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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다른 양양 Jan 24. 2022

덤덤해질 나이인가?

철은 없지만, 다정한 마흔이고 싶어.

삼십 대 후반부터 주변에서 누군가 아프다는 소리를 종종 듣게 된다. 그리고 마흔을 시작한 지금. 앞으로는 그런 맘 아픈 소식들을 더 많이. 자주 듣게 될 것이라는 걸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주말. 친구와 밥을 먹기로 했다. 


내가 1월이 되고 백신 3차를 맞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걱정을 해주었던 친구. 유독 1,2차 때 심하게 앓았던 나를 알아서인지 "집으로 내가 갈까?"라고 걱정을 하던 친구에게 이번엔 혼자 잘 이겨내 보겠다고 안심시킨 후 1주일이 지나 만났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기로 하고 불판에 고기가 올라가서 신나 할 때 즈음. 친구가 말한다.


"나 암 이래."


신나게 고기를 뒤집던 내가 순간 잘 못 들었나 싶어서 "뭐라고?" 하고 되물었더니 친구가 다시 한번 정확하게  말했다. 암에 걸렸다고.


최근 1,2년 사이에 이런 소식을 들은 것만 해도 벌써 몇 명인지 모두의 소식이 똑같은 감정으로 아플 수는 없겠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듣는 소식은 정말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너는 무슨 커피 마시듯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건 뭔데. 자세히 말해봐."


이 덤덤함이 왜 그렇게 울컥하는 건지 친구에게 자세히 말해보라고 쏘아붙인 후 기다리는 동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에 울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써야 했다. 


"크기가 좀 커서 항암을 하고 수술을 할지, 수술을 하고 항암을 할지 한번 더 검사를 받으러 가기로 했고, 2월엔 수술 날짜가 잡힐 것 같아. 수술할 때 말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너 화낼 것 같아서 미리 말하는 거야."


지는 이런 무시무시한 소식을 갖고 있었으면서 백신 맞은 내가 아플까 봐 걱정하는 건 뭔지, 도대체 비교를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오히려 나보고 몸이 어떠냐고 물어보질 않나. 이런 엄청난 소식을 덤덤하게 말하는 친구 목소리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니 결국은 당황한 친구가 내 손에 휴지 한 뭉텅이를 쥐어주고 나서도 진정되지 않아 한동안 코 끝이 빨개진 채로 밥을 먹어야 했다.


이런 일에도 덤덤해져야 하는 나이인가?



 

서른다섯. 엄마를 보내고 장례식장에 눈물을 꾹꾹 참고 있는 나를 보고, 위로를 해주고 곁에 있어주던 친구들이 '너는 항상 너무 일찍 겪는다.'라고 걱정을 하던 사람들의 삶이 한 때는 조금은 부럽기도 했는데, 그래도 나중에 친구들이 무슨 일을 겪으면 내가 먼저 경험한 건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애써 긍정적으로 해석했던 나였는데,


지금 친구들이 겪는 이런 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었고, 부모님 세대를 부양하고 보내드리는 일에 대한 걱정을 하던 녀석들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 이 순간이 너무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결혼과 출산. 승진 등 기뻐하고 축하해줘야 할 소식들보다, 이렇게 아프고 걱정이 가득한 소식들을 들을 나이가 된 건가 싶어서 이게 뭔가 싶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우리도."


모두 다 함께 호호 할머니가 되어도 곁에 있을 것 같은 친구들에게 닥친 이 일들이 왜 그렇게 맘이 아픈 건지 부모형제를 잃는 것도 맘이 아프지만, 친구를 잃었을 때의 맘도 10대 때 경험을 해봤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수록 왜 그렇게 크게 다가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아픈 것도, 누가 죽는 것도 나는 아직 극복하지 못했고, 이제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 나이가 든다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아직도 내 마음은 10대, 20대의 나 같은데 시간은 흐르고, 몸의 나이도 들어가는 지금. 어쩌면 당연한 시간이고 당연한 일일 텐데 마음과 머리가 몸과 시간을 따라가지 못해서 이런 건가 싶은지 나름 잘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조금 크면 이런 소식들을 덤덤하고 용감하게 잘 넘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여전히 이런 소식은 마음이 아프고, 특히 내가 아끼는 사람일수록 슬픔이 크고 눈물만 나서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 아직도 이 상황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기엔 조금의 시간은 필요하다.




아무렇지 않게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우리는 그날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웃고 울면서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정말 이런 일이 있었나 싶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하루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숨겨둔 감정이 올라와서 너무 속이 상해서 울었다. 가장 힘든 시기에 옆에 있어주던 친구가 아프다는 걸 그제야 조금씩 받아들이는가 싶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어디 가지 말고, 오래오래 내 옆에 있을 생각 해. 그러니 힘내서 잘 이겨내자."라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이런 모든 일에 너무 덤덤해지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냥 이런 모든 일이 덤덤해지면 너무 슬퍼질 것 같기도 하다.


소중한 사람들의 일들에 충분히 걱정하고,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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