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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다른 양양 Mar 15. 2022

마흔 번째 생일 그리고.

철은 없지만, 다정한 마흔이고 싶어.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날.

내 생일이었다. 


마흔 번째 생일.


누구는 나라의 앞날을 결정하는 날이자 쉬는 날 생일이라며 범상치 않다고 웃으면서 말하기도 했는데 그 범상치 않은 갑작스럽게 휴일이 된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뒷 산(?)에 올랐다.


생일이 오기 전부터 몸이던 마음이던 유독 쳐지는 날들이 길어져서 운동 선생님이 함께 뒷 산이나 오르자며 제안을 하셨는데, 잠이 덜 깨서 오른 산이라 말하기 좀 아쉬운 뒷동산에서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아마 아침부터 뒷 산에 오르지 않았으면 무언가 정의 내리기 힘든 아침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4년 전부터 나에게 있어 생일은 유독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 되었다. 

내 생일이던 엄마의 생일이던지 상관없이.


어릴 적에는 생일이 다가오면 엄청 설레고 좋고 그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덤덤해지는 것도 있겠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맞는 생일은 그냥 아무런 느낌이 없는 無 의 느낌으로 맞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번 생일도 뭔가 특별하기보단 하루 잘 지내면 좋겠다는 마음. 달라진 건 친구들이 위시리스트를 좀 채워 놓으라 해서 채워놓은 정도이지 사실 크게 뭘 받아도, 받지 않아도 덤덤해질 나이가 바로 마흔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엄마 없이 보내는 4번째 생일이었다.




생일에 "나"만이 아닌 "엄마"도 함께 생각하기 시작한 건 내 21번째 생일. 

엄마가 나를 낳았을 그 나이의 내 생일이었다.


나의 21번째 봄. 엄마의 42번째 봄이었던 그날. 

갑작스레 과거로 돌아간 나는 엄마가 나를 낳았던 그때의 봄이 갑작스럽게 내 마음속에 크게 다가왔었다. 


21번째 내가 태어난 날 엄마를 위해 편지를 쓰고, 꽃 한 다발을 준비했는데 아마 그건 지금의 내 엄마가 아닌 21살의 소녀였을 엄마에게 보내는 위로와 축하하는 맘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누리는 자유와 젊음의 시간을 엄마는 나라는 딸을 두고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그 젊음의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내가 앞으로 누려야 할 수많은 시간을 엄마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누리기보단 내려놓았을 것이 더 많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편지를 쓰면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가 나를 선택함으로써 내려놓아야 했을 수많은 선택과 누려야 했을 삶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 그리고 감사함이 엄마가 나를 낳았다는 그 나이가 되어서야 보다 더 선명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참 그랬다.


그날부터였다. 

엄마가 엄마이면서도 같은 여자로 인식되었던 날이.


그 복잡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편지와 꽃다발을 보고는 엄마가 울었다.  

"너를 낳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어. 너를 낳아서 내 삶이 완전해졌거든. 그래도 21살의 그때의 나를 생각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그때부터 생일은 나와 엄마가 함께 축하를 받아야 하는 날이자, 할머니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날이자. 혼자가 아닌 둘. 혹은 셋이서 기념해야 했던 날이 내 생일이었고 그렇게 평생을 보낼 줄 알았다.


그러니 엄마도 할머니도 없는 이 생일이라는 날을 적응해야 하는 것은 세상에 남아있는 나 밖에 없으니 기분이 이상할 수밖에.


그리고 엄마 없이 시작하는 나의 사십 대가 왠지 모르게 아렸다.





그래도 나는 항상 생일 때마다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절대 변함이 없다.


바로 "행복하다."라는 말.


크나큰 축하와 격려의 말들. 보내주는 마음들도 너무 감사하고, 내 친구들은 특이하게도 서로의 생일날만 서로의 마음을 전한다. '너 없으면 안 되는 거 알지?' 막 간지럽게 이러면서 서로의 생일만 솔직해지곤 한다.


갑작스럽게 깜짝 편지를 써서 선물과 함께 우편으로 보내주는 친구들도 있고, 카톡 메시지로 구구절절 어떤 마음인지 전하는 친구들도 있다. 각자 결혼을 하고 삶의 방향과 모습이 달라져있어서 더 많은 삶을 나누는 건 어릴 때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해졌더라도 그냥 한마디로 모든 걸 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것도 큰 행복이지 않은가.


이번 생일은 아침에 뒷 산에 오르고, 운동을 하고, 친구를 만나 밥을 먹었다. 밥을 먹다가 울다가 웃다가 화를 내다가 모든 희로애락을 다 쏟아내고 집으로 돌아와 축하 메시지에 답을 보내고 그렇게 하루를 또 보냈다.


이만하면 되었다.


엄마 없이 시작하는 40대가 조금 아리긴 해도, 기쁘면서도 생각이 많고 걱정이 되는 수많은 감정을 느끼는 생일을 맞이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이 날 행복하다는 건 변함이 없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싶다.


내년 생일에도 내가 태어난 자체가 기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줄 테고, 엄마는 하늘에서 엄청난 사랑을 보내주고 있을 것이고, 나 또한 내가 태어난 것이 기쁠 테니 말이다.


생일 축하해. 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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