리는 가을이 시작되면서 엄마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른 봄. 엄마의 생신이 있던 달에도 엄마는 "마지막 봄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도 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 그 봄. 내 작은 소망은 크리스마스까지 엄마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 였는데, 결국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지 못했다.
엄마가 떠난 그 해 크리스마스는 동생과 둘이 보냈다. 평소처럼 케이크를 사서 함께 나눠먹고 해리포터를 보고 그렇게 평소처럼 평범하게 보냈지만 느낌이 달랐던 이유는 바로 '엄마의 빈자리' 때문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의 투병기간, 엄마와의 이별 후에 내가 깨달았던 건 모두가 말하는 특별한 날이 누군가에겐 잔인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특별한 날에 있는 그 '특별함'이라는 것이 바래질 수 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경험이라는 걸 통해 얻게 되는 힘든 일들 중 하나가 바로 특별한 날이 특별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도 그중 하나였다.
명절, 크리스마스 등 무언가 특별한 날이 있는 그 기간에 병원에 있으면 병동 자체가 부산스러우면서도 무언가 쓸쓸했다.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지만 결국 밤 8시가 되면 여전히 병동의 불은 꺼졌고, 그 밤 환우분들과 보호자 모두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자리에 나도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그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때 내가 느낀 감정을 나중에야 조금은 정의 내릴 수 있었는데 나는 그걸 '평범함'을 잃어버린 쓸쓸함이라고 생각했다.
병원 밖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감정으로 그 시간들을 평범하게 보낼 수 없는 그 상실감과 쓸쓸함이라고-
누구는 겨울이 눈과 크리스마스의 계절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난방과 먹을 것에 대해 걱정하는 계절이 되기도 한다. 명절과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이 모여 오손도손 시간을 보낼 때, 누구는 가족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타지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시간에 납골당과 무덤. 그 앞에 가서 울기도 한다.
이 모든 모습이 평범한, 사람이 사는 과정 중 하나의 모습이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밝고 행복한 것이 평범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게 맞다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밝은 면도, 조금은 슬프고 어두운 면도 결국 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엄마를 보내고 맞이하는 첫 크리스마스, 첫 명절. 나는 아주 평범하게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 엄마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고 나는 굳이 이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매일 매시간 그 빈자리를 확인받고, 확인하는 시간과 장소들이 너무나 많아서 어느 날이던지 덤덤해지기 시작했다.
가족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 모든 특별한 날에 대해 나는 생각보다 괜찮아졌다. 왜냐하면 매일 느끼는 그리움과 슬픔이 그 특별하다고 말하는 날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으니.
그래서 나는 생각보다 평범하게 괜찮은 날들을 보낸다.
여전히 달력을 넘길 때마다 공휴일과 명절 기간을 확인하고, 명절에는 명절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기도 하고,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정신!이라고 외치면서 즐겁게 12월을 보낸다. 내 생일엔 여전히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여전히 엄마의 축복과 사랑을 받는다 의심하지 않는다.
엄마의 생신은 엄마를 찾아가거나 엄마를 추억하며 보내고, 엄마의 기일은 여전히 힘들지만 그 하루를 4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로 가득한 하루로 보낸다.
강한 척, 괜찮은 척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누릴걸 누리고, 누구보다 평범하게 그날들을 즐기고 지내고 있다. 그래서 혹시나 걱정이나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정말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라고.
P.S 날이 너무 춥네요!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