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앙꼬가 어느 날부터 밥을 먹을 때 오른발을 살짝 들고 먹기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병원에 가서 귀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한 달. 약간은 이상해서 병원에 가는 날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노견이고, 페키니즈 자체가 나이가 들수록 잔병치레가 많은 편이라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앙꼬는 귀 치료를 받는 것도 싫은데 갑자기 피도 뽑고, X레이도 찍으니 벙벙한지 원망스럽게 날 한번 쳐다본다.
시간이 흐른 뒤, 선생님께서 "앙꼬가 오른발 신경에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부정맥도 조금은 의심이 되고요. 앙꼬가 14살이니까.... " 그 뒤로 선생님께서 걱정되시는 부분들을 설명해주시는데 나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른발 신경에 대한 문제. 힘이 빠지는 증상. 부정맥 의심. 듣자마자 힘이 빠진다. 왜냐하면 이건 엄마의 증상과 같았기 때문이다. 앙꼬가 엄마와 같은 증상이 시작되었다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와도 같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 약을 먹어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멘탈을 잡기 힘들 정도로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제 앙꼬마저 곁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인가 싶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겨우 둘이 사는 것에 적응하기 시작했던 봄이었다. 그런데 또 시작이었다.
날씨도 좋고, 따뜻했던 5월.
병원에서 걸어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는지 모른다. 집에 돌아와서 앙꼬 다리와 몸을 마사지하는데 앙꼬는 불편한지 자꾸 자리로 가려고 한다. 결국 앙꼬를 자리로 보내고 한참 멍하니 있었는데 앙꼬가 눕지 않고 나를 쳐다본다.
그런 앙꼬를 보면서 내가 말했다.
"앙꼬야. 네가 아프려나 봐. 왜 엄마랑 증상이 같을까? 병원에서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들었지? 너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앙꼬야. 미안한데 1년만 버텨주면 안 될까? 언니는 아직 엄마를 보낸 지 반년밖에 안돼서 그런지 너마저 없으면 언니는 너무 무서울 것 같아. 이기적인 거 아는데 앙꼬야 1년만 버텨주면 안 될까?"
앙꼬는 그런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그 오묘한 무언가 정지된 느낌. 나는 울고 있었고, 앙꼬는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와서 안긴다.
정말 이 녀석 때문에 살기로 한 거였는데, 반년의 평화가 이렇게 깨져버리다니 유일하게 남은 내 가족과의 이별을 또 준비해야 하는 건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꼬박꼬박 약을 먹이기 시작한다. 면역력이 떨어지니 피부도 다시 안 좋아져서 2-3일에 한번 약욕을 시킨다. 앙꼬를 살리려면 정신을 차려야 했고, 누구보다 냉정해져야 했다. 그래서 아직도 앙꼬에겐 미안한 게 많다.
그래도 그 시간을 보내면서 이렇게라도 앙꼬에게 마음껏 무언가 해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너무 감사했다. 어느 날은 귀찮기도 하고, 어느 날은 힘들기도 해서 "앙꼬야 그만 아파라."라고 툴툴거린 적도 있지만 결국 앙꼬와 보낸 그 시간들은 감사함이었고, 우리 둘은 잘 해결해나가기 시작한다.
엄마가 가고 나서 내 매일매일은 가슴으로 우는 날의 연속이었는데 그 슬픔을 채워준 유일한 존재는 앙꼬였다.
앙꼬가 심장약을 먹기 시작한 어느 날 갑작스럽게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온몸을 고통스럽게 버둥거리기 시작한다. 병원도 문을 닫아 물어볼 수 없었던 그 밤. 처음엔 이유를 알 수 없어 저녁 약을 다시 먹였는데, 발작 증상은 나아지지 않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진행된다.
그 밤. 앙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고,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도 와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아침까지 앙꼬 옆에서 몸을 주무르고 울면서 죽지 말라고 말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시간. 나는 다시 두려움과 불안함에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앙꼬는 나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었다. 내 친구였고, 자매였으며 내 삶의 이유였다.
물만 먹고 새벽 내내 발작을 했던 앙꼬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간다. 선생님께 앙꼬를 보여드리자 안도가 되었는지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두 손을 빌면서 울었다. 선생님이 나를 진정시키고 앙꼬를 보시는 동안 나는 눈물범벅이 된 모습으로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혹시 앙꼬가 이번에도 저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참고 있는 거라면 제가 앙꼬를 보내줘야 되지 않을까요? 저 때문에 앙꼬가 버티는 걸 더 이상 볼 자신이 없어요. 그것까지 고려를 해야 하나요?" 하고 울었다.
그런 나를 보시고는 "우선 앙꼬의 상태를 보고 생각해봐도 늦지 않아요. 앙꼬가 처음에 왔을 때보다 무언가 표현을 하고 있어요. 낑낑거리고 버둥거리고 물론 발작이 표현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그런데 처음보다 앙꼬가 버티고 있어요. 상태가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에요. 노견이 되면 겪는 일들 중 하나예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왠지 모를 안심이 된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결국 3일 정도 입원을 하기로 했다. 제일 약하게 쓴 심장약이었는데 힘들어하는 거 같다는 결론이었다. 그날 앙꼬를 병원에 맡기고 집에 돌아와 털썩 누워 천장을 보는데 앞으로 이렇게 집에 앙꼬가 없는 것도 대비하고 적응을 해야겠지 라는 생각이 들자 서러워졌다.
그건 서러움이었다.
앙꼬마저 보내야 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에 대한 서러움.
3일을 출근을 하면서 앙꼬를 병원에 맡기고, 퇴근을 하면 데리고 와 집에서 함께 있었다. 그래도 내가 없을 때 앙꼬가 병원에서 케어를 받을 수 있는 것이 큰 안심이 되었고 3일 동안 앙꼬는 발작 없이 잘 지냈다. 집에서는 잘 짓지도 않더니 병원에서는 짓고, 화장실도 잘 가고 건강히 잘 있는 영상도 받아보니 안심이 되었다.
퇴원을 하는 날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앙꼬는 참 이상한 게 있어요. 딱 경계까지만 가요. 이 이상 증상이 있으면 다른 치료로 들어가거나 심각해지는 경우들이 있는데, 경계까지만 갔다가 다시 돌아와요. 앙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껴진 게 보호자분이 힘든걸 되게 힘들어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살려고 노력하는 느낌이에요."
가끔, 그리고 아직도 생각한다. 앙꼬에게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될 만큼 내가 잘했던 적이 있던가?
어느 날부터 다리의 문제는 사라졌고, 밥도 예전보다 잘 먹고 더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귀 염증도 어릴 때보다 회복 속도가 좋아서 넥 카라를 안 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고, 피부 때문에 2-3일에 한 번씩 했던 약욕도 1-2주에 한 번으로 점점 나아졌다.
그 후로도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앙꼬는 버텨냈고 노력해주고 있었다.
엄마의 1주기였던 2018년 11월.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리면 앙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뜨면 댕댕 박사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앙꼬를 발견하곤 놀라기도 했고, 어딜 가던 앙꼬는 나를 쳐다보고 주시하고 있었다.
공황이 심해지면 옆에 와서 눕고, 내 이마에 자신의 얼굴을 올려놓고 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다. 1주기가 지나고 나서도 심해지는 공황 앞에 무기력해진 내 옆에 와서 장난을 치고 내 얼굴과 손을 핥고 일어나라고 응원해준 것도 앙꼬였다.
우리는 서로 보듬어주면서 무사히 그 해를 넘겼다.
그리고 앙꼬에게 부탁했던 1년이 지난 2019년 5월.
앙꼬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