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다른 양양 May 12. 2022

또. 다시.

철은 없지만, 다정한 마흔이고 싶어.

작년 12월부터 시작된 마음의 무거움이 해가 바뀌고 5월 하고도 10일이 지난 지금에야  조금은 털고 일어날 힘이 생긴 요즘이다.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 결심이 무언가를 잘라내고 도려내는걸 이렇게나 냉정하게 그리고 나름 잔인하게 해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고, 그걸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는 이 시간이 사실 이렇게 길게 마음을 짓누를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동안 참았던 감정들이 터진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 나를 떠밀거나 급박함에 결정해야 하는 일들도 아니었지만, 그동안에 보고 경험했던 것들을 토대로 오직 나를 위해서 결정하고 잘라내고 도려내야 한다 결심했기에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정말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그게 사람이던, 환경이던, 그 무엇이었든 간에 한 번은 걸러내야 하는 일이었다는 걸 이제는 알지만, 우습게도 그 시작을 앞둔 내가 나에게 한 말은 "어이없다.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니."였다.


길고 긴 시간을 보냈고, 처음 몇 개월은 적당히 천천히 마음 정리를 하면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몇 개월 내내 몸이 아팠고, 무기력해졌으며, 시도 때도 없이 울컥함이 올라올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근 2년 넘게 꾸준히 이어오던 운동도 도저히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2개월 넘게 운동을 쉬어야 했을 정도였는데, 운동을 시작으로 내가 좋아하는 모든 걸 중단하고 정말 오롯이 혼자. 절절하게도 겪어야만 했다.


혹 누군가 어떤 상태였는지 물어본다면, 

'나 스스로 내 몸을 자르는 기분이었다.'라는 표현이 제일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니 사람마다 그런 시기가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봐야 하고, 남겨둘지, 잘라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살다 보니 불현듯 깨닫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후에 어떻게 내가 움직이느냐에 따라 모든 상황은 달라진다는 것도 스스로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책임도, 이 일에 대한 모든 정답은 내 안에 있으니 나를 믿고 움직이던, 멈춰있던 스스로 결정해야만 할 뿐이다.


나는 불현듯 그 시기가 왔을 뿐이었고, 내가 다치치 않기 위해서 천천히 최소한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다쳐야했고 이렇게 힘든 마음을 몇 개월을 짊어지고 살아갈지 몰랐다. 겉으로 티가 나지 않으니 말을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자, 그 누구의 이해도 필요 없는 오직 내가 나를 이해해줘야만 하는 시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답답해서 그런지 괜히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만 늘었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들에게 털어놓기도 해 봤지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답답한 느낌이었고, 말을 꺼내지 않으면 무언가 엉켜서 도저히 아무것도 모르겠다 생각할 정도로 복잡함만 늘었다.


그 누구에게 말을 해봤자 결국 나만이 이 끝의 명쾌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계속 확인할 뿐이었다.


단순하게 잘라내고, 내려놓으면 되는 거였는데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은지 어떤 정당성도 필요 없을.  그래야만 했던 수많은 이유들을 앞에 두고 끊임없이 고민했고 이게 맞는 건지 천만번도 넘게 스스로에게 물어본 시간을 돌아보니 그렇게 반년이 다 돼가는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스스로 몸을 자르는 기분으로 반년 정도 살다 보니 크게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렇게 차가운 도시 여자가 되고 싶다고 했던 내가 도시 여자까지는 모르겠고, 적어도 차분함과 냉소적이라는 것은 얻었으니 조금은 다가간 건가 싶기도 할 만큼 표정 없던 그 시간이 끝나간다.


그러니 또. 그리고 다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이 시간을 겪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졌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의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니 브런치에 쏟아내려놓은 마음만 보더라도 복잡하고, 조금은 탁하고, 세상 처음 해야만 하고, 알아야만 하는 감정들도 너무 많고 일들도 너무 많았다 느낀다. 그러니 생각이 더 많아지고 스스로 싸울 수밖에 없기도 하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와 이별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무언가를 잃었다.'는 감정을 이렇게 처절하게 느껴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삶을 꾸리는 것에 대한 자신감도 더 많이 갖지 못했을 것이고 이런 복잡함을 스스로 선택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내려놓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또. 방황을 했고 다시. 일어나기로 했다.


적어도 스스로 몸을 자르는 것 같다고 말하는 고통 속에서 나를 믿고 다시 내가 나를 살려주기로 했다. 결론은 나왔고,  나는 그걸 선택했고, 흔들리지 말자고 스스로 다지는 시간을 가졌으니 그리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아파했으니 이제 또. 다시. 일어나면 될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4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