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다른 양양 Nov 04. 2021

내가 정한 복수의 날.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엄마의 장례가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스스로 전화를 한 게 거의 처음이 어색했던 것도 잠시 아빠는 "응 우리 딸!" 하고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아빠 엄마가 돌아가셨어. 엄마가 죽었다구. 며칠 전에 발인까지 끝났어. 내가 직접 아빠한테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동생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어. 이제 속이 시원해?"


중학교 1학년 아빠에게 모질게 만나지 않겠다고 말한 뒤, 처음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하는 거라 그런지 난 날카롭게 날이 서있었다. 동생을 찾고 나서도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나에게 아빠는 메일로 보고 싶다고,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고, 나는 일관적으로 아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볼 마음이 없다는 마음을 전했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사망 소식에 장난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아빠는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나한테 전화를 해서 울고 울었다. 사실 아빠는 엄마와의 재결합을 언제나 염원했었다. 그렇게 나와 엄마를 매도해놓고 재결합이라니. 


아빠의 사랑도 가끔 이해가 안 갈 때가 있다.


울고 있는 아빠한테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울 자격이나 있어? 나도 울지 못하고 있는데 무슨 자격으로 울어. 울지 마."




아빠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먼저 도착한 나와 동생은 조용히 앉아서 아빠를 기다린다. 나는 생각보다 덤덤했고, 동생은 긴장하고 있었다. 


동생은 아빠를 어려워한다. 아들이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아빠가 동생을 엄하게 대했다고 했다. 내가 아빠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굉장히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아빠가?"라고 당황을 했을 정도이니. 참 안쓰럽지 않은가.


긴장감이 도는 그 공기를 가르고 아빠가 도착했다. 나는 "아빠 왔어?"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어렸을 때처럼 이야기하고 아빠는 그런 나를 안고 반가워했다. 만나는 시간 내내 아빠는 나를 계속 쳐다보고는 반가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동생은 여전히 이 상황이 낯설기만 한가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아빠에게 말했다.


"내가 오늘 아빠를 보자고 한 건, 한 번은 아빠를 봐야 될 것 같았어 동생이랑 함께. 아빠는 지금 이 만남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야. 난 아빠에 말을 듣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고, 달라지지 않았다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 거야.


20년을 엄마와 내가 무언가 잘못인 것처럼 친가에서 매도하는 걸 듣고 그리고 동생은 그게 사실인 양 받아들이고 살고 있던데 가만히 있었던 건 엄마가 시끄러워지는걸 원치 않아서였을 뿐. 이제 엄마가 없으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그래서 아빠는 이 20년 간 고모들과 아빠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아빠는 순간 말이 없다가 고모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단순히 화가 나서 일 거라고 말하면서 당신 스스로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잘 기억이 안 난다는 말도 했다. 


나는 그 말을 듣다 웃어버렸다.


"아빠 동생이 어릴 때 내가 죽었다고 했었다며? 엄마는 완전 잘못이 엄청 많은 여자로 만들어놓고. 아빠랑 고모들 수준이 그거밖에 안 되는 거 내가 아쉽긴 한데, 아빠가 대답해봐 고모가 아빠랑 친했나? 우리 집 일을 상세히 알만큼 우리에게 관심이 있었어? 명절에 한두 번 만났던 사이에 뭘 안다고 동생한테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한 건데 쟤 지금 혼란스러워하는 거 안 보여?


그리고 아빠가 그때의 일들을 기억 못 한다면 내가 알려줄게. 그 모진 말들을 듣고 있던 건 엄마도 아닌 나였으니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설명해줄게. 그럼 생각이 날 거야."


아빠는 우리 가족의 일을 고모들이 말하는 게 당황스럽다고 말하면서 고모들을 이해할 수 없고, 동생을 키우는 모습이 맘에 들었던 건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어른들인데 이해해주면 안 되겠냐는 아빠의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든 고모가 그런 것도 아니고, 그래 그 2-3명의 요주의 고모들이 문제지. 근데 아빠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니까 내 성격에 지금까지 입 다물고 산거야. 근데 엄마를 대변할 증인이 나밖에 없더라고. 그리고 무서운 건 날 말릴 사람도 없어. 엄마는 죽었으니까. 


적어도 저 녀석(동생)이 지 엄마가 얼마나 억울한 건지는 알아야 되지 않겠어? 죽었다던 누나가 돌아와서 말할 정도로 억울한 거면 말이야. 근데 쟤는 지가 보고 듣고도 고모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던데 이해를 할 자격이 저 녀석한테 있던가? 당한 건 난데?"


동생은 그동안 듣고 자란 모든 것과 반대되는 이 상황과 아빠의 태도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고, 아빠는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었고 내 분노가 너무 크다는 걸 느끼는지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나는 정말 기다렸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이 날. 이렇게 당당히 맞설 수 있기를 생각하며 지난 시간을 살아왔었기 때문에 나는 준비가 되어있었다. 


