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는 내가 책가방이나 준비물을 스스로 챙기도록 했다. 1학년 때는 책가방도 챙겨주고, 준비물을 놓고 가면 학교로 가져다주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예고'를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준비물을 가져다주지 않을 거야. 엄마랑 같이 연습하자. 혼자 할 수 있게."
매일 저녁시간 엄마와 알림장과 시간표를 펴놓고 책가방을 챙기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침에 "일어나." 이 말을 2번 정도를 끝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엄마는 더 이상 깨우지 않아 지각을 하기도 했고, 준비물이나 숙제를 챙겨가지 않아 집에 전화를 하면 엄마는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래서 손을 들고 서 있어보기도 하고, 손바닥을 맞기도 하고 집에 가서 그거 가져다주는 게 어렵냐고 툴툴거리는 나에게 엄마는 항상 "네 책임이지. 혼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라고 말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준비물을 사야 할 때마다 내 실내화 주머니에는 항상 준비물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과 오는 길에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는 돈이 항상 들어있었다. 준비물 때문에 발을 동동 굴리며 가방 속, 실내화 주머니 앞쪽을 뒤지면 항상 돈이 있어 준비물을 살 수 있었고, 하교 시간 친구와 떡볶이를 먹으면서 집에 올 수 있었던 건 바로 엄마의 지혜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매일 밤. 책가방을 챙기고 자버리면 그 밤 내 책가방을 한번 더 확인하고, 알림장을 보면서 준비물에 맞게 동전을 준비해둔 엄마는 항상 "혼자서 할 수 있어야 해. 너는 할 수 있어."라는 것을 조금은 섭섭하지만 직접적으로 깨닫게 해 준 사람이었다.
비가 오는 날. 다른 엄마들은 다 우산을 들고 학교로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데, 엄마는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포기하고 집에 갔다. 없으면 없는 대로 알아서.
그래서 대학생이 된 어느 날 그때의 일들이 궁금해서 엄마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 초등학교 다닐 때 비 오는 날 왜 우산을 들고 학교로 오지 않았어? 난 그거 되게 섭섭하던데."
"우산을 들고 뒤에 숨어서 널 기다린 적은 있지. 딸이 비를 맞는데 어느 엄마가 그게 좋겠어. 그런데 알려주고 싶었어. 가끔은 비를 맞아도 괜찮다고. 비를 맞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우산을 빌려보기도 하고, 친구에게 같이 쓰고 가자고 부탁도 해보고 스스로 그 상황을 잘 해결해보길 원했던 거 같아. 그리고 내가 매번 우산을 들고 널 찾아갈 수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더라고.
너는 자라나는 게 너의 목표였겠지만, 나는 너를 품 안의 자식이 아니라 떠나보내야 하는 게 내 숙제가 되더라. 처음엔 생각만으로도 너무 섭섭하고 속상했지 아직 어린데 뭘 이러면서. 그런데 널 아끼는 마음만큼 해야만 했던 것 같아. 내가 없어도 혼자 할 수 있게."
내가 초등학교 시절, 엄마는 겨우 30대였는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고 물으면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하지만 너를 위해서는 내 사랑을 조금은 숨겨야 할 필요도 있어야 했어. 그건 내가 엄마로서 해야 하는 연습이었지. 언젠가 너를 떠나보내야 하는 연습. 혹은 집착을 내려놓는 연습. 애정이 과해지면 그것도 폭력이 될 수 있으니까."
엄마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았기 때문에, 혹여나 엄마의 사랑과 의지하는 마음이 나를 망치게 될까 봐 엄마도 미리 연습을 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혼자 더 많은 걸 해볼 수 있게 그리고 나를 떠나보내기 위한 연습.
그때 처음 알았다. 부모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자식이 성장할 때는 한 없이 엄마를 의지하지만, 조금은 자라고 나만의 생각이 강해지면 부모에 대한 의지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헛헛함과 섭섭함을 갖지 않기 위해 먼저 연습을 했다는 엄마.
"너는 너만의 세상과 규칙이 만들어지고 있었거든. 난 그걸 존중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어."
생각해보면 엄마는 항상 뒤에 있었다. 비가 오면 10분을 걸어갈 거리라면 3분만 걸으면 엄마가 앞에 우산을 들고 서있거나, 준비물이나 숙제를 챙기지 않으면 "오늘은 뭐 빠트린 거 없어?"라는 말로 힌트를 주거나 뭐 그런 모습들.
혼자 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잘하면 잘한다 칭찬해주는 인내심과 실수나 실패를 했을 때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모습들까지. 가끔 얼마나 엄마 속이 썩어 문드러졌을까 싶기도 하다. 난 워낙 내성적이었고, 느렸으니까.
그러던 내가 엄마의 노력으로 '혼자' 무언가 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혼자 못했던 것들을 해보기도 했다. 단순한 것들이었는데 혼자 학원에 다닌다거나, 혼자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밥을 하고 뭐 이런 소소하고 단순한 것들.
한참 어울리고 몰려다니기 좋아할 나이고 지금처럼 혼자 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그때, 왜 그걸 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많이 성장하고 생각이 더 많아지기도 했다. 아마 "혼자서 해봐야지."라고 말한 엄마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엄마는 항상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널 믿어. 뭐든지 혼자서도 잘 해낼 것이라는 걸. 우선 내가 널 그렇게 키웠고, 넌 또 그만큼 해냈잖아. 네가 못할 것 같으면 아마 엄마도 하라고 하지 못했을 거야. 그런데 너는 매 순간 해냈고, 지금도 해내고 있잖아. 하나만 기억해. 내가 널 믿고 있다는 것."
결국 난 엄마의 끊임없는 사랑과 믿음. 존중과 인내로 만들어진 '하나의 인격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도 가끔 친구들이 물어본다.
"넌 어떻게 그 모든 과정을 견디고 있어? 사실 널 모르는 사람들은 널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많다고 말하는데 내가 아는 너는 항상 묵묵하게 견디는 스타일이거든. 어떻게 견디니 도대체. 혼자"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딸이니깐. 엄마가 돌아가시고 어떤 분이 와서 나한테 그러더라. '은영아. 너는 엄마의 분신이야.'라고. 그래서 생각해봤지. 엄마가 세상에 남긴 작품이 '나'이지 않을까 하고. 엄마가 엄청 연습시켰잖아. 날. 그러니 살아야지 어쩌겠어."라고.
독립을 하고, 혼자 삶을 꾸려나가는 게 가끔은 어렵고 지칠 때도 있다. 사실 누군가 옆에 있어도 결국 삶은 혼자 살아가야 하는 일이니 누구든 혼자가 아닐까 싶은 세상에서 넘어진 적은 있지만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는 이유는 역시 엄마의 믿음 덕분이다.
그 힘든 시간들 동안 삶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던 이유도, 내가 지금 이렇게 버티고 버텨 글을 쓰고 삶은 나누는 원동력도 엄마가 믿고 있는 나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잘 이겨내고, 즐겁고 따뜻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너무 길 것만 같은 10월. 그리고 11월.
잘 이겨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