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하기로 했다.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엄마를 보낸 지 1년 6개월 만에 앙꼬를 보내고 나니 허탈했다. 이게 현실인지 아니면 꿈 속인지 알 수 없었던 비가 내리던 그 일요일.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앙꼬를 보낼 수 없다고 이미 축 늘어진 녀석을 안고 한참을 울었지만, 결국 작은 납골함에 담겨 나에게 안겼다.


무의식적으로 손과 발을 움직이려 애쓰던 나는, 빠르게 앙꼬의 짐을 정리한다. SNS를 통해 유기견 보호소에 필요한 물품이 있는지 문의를 하고 남아있는 앙꼬의 사료, 간식 등과 쓰지 않은 수건, 앙꼬의 담요와 약 등을 담아 보내고 집에 남아있는 짐들을 정리하면서도 영혼 없이 몸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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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누가 머리를 한 대 때린 것처럼 정신이 명료해지기 시작했다. 두려웠던 모든 일이 벌어지고 난 후, 고요함 속에 앉아있던 난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하고 더 현실적인 어딘가로 꺼내어지는 느낌이었다.


엄마와 앙꼬는 내 가족이었고, 최선을 다 한 후 세상을 떠났다. 신기하게도 누군가 꼭 옆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그들이 떠난 후에도 매일매일 엄마가, 앙꼬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알 수 있었다.


두려웠던 일을 겪고 난 나는 더 이상 무너지는 건 스스로에게 용납할 수 없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슬픔 안에 있을 수는 없었고, 이제 내 삶을 다시 정비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비 오는 일요일. 둘이었던 우리를 지나 나는 정말 혼자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나보다 엄마가 우선이었고 이유였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나서도 삶의 이유가 앙꼬였으니 나 자신을 먼저 우선순위에 둔 적이 없었고 그럴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앙꼬가 떠나고 나니 정말 내가 '나'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어쩌면 당연한 이치를 깨달았다.


누군가 그랬다. 부모를 책임지는 것도 너무 힘든 일이지만, 반려견을 책임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너는 그 큰 두 가지 책임을 다 했으니 이제 정말 너만 생각해도 된다고 말이다.


맞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이제 나만 생각하면 되는 시간이 되었다.


철없던 10대, 20대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시작된 양가의 기대와 첫째로써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일들은 어리광을 부릴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부모님의 이혼 후 외가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참아. 넌 그래도 엄마랑 함께 있잖아."였다.


내가 아무리 아빠와 동생과 떨어진 슬픔이 있다 해도, 첫째로써 느끼는 힘듬이나 동생들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부당함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과 달리 난 한국에서 엄마와 함께 있기 때문에, 혹은 첫째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살았으니 내 감정에 대해 생각하는 건 사치였다.


이제와 보면 그건 폭력이었다. 지금 당장 그들에게 없는 게 나에게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진 폭력.


엄마랑 같이 있다고 하지만, 같이 있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지치기 시작한 나는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고, 어른들은 조금이지만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끊임없이 나에게 요구한 부담감과 책임감, 참아야 한다는 말들은 너무 무거웠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사촌 동생들이 나에게 "언니는 멘탈이 약하다고 생각했어."라는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고모가 항상 '은영이에게 말하지 마 은영이 힘들어. '라고 말했고, 언니는 맨날 좋은 것만 보고 듣고 자랐고, 엄마가 옆에 있고, 힘든 거, 알아야 하는 건 우리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러니 언니는 온실 속에 있는 느낌이었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정말 욕이 나올 뻔했다.


"너희는 내가 살아온 모습을 모르잖아. 언제나 너네만 힘들었던 거지. 엄마는 당연히 너희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겠지. 난 엄마한테 직접 들었어야 하니까. 내가 모르는 일은 없었어. 너희는 그렇게 믿고 싶었겠지만 항상 할머니, 삼촌, 엄마까지 모두 나에게 이야기했고 모르는 척 해라, 참고 넘기라는 말이 99%였으니 말을 안 했을 뿐이지.