오늘이었다. 내가 정한 복수의 날.




 


"아빠가 보기에 지금 내가 어때 보여?"


아빠는 "너무 잘 컸지. 힘든 시간 잘 보내고 대학도 나오고 회사생활도 잘하고, 사회복지사로도 일하고 있다며.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너무 바르게 잘 컸지."라고 너무 기특하다고 했다. 


"내가 아빠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내가 삶으로 증명한다고 했지? 엄마의 노력과 내 노력으로 내가 이렇게 잘 컸지. 고모들이 나보고 엄마 따라가면 망가질 수 있다고 질이 안 좋아진다고 했었던 게 생각이 나서 이를 갈고 내가 살았어. 


삐뚤어지지 않고 동생에게 자랑스러운 누나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고모들이 나보고 잘 컸다고 한다며? 맞아. 난 잘 컸어. 이 모습 보여주려고 만나자고 한 거야."


아빠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중1. 어른들의 무분별한 화풀이를 당해야만 했던 내가 생각했던 최고의 복수는 삐뚤어지지 않고, 착실히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중간에 유혹도 많았고, 힘들었지만 훗날 동생 앞에서는 누구보다 당당해지고 싶었다. 


그들의 인정이 필요했던 게 아니고, "내가 이렇게 잘 살아요."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인정은 이미 엄마와 나 자신이 나를 인정하고 있었고 그들의 인정이 필요할 만큼 인정을 못 받고 산 삶도 아니었다.


열심히 살아왔던 나를 당당하게 그들에게 보여주는 날. 바로 내가 정한 복수였다. 


"내가 엄마, 아빠 모두 사는 걸로 증명해달라고 했지? 엄마는 살면서 나한테 증명해서 내가 엄마에 대해 대변할 수 있어. 그런데 아빠는 내가 볼 때 여전히 똑같은 거 같아서 아빠의 삶은 내가 동생에게 알려달라고 하면 되는 건가? 그 모든 걸 듣고 나서 이제 판단하면 될 것 같아서.


아. 그리고 고모들도 내가 지금 당장 가서 따지지 않는 이유는 동생을 키워주셨기 때문에 참는 거지, 가족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야. 그러니 지금부터는 적당히 하시라고 해. 이제 무서울 거 하나도 없어서 내가 어떻게 할지 나도 잘 모르겠어. 이만큼 참아줬으면 된 거야."


아빠는 그래로 고모들인데 너무 버릇없게 말하는 거 아니냐고 화를 내길래 내가 한마디 했다.


"30대 중후반의 어른들이 14살짜리 애한테 3살짜리 동생을 갖고 협박을 하고, 초등학생도 안된 동생한테는 엄마가 어쩌고, 누나가 어쩌고 했던 사람들을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할 거 같아? 나를 조카로 대우 안 한 건 그대들이 먼저야. 이제 와서 그래도 아빤데, 그래도 어른인데 이딴 말할 생각하지 마. 안 보고 살면 그만이야. 20년이 넘게 쌓인 분노야. 쉽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


아빠는 나에게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가 집 앞까지 태워다 준다기에 나는 집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내렸다. 그리고 내리려는데 만나자고 해줘서 고맙다고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는 받지 않겠다는 용돈을 손에 쥐어주고 나서야 우리는 헤어졌다.



동생은 이 날 우리의 만남이 충격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날이었던 것 같다. 


우선 나를 대하는 아빠의 모습이 평소 고모들과 자신 앞에서와는 다른 말들과 반대의 모습을 보고 꽤나 놀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동안 고모들에게 들었던 게 아니라는 것을 한번 더 알게 되었다며 나와 아빠의 대화를 고모들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고모들은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당황스러웠했다고 알려주었다.


당신들의 생각과 다르게 잘 살아내고 올바르게 자란 나를 보여주는 것이 내가 정한 유일한 복수였다. 그래서 난 그걸 보여줬고, 이 이후로도 "은영이 잘 컸네."라는 말이 나왔다는 소리를 간간히 들었다. 그리고 이혼에 대한 편견이 많았던 그 시기를 살면서 내가 겪었던 불편함과 편견도 내 삶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여전히 그 누구도 사과는 없다. 이후로도 아빠와 연락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별 기대가 없다.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거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어리지 않지만,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걸 당신들 스스로 알 것이다. 인정하기 싫을 뿐.


이렇게 내가 정한 복수의 날은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와 대자로 뻗어버린 나는 홀가분하면서도 그동안 이런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밝고 열심히 산 내가 너무 대견하고 안쓰러워서 울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고생했다. 이제 다 했다."라고.


엄마의 죽음. 내가 정한 복수의 끝. 앙꼬의 죽음 등. 내 삶에서 큼지막한 사건들이 다 터지고 나니 정말 '無' 그 자체였고, 인생의 큰 과제들을 끝마친 느낌이었다. 그러니 앞에서도 말했던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다 끝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와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