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장례식날 첫 번째 밤. 정신없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사람들은 돌아가고 가족들도 나와 동생만 남고 다들 집으로 돌아간 그 늦은 시간에 친구 혜미가 남아있었다.
혜미는 내 고등학교 동창으로 나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 내가 감정을 표현하고 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이다. 그래서 맨날 내 걱정을 하는 친구가 혜미다.
맞다. 나는 감정표현을 잘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 표현은 나름 하는 거 같다. 하지만 울고 싶거나 힘들 때 그 감정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기분이 좋지 않거나 힘들 때는 그 감정이 나올까 봐 말이 없어지고 술도 마시지 않는 편이다 혹여나 취중에 나올까 봐.
차라리 혼자 그 부정적이고 힘든 감정을 정리하는 게 익숙하고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내 감정표현에 굉장히 신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나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친구가 "장례식장에 도착했는데 네가 웃고 있더라. 근데 우리는 알잖아. 네가 힘들수록 웃는 걸. 그래서 저 녀석이 속이 얼마나 아프길래 저렇게 울지도 못하고 웃나 싶어서 내가 눈물이 났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런 내가 아이처럼 울 수 있고, 내가 뭐가 이랬어, 저랬어, 힘들었어라고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친구가 바로 혜미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각자의 자리가 달라지면서 연락을 1년에 한 번 할까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도 우리는 친구고,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
가끔 전화해서 내가 "1년 동안 울고 싶은 거 참다가 한 번씩 너랑 통화하면 우는 거 같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 혜미는 "응 알아. 울어. 들어줄게."라고 한다.
참 성격 비슷한 둘이 벌써 20년 지기가 되어간다.
모두가 돌아간 그 밤. 정리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마자 혜미가 말한다.
"이제 울어. 다 갔잖아. 이제 울어 은영아."
"나 근데 아침에 울어서 그런지 이상하게 눈물이 안나. 이상하지?"
그 말을 하는데 혜미가 날 한번 보고 엄마 사진을 한번 보고는 말이 없다. 무슨 맘인지 서로 너무 잘 알아서 문제인 우리는 괜히 돌고 돌아 다른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혜미에게 말한다.
"혜미야. 내가 아마 발인이 끝나면 제정신이 아닐 거야. 망가지고 무너지면 네가 와서 뺨을 한 대 때려주던지 아니면 절교하자고 해. 그럼 내가 알아들을게. 그럼 내가 정신을 차리고 살려고 노력해볼게."
그러자 혜미가 말한다.
"망가져도 괜찮아. 어머님 일이잖아. 울고 싶으면 전화해 언제든지 내가 들어줄게."
짜식. 누가 내 친구 아니랄까 봐.
혜미의 말을 듣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혜미에게 말한다.
"나는 앞으로 오롯이 혼자 이 감정들을 잘 이겨내 보려고. 나와 엄마의 관계 이상의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 누구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을 거잖아. 그래서 그냥 혼자 직면해볼 거야. 아마 스스로 벽이 많이 생기겠지 내가 나를 보호하려고.
오늘 사람들이 와서 한다는 소리가 빨리 결혼해라, 옆에 누구라도 있으면 괜찮다. 뭐 이런 말 너무 많이 하는데 1년은 아무 생각 안 하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어도 만나지 않으려고. 난 지금 판단력이 너무 흐려져서 조금만 잘해줘도 의지하려고 들지도 모르고 이러다 인생 망칠 거 같아서.
오롯이 혼자. 누구든 의지하려고 하지 말고 이겨내 볼 거야. 물론 의지하고 싶어서 너한테 전화해서 울 수도 있고 귀찮게 할 수도 있는데 좀 봐줘. 빨리 끝낼게"
우리는 서로 쳐다보다 술 한잔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괜히 엄마가 돌아가신 아침에 혜미한테 울면서 전화해서 "네가 나를 알아줬어야지."라고 투정을 부린 걸 사과도 하면서. 엄마가 가신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울어버리고서는 시간을 보냈다.
