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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다른 양양 Jul 20. 2022

20년이래. 우리가 친구가 된 지.

철은 없지만 다정한 마흔이고 싶어

장마가 시작되기 전의 6월. 가만히 있어도 덥고, 끈적해서 나 같이 반곱슬 머리를 가진 사람에게 환장하는 날씨를 뚫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그것도 3년 만에.


고등학교 3학년. 아니 어쩌면 2학년 때부터 인사를 하고 친해지게 된 우리였을 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완전 찐친이 된 건 고3. 학교 독서실에서 만난 우리는 생각보다 결이 비슷하고, 감성적인 면도 비슷해서 금방 친구가 되었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친구로 남아있다.


친구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나는 여전히 철없는 아니 그때와 별 다를 게 없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내가 마흔 살이 된 지금. 자주 연락은 하지 못하고, 1년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하지만 어제 만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으로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이 만남이 얼마나 큰 기쁨과 위로가 되는지 서로 잘 알고 있다.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친구니까.




말이 끊기지 않으니 결국 새벽에 공원에서 나머지 수다를 떨었다.



"너를 꼭 만나야 될 것 같았어."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반가운 마음에 커피숍에서 찐한 포옹(?)을 하고 자리를 옮겨 주문을 마치자마자 친구가 한 말. 꼭 만나야 할 것 같았다는 그 한마디 만으로도 마음이 꽉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저 말을 하는 친구의 마음을 알 것 같으니. 


정말 오랜만에 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편안한 느낌.


생각해보면 우리는 꼭 만나야 할 때 만나거나 통화를 했다. 서로가 무너지기 전이나, 어느 정도 힘든 시간을 거치고 나서나 아니면 폭풍 한가운데 있을 때 굳이 하나하나 다 자세히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냥 뜬금없이 전화해서 연락하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다가 울면서 끝난 통화가 셀 수 없이 많다.


그렇게 20년이 넘은 지금.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친구로 남게 된 우리가 되었다.


나는 이 친구와 대화를 하거나 얼굴을 보고 만나면 꼭 운다. 신기하게도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아 놓은 눈물 그릇이 비워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화가 났을 때, 아픔을 겪었을 때, 위로가 필요했을 때 등등 울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다가 어쩌다 한번 이 친구를 만나면 갑자기 그 모든 게 쏟아지듯이 울어버리고 만다.


서로 상황을 잘 알고 있으니 괜한 걱정거리를 얹어주고 싶지 않아 전화도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하면서도 가끔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거나 지칠 땐 연락을 하면 서로 자세히 물어보지도,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고 "잘 버텼네."라고 서로 한마디 하는 게 다인데 나는 꼭 정해진 몇 명 앞에서만 울고, 어리광을 부리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날 제일 잘 아는 친구이니 그 눈물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한 가지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 만나도 좋고, 편하다. 

이 날의 만남은 수다 떠느라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헤어졌다. 


만날 땐 갑자기 고등학생으로 돌아갔다가, 이야기를 하면 20대를 거쳐 현재의 내가 있고, 헤어질 때는 항상 아쉽고 아쉬움이 가득한 사이가 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어릴 때는 매일 만나고, 때마다 만나고 여행을 가는 친구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부러울 정도로 우리는 서로 너무 바빴고, 각자의 삶에 파묻혀 사는 시간이 많았다. 물론 나조차도 너무 사느라 누굴 챙기고 만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가진 인간관계를 돌아보면서 어떻게 가끔 보고, 가끔 연락을 하는데 서로를 다 알 수 있을까? 관계를 이어 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었더랬다. 


그러데 참 신기하게도 내 주변에는 아직도 그때의 인연들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고, 가끔이지만 만나도 서로를 찰떡같이 알고, 여전히 그 누구보다 나를 제일 잘 파악하고 있고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얼굴을 비추는 사람들이 또 그들이고,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제일 잘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들 또한 그들이다.


이렇게 20년을 지내보니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사람들로 채워지기도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친구는 꼭 이래야 하고, 이런 게 좋은 거고, 이게 맞다고 말하는 그 수많은 옳은, 좋은 관계의 기준을 듣고 살고 있지만  나는 그 어느 것도 규정짓지 않기로 했다. 


그게 뭐든. 나에게 맞는 사람들이나 그 무언가가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20년을 이어온 인연 덕분에 또 이렇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서로가 될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 오랜만에 만남에 대해 주절주절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나도 너 덕분에 또 힘을 얻어 일어나 걷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꼭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고마워.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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