매번, 매일 잘해야 하고, 모범이 되어야 하고, 잘해야 하는 첫째였고, 또 지금까지 그걸 이루었고, 이루려고 노력한 내 노력은 생각하지도 못했겠지. 너네도 사정이 있다는 걸 알고 항상 동생들은 어리니까 네가 참아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아무 말 안 한 거지. 온실 속에서 살았다고 하기엔 내 삶은 너무 치열했어."


이런 오해를 받을 만큼 말을 안 하고 모르는 척하고, 참고 넘겼던 그 시간들을 동생들이 알 수가 있을까 싶다가도 나에게 온실 속에 있는 것 같다니. 정신력이 약한 것 같다느니 좋은 것만 받고 산거 같다니 라고 생각하는 동생들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힘들어. 이랬어 저랬어 라고 말해도 "너는 엄마랑 같이 있잖아."라고 끝내버렸으니까. 이후 꾸준히 대화를 하면서 오해가 풀렸지만 씁쓸한 건 씁쓸한 거다.


참고만 살면 바보 취급을 당할 때가 있다. 좀 막살아보고, 반항도 해보고, 들이대 보고, 욕도 해보고 그렇게 살걸. 결국 이런 취급이라니 실소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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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들에게 내 모습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나를 잘 알고 있다고 "너는 이렇고, 이래"라고 말하는 사람들 보면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 해도 웃으면서 넘긴다. 어차피 나에겐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고,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니까.


웃어넘기고, 밝은 성격에 무언가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느낌들이 많은 건지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를 가르치려 하기 시작했고, 나에 대해 잘 안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었다. 진짜.


생각해보면 나는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화도 애정이 있어야 내고, 변화가 될 것이라 생각되면 말을 할 수 있지 그렇지 않다면 굳이 내가 피곤해질 필요는 없으니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항상 자기가 힘든 것만 이야기한다. 자기를 챙겨달라고, 사랑해달라고, 네가 이해해달라고. 너는 그렇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끊임없이 위로와 사랑을 나에게 요구한다.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친구들도 대부분 그랬다.


나는 너무 지쳐있었고 지겨워졌다. 그 모든 것들이.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 만 보고, 하고 싶은 말만 했지 내가 얼마나 힘들어 지쳐있는지 나를 봐주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만하기로 했다. 그딴 거.




"내가 정신력이 약한 거 같데, 그래서 공황장애에도 걸렸다 생각하나 봐."라고 말했더니 친구가 화를 내며 욕을 한바탕 하고는 나에게 말했다.


"넌 왜 화를 안내? 화를 좀 내야지 알지. 난 사람들이 너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들. 너에 대해 모르는 것들을 좀 알았으면 좋겠어. 너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떠들었던 사람들이 찔려하고 꼭 사과했으면 좋겠어.


내가 너를 오랜 시간 동안 봐왔지만, 난 네가 이 모든 걸 견디고 이겨내고 있는 걸 보면서 너무 대견하고 기특해. 정신력이 약하다면 결코 공황장애가 올 때까지 버티지도 못했겠지. 그렇게 말한 사람들 절대 너처럼 못 살아. 네가 생각이 많고 속으로 얼마나 참고 견뎌왔는지 말한 적이 없으니 모르겠지만 정말 어이가 없네. 이제 너만 생각해 은영아. 다 풀고 살아."


맞다 풀고 살아야 할 때가 되긴 했다. 그만해도 될 것 같다 이제.


앙꼬까지 보내고 난 후 내 삶의 이유는 "나"로 바뀌었다. 이제 오롯이 정말 나다. 20대를 다시 사는 기분이기도 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찾는 기분이기도 하다. 늦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수도 있다.


엄마의 투병과 죽음 후 1년 6개월. 그리고 앙꼬가 떠난 후 1년 6개월은 정말 달랐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정말 오롯이 나만 생각하기로 하는 시간들을 가지면서 삶의 방향과 생각이 많이 바뀌었으니 말이다.


난 이 이별을 통해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음이 슬프고 아픈 걸 떠나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다. 경험해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 있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면서 나의 공황의 이유도, 삶의 방향에 대해서도,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이제야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굳이 이런 아픔을 겪고 난 후여야 할까 싶지만, 현실로 돌아와 다시 나와 삶에 대해 시작하게 된 건 앙꼬가 가고 나서야 진짜 시작이었다. 힘든걸 내 던지고 그만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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