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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다른 양양 May 16. 2022

스승의 날.

철은 없지만 다정한 마흔이고 싶어

스승의 날을 챙기기보단, 스승의 날 챙김을 받게 된 지 벌써 몇 년이 된 것 같다.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 학교 선생님이 아닌 나를 챙기겠나 하는 마음이 더 컸던 나에게 때마다 아이들이 보내주는 마음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사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날이 5월 15일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도 벌써 서른이 넘어가고, 졸업한 지가 언젠데 기억하고 마음 한 마디라도 전하려고 노력해주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끔 선생님께 너무 죄송하고, 또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애정과 신뢰에 감사하는 마음이 해가 갈수록 더욱 짙어지곤 한다.


'스승'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난 딱 한 분. 생각나는 선생님이 있다.


바로 고2 담임선생님. 




나는 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과 엄청 친하지도 엄청 멀지도 않은 학생이었다. 선생님들이 많이 예뻐해 주셨고, 챙겨주시긴 했지만 나는 적당한 마음만 열고 먼저 다가가거나 하는 스타일의 학생은 아니었다.


사실 지금도 그 버릇이 남아있는데 나는 선생님, 목회자, 전도사 등으로 만나는 사람들과는 적당한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너무 가까우면 바라거나 실망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도 알았고, 결국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도 그들도 부족하다는 것도 있기에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실망을 굳이 찾아가서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


그러니 내가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 때 조금은 가깝고, 조금은 어렵고, 조금은 친근한 사람으로 분류되길 원했을 뿐 커가는 아이들에게 "나를 꼭 기억해주렴."이라는 말도 안 되는 욕심을 가지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런 나에게 지금껏 만난 선생님들 중 유독 고2 때 담임선생님을 내 스승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유일했다.

투박하지만 잔잔한 애정으로 신뢰를 갖고 지켜봐 준 스승은.

적어도 머리가 다 큰 내가 그 진실성을 알고 감사하다고 생각했던 유일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선생님이 내 담임선생님이 되었다고 했을 때 모두가 다 걱정을 했었다. 아니 적어도 같은 반이 된 우리 모두를 모두가 걱정을 했을 정도였고, 하교할 시간에 우리 반만 제일 늦게 종례가 끝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유리창 밖에서 다들 걱정하는 표정 반, 재미있어하는 표정 반으로 우리를 보곤 했다.


나도 처음엔 선생님이 너무 무서웠다.


2학년 반이 결정되고 나서 복도에서 만난 선생님께 인사를 했는데

"양은영이 2학년 때 우리 반이더라. 잘해보자." 하시고는 쿨하게 교무실로 가셨다.


덜덜 거리며 시작했던 2학년. 어렵고 무서운 부분도 있었지만 선생님은 정이 많으셨고 기준이 확실했으며 모든 아이들을 큰 차별 없이 대해주셨다.  


어떤 계기인지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선생님이 나에게 해주셨던 말씀들이 많이 생각난다.


"너를 선생님이 알게 된 건 1학년인데 인사를 너무 열심히 하는 거야. 선생님들 보면 알던 모르던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너를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인사를 하는 게 쉬운 것 같지만 그 인사가 사람의 인상을, 인생을 바꿔놓기도 해."


"너는 활발한 것 같지만 조용하고, 내향적인 면도 있지. 그리고 속마음 도 잘 이야기 안 하고. 그런 네가 활발한 성격을 유지해야 하고 그런 활동들을 많이 하니 힘들겠다 생각했어."


"열심히 하느라 고생이 많다."


사실 이 외에도 수많은 잔소리를 빙자한(?) 따뜻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 따뜻했던 마음이 더 많이 남아있고, 정확한 말은 기억이 안 날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아쉽기도 하고 선생님이 많이 보고 싶기도 하다.


2학년이 끝나는 날 난 결국 울었다.

친구들과 반이 달라지는 것도 슬펐지만,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도 너무 속상했었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선생님은 유일하게 나를 제대로 파악해준 분이었고, 그런 나를 지켜봐 주고 응원해주신 선생님이었다.




고3이 되고 나서는 선생님을 자주 볼 수가 없어 내가 선생님께 쓴 편지를 들고 가거나, 복도에서 마주치는 일이 거의 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습시간에 선생님이 찾으신다는 소리를 들었다

모두가 자습을 하는 그 시간. 조용히 교실 문을 열고 사람 하나 없는 복도를 걸어가는데 중앙계단에 뒷짐을 지고 서 계신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하고 묻는 나에게 선생님은 손에 들고 있던 고3 문제집을 한가득 주시면서 "잘하고 있나 양은영이? 고3 문제집이 생겼는데 생각나서 가지고 왔어. 열심히 해. 믿는다." 하시고는 바로 내려가셨다.


문제집을 들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나는 중앙계단에서 뒷짐을 지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틀린 적이 없다.


가끔 학교 후배를 만나면 이름을 듣고는 '선생님이 선배님이 보내신 편지 가끔 읽어주시곤 했어요.' 하는 말을 듣기도 했고, 내 소식을 후배들이 알고 있는 것도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선생님이 편지를 읽으면서 너무 기뻐하신다는 말을 듣고 울컥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편지가 뭐라고 그렇게 그게 기쁘셨을까. 했는데 그 마음을 이제 내가 이해하고 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도 내리사랑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싶기도 하다. 




선생님 보고 싶어요.


고3이 끝나,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마다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대학을 다닐 때는 스승의 날 때 선생님을 찾아뵙기도 했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두시고 이민을 가신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 후로 몇 번 메일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결국 끊겼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스승의 날.

여전히 선생님이 보고 싶고, 감사한 마음이 넘친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투박하더라도 진심은 언제나 통한 다는 걸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누가 알아주길 기대하기 보단 정말 열심히 했고, 아이들에게 내가 가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지금 그 아이들이 그 마음을 알고 나에게 사랑을 전해준다.


다 선생님 덕분이다.


나를 믿어준 수많은 어른들 중에서도 선생님이 유독 생각나고 '스승'이라는 단어로 정의 내려지는 건 보이는 내가 아니라 진짜 나를 알고 기다려주고, 생각해주신 선생님의 애정과 신뢰가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선생님 항상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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