그 후로 너무 힘들거나 아무도 내 감정을 몰라준다고 느낄 때 혜미에게 전화를 하고는 "혜미야" 하고 그냥 울어버렸다. 그럼 혜미는 "응 은영아. 울어. 전화 잘했어."라고 하고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가만히 전화를 들고는 나를 기다려준다.
그게 얼마나 진이 빠지는 일인지 내가 알고 있고 너무 미안한데 나도 나 자신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이 미안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어른들은 하나같이 "결혼을 해. 남편이 있으면 차라리 나을 거야. 니 옆에 누군가 있어야지."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다. 장례식에서부터 아니 그전부터 그런 말을 너무 많이 들었는데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로 넘겼다. 그래서 더 오롯이 혼자. 이 과정들을 이겨낼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는 내 엄마지. 다른 누군가가 이 감정들을 이해해주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비슷한 일을 겪은, 결혼을 한 언니에게 이 말을 했는데 그 언니가 이렇게 말해줬다.
"맞아. 니 결정을 존중해. 나는 남편이 있어도 그가 생각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내가 힘들어하니깐 이해를 못하는 거 같더라고. 근데 그게 맞잖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일. 근데 가끔 그게 섭섭할 정도였어. 곁에 누군가 있어도 결국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감정이야 부모님의 죽음은."
이걸 누가 나와 같은 맘으로 이해해줄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할 수 있을까? 나와 같은 일은 사람들이 최대한 늦게 겪기를 원한다. 그만큼 아프니까.
사람들이 하는 위로는 장례식장에 와주고, 엄마의 투병 때 찾아와 주고, 마음을 전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내가 생각한 위로의 기한은 한 달이었다. 그 후로는 정말 혼자 이겨내야겠다 생각하고 준비를 했을 정도였으니 스스로 피곤하게 사는 거 같기도 한데, 정말 누구도 이 감정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참다 참다 터지고 슬프면 친척 언니랑 혜미, 희숙이에게 전화를 해서 울고 불고 했다. 위로해주느라, 들어주느라 얼마나 지치겠는가. 그래서 참 미안하면서도 그때의 난 어쩔 수가 없었다. (고마워 그대들 ♥)
그래서 지금은 많이 참는다. 혼자서 이걸 해결해보려고 더 많이 노력하고 있다.
돌아오는 11월. 엄마의 4주기를 앞둔 지금.
자연스럽게 그 모든 과정과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잘 소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 시간 동안 그 슬픔에 직면하면서 내 몸이 망가지고, 끝없는 트라우마에 힘들어하고, 공황의 끝을 봤고 정말 바닥으로, 아니 더 깊은 곳으로 빠지는 늪 같은 시간도 보냈고 지금도 보내고 있지만 오롯이 혼자. 이 감정과 시간들을 보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좋아하게 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어떤 상황보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기엔 나눠 써야 할 감정과 마음이 없었고 내 감정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의지하고 싶은 건지 진짜 좋아하는 건지.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좋아했구나.' 싶었을 정도로 감정에 대한 확신이 너무 없었다.
나는 너무 망가져가고 있었고, 그걸 스스로 일어나서 이겨내려면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았다. 스스로 서지 못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의지하기만 하면 그 관계는 지치기 때문에 보내야 하는 것도, 놓쳐버린 것도 너무 많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시간을 지나온 내가 그때의 나를 바라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조금은 나아진 지금에 오기까지 그 과정은 오직 나만 알지 않은가? 얼마나 많이 힘들었는지, 얼마나 많이 지쳤었는지, 한번 웃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처음 느껴보는, 말로도 설명 안 되는 그 감정들에 맞서느라 얼마나 무너졌는지.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내가 너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그리고 여전히 잘 이겨내 왔다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잘해나가길,
조금 덜 아프길 기도하는 맘으로 살아간다.
아마도 나는 잘 해낼 것이다. 그게 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