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꼬의 마음.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by 남다른 양양

꼬물이었던 앙꼬가 우리 집에 처음 발을 내디뎌 나에게 걸어와 안겼던 그날.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앙꼬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


앙꼬를 처음 만난 그날부터 우린 자매가 되었다.




셋이 아닌 둘이 된 시간부터 앙꼬도 나도 한동안 적응기를 가져야 했다. 엄마의 빈자리에 대한 적응.


앙꼬는 산책을 나가 엄마와 비슷한 키, 비슷한 나이를 가지신 분들을 보면 따라가거나 한참 쳐다보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자리에 서서 앙꼬의 의문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줬는데, 한참 고민하던 앙꼬가 나를 올려다보면 "엄마가 아니야. 앙꼬야." 하고 말해준다. 그러면 앙꼬는 다시 한번 그쪽을 쳐다보고,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길을 걷는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앙꼬는 엄마의 자리에서 한동안 냄새를 맡거나,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가면서 어느 순간 앙꼬는 산책 후에는 내 옆에 와서 눕기 시작했다.


더 이상 엄마의 냄새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체념했다는 듯이.


앙꼬는 엄마를 엄청 사랑하고 신뢰하는 녀석이었다. 엄마가 앙꼬의 털이나 발톱을 자를 때, 앙꼬는 눈을 감거나 잠을 자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 한 번은 앙꼬가 귀가 베이는 사건이 있었다. 귀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고 엄마는 털을 깎다가 놀라서 난리가 났었는데, 앙꼬는 그런 엄마를 한번 쳐다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아 나머지 털을 깎을 때까지 기다렸다.


털을 다 깎고 나서는 엄마는 앙꼬를 안아 들고 약을 발라주면서 미안하다고 말을 했지만, 앙꼬는 엄마의 볼을 한참 핥고 한동안 엄마를 쫓아다니기도 했다. 도대체 이게 찐 사랑이 아니면 무엇인가 싶다.


그런 앙꼬의 털을 엄마의 투병 후 신뢰감 전혀 없는 내가 깎기 시작해야 했으니, 둘 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부터 엄마가 휠체어에 앉아 내가 앙꼬의 털을 깎일 때, "앙꼬야 이제 언니가 해줄 거야. 걱정 마"라고 앙꼬에게 격려(?)를 해주기를 몇 번, 어느 순간 앙꼬는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는지 긴장을 풀고 자리에 누워 있지만 절대로 눈을 감지 않고, 끝까지 발톱도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털은 깎일 수 있었지만, 발톱은 여전히 내주지 않아 결국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동물병원에 미용을 맡기러 가기로 했다.





앙꼬가 노견에 속하고 앞으로의 일들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다니던 동물병원보단 집 근처 동물병원에 다니기로 결정하고 찾아갔다. 앙꼬가 어렸을 때 미용을 맡기고 난 후 스트레스에 힘들어했던 앙꼬라 집에서 털을 깎아줬는데 이젠 좀 컸고, 버틸 수 있겠지 싶어 찾아간 병원에서 나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처음 본 선생님과 인사를 한 후, 그동안 앙꼬가 겪었던 피부병, 현재 앓고 있는 귀에 염증 부분부터, 발톱의 상태 등을 말씀드리고 난 후 앙꼬를 한참 보시던 선생님이 나에게 물어보셨다.


"앙꼬가 한 번도 낑낑거리거나 아프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나요?"

"네, 앙꼬가 잠을 평소보다 많이 자기 시작했고, 약을 발라줘도 가만히 있을 뿐 다른 건 없었어요."


내 대답을 듣고 한참 말이 없던 선생님께서 나를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인분이 요즘 슬프거나 힘든 일을 겪으셨나 봐요. 앙꼬 상태로 보면 아마 느끼는 고통이 굉장히 컸을 텐데, 아무런 표현을 안 한 거라면 아마 주인분이 힘든 거라 생각했나 봐요. 가끔 강아지들이 주인이 힘들거나 슬프다고 느낄 때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지 않는데, 아마 앙꼬가 그런 거 같네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던 나는 눈에 눈물이 찬다. 그런 나를 보시고 선생님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약 바르고 관리해주면 금방 괜찮아질 테니 걱정 말라고 위로를 해주시고는 더 이상 묻지 않으셨다.


앙꼬의 마음은 항상 이렇듯 뒤늦게 알아버려서 마음이 너무 아플 때가 많다.


앙꼬.jpg 미용을 다녀온 후 간식을 주지 않아 화가 난 앙꼬.


미용을 맡기고 앙꼬가 혹여나 일본 여행 때처럼 놀라거나 불안해할까 봐 앙꼬를 한참 만져준 후 병원 앞 커피숍에서 기다렸고, 미용이 끝났다는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병원에 가니 앙꼬는 나를 보자마자 꼬리를 치며 반가워한다.


의사 선생님께서 피부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귀 치료를 하자고 하셔서 알겠다 대답한 후 앙꼬 간식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병원을 나섰다. 앙꼬는 미용 후 스트레스가 없는지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니 신났다는 듯 귀를 팔랑거리며 잘만 걷는다.


앙꼬와 함께 집으로 걸어오는 길. 앙꼬는 잘 걷고 있는데, 나는 내가 힘들까 봐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아서 땅만 보고 걸었다.


평소보다 말도 없고 걷기만 하는 내가 이상한지 앙꼬는 자리에 서서 나를 쳐다봤는데 "가자 앙꼬야."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말을 하라 이건가 싶어 결국 자리에 앉아 앙꼬와 눈을 맞추고 "고마워 앙꼬야. 그리고 미안해." 하고는 울어버렸다. 앙꼬는 내 얼굴을 핥아준다. 그리고는 다시 걷자고 움직이는 앙꼬를 보고는 눈물을 닦고 걷는다.


우리 둘이 함께.




그 후로 우리는 매주 토요일 앙꼬의 귀 염증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앙꼬에게 좋을 법한 사료도 알아보고, 약을 받아와 꾸준히 약도 먹인다. 귀 염증이 심해서 아무리 치료를 해도 그때뿐이라 거의 만성적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평소 하던 넥카라를 안 하고 지내도 될 만큼 앙꼬도 좋아졌다.


앙꼬도 나도 점차 좋아지는 것에 적응이 되어가고, 앙꼬가 몸이 편해지니 식욕도 늘고, 산책을 더 자주 할 수 있게 되어서 둘이 시간을 많이 보냈다. 14살, 조금은 더 이렇게 지내면 좋겠다 생각했던 시간이었지만 우리의 마지막이 그렇게 또 빨리 찾아오게 될 줄은 나도 앙꼬도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앙꼬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린 그 시간이.


keyword
이전 16화트라우마의 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