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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다른 양양 Feb 24. 2022

방향이 꼭 정해져야 하는 건 아니니까

철은 없지만, 다정한 마흔이고 싶어.

'작가의 서랍' 속 쓰다가 만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다. 마무리지어지지 못하는 그 순간의 날 것의 감정들이 글로 남겨지고 차곡차곡 쌓여있는 공간을 보니 아프기도 하고, 보기 싫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방향을 잃은 느낌이다. 

하지만 꼭 방향이 정해져야만 하는 일도 아니다.


엄마와의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지만 그 방대함과 무거움을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워 브런치 북으로 묶어버리고 난 후 속이 너무 시원하면서도 남기지 못한 마음들을 어디에 풀어내야 하나 싶어 고민을 했지만 글을 꾸준히 쓰다 보면 자연스레 나오겠지 싶어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그때그때 쓰고 싶은 것들을 써야겠다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니 딱 정해진 무언가를 정리하기 위해 일기 형식의 글을 쓰기 시작한 내가 이제와 서야 무엇을 어떻게 쓸까? 말까?를 고민한다는 게 당연한 일인 것 같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방향을 꼭 정해야 하는' 예전 버릇이 나오기 시작한 것 같아 좀 멘붕인 느낌도 있었다.


그러니 헛돌 수밖에 없고, 오랜만에 이런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아보는 것 같아서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20살.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나는 '책임감'이라는 것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때부터 '실패는 안돼. 두 번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20대를 보냈다. 


그렇다고 20대의 낭만을 포기한 적도, 현실에 짓눌려 미칠 만큼 힘들어해 본 적 없는 생활이었긴 했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도 너무 많았고 고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무 살부터는 엄마의 간섭도 거의 없었지만, 대학 등록금 외에 모든 건 내가 책임져야 했으니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들과 해야만 하는 것, 도움이 필요해서 엄마와 상의를 해야 하는 것 들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매 학기 시작 때마다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계획을 세우는 정말 스스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습관이 생겨나긴 했었다.


그리고 이때 스스로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 휴학을 하고 생각을 정리할 만큼의 여유는 스스로에게 없었기 때문에 나름 치열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치열은 무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방향이 없거나, 목표가 없는 것에 굉장한 불안감을 느끼는 게 나였다. 


아마 방향이나 목표가 없는 건 열심히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빈 시간을 유독 견디기 힘들어했다. 마음은 나무늘보처럼 늘어지는 게 편안하다고 느끼지만 그러기엔 너무 한심하다 여긴 거였는지 무언가를 배우고, 해야만 했고, 알아야 했던 습관이 있었다가 결국 무너지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엄마와의 이별, 불안장애가 생겨 무너지고 나서야 이 모든 것을 내려놔야 만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익숙해졌다고 이제 되었다고 생각했다가도, 별거 아닌 일에서 방향을 잃었다 여기면 기분이 다운되는 건 여전해서 매일 스스로에게 결심을 하듯이 이야기를 해주게 된다.


"방향을 잃어도 괜찮아. 방향이 꼭 정해져야만 되는 건 아니니까."라고.




설이 끝나고 난 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이 정지되어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나이가 이제 마흔이 되니 무언가를 이루지 못한 것만 같은 모든 부분에서 한심하다 여기는 마음과 급해지는 마음이 또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해서 스스로에게 짜증이 미친 듯이 나기 시작했다.


또 이런다 싶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짜증이 말도 못 했을 텐데, 요즘은 짜증을 심하게 내다가도 스스로 '이러면 어때서?'라고 되묻고는 더 정지되어 있어도, 더 게으르다고 느껴도 더 무기력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이야기를 해준다.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잘 사는 인생도 아니고, 나는 생각보다 내 삶에서 이룬 게 많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그걸 기억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무언갈 판단하는 기준이 남이 설정한 기준은 아닌지 다시 물어보고, 그 상태에서 애써 빠져나오려고 전처럼 기를 쓰지도 않고, 너무 깊은 바닥으로 가지 않게 스스로를 잘 다스리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방향을 잃은 배처럼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무기력하기도 하고 그랬다. 하지만 뭐 애써서 빠져나오기보단 잘 다스려보자로 결론을 내린 나는 평소처럼 일하고, 무언가 하고 싶으면 하고 자고 싶으면 자고 억지로 무언갈 나에게 강요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에너지 넘치는, 나아지는 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전처럼 힘들지는 않으니 말이다.

  



엄마가 그랬다. 


마흔이 되고 나이가 더 들기 시작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더 자주 하게 될 것이라고.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과 잘 사는 기준이 꼭 맞는 건 아닌 걸 알게 된다고 그러니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고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나이가 마흔부터인 거 같다고 말이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시간을 지나 또 이렇게 강박 아닌 강박이 느껴지기도 하고, 조급함을 느끼고 하는 게 나이로 규정되어있는 세상에서 말하는 기준 때문일지도 모르고, 스스로에게 느끼는 염증일지도 모르겠지만 명확한 건 "방향을 잃어도 괜찮다는 것." 그거 하나는 어릴 때보다 지금이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오히려 20대보다 지금의 내가 나의 가능성을 더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 방향을 정해놓고 달려가는 건 이미 해볼만큼 해봤으니 유유자적하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기대할 수 있는 지금이니까.


그래서 또 한 번 스스로에게 말한다.

"방향이 꼭 정해져야 하는 건 아니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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