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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다른 양양 Sep 06. 2022

여름이 지나간다.

철은 없지만 다정한 마흔이고 싶어

태풍이 지나가고 나니,  햇빛이 쨍쨍이다.


어제만 해도 비가 심하게 내리고, 당장 내일 왜 출근을 해야 하는지 열받는다고 속으로 천 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욕을 했던 게 맞았나 싶게도 출근길이 너무 상쾌해서 당황했더랬다.


브런치에 쏟아낸 내 마음들만 보더라도, 여름을 싫어하는 내가 가을을 얼마나 기다리면서도 힘들어하는지 알겠지만, 이번 가을만큼은 생각보다 덤덤하고 기대감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


저번 글에서 소원했던 대로 아마 조금은 단단해지지 않았나 싶다.






생각해보니 이번 봄과 여름은 유독 심하게 앓았다.


1월부터 아프다는 말을 수도 없이 달고 살았고, 병원도 자주 가고 정말 온몸 구석구석 아팠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정말 매월, 매주 아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이 아팠다. 오히려 이 역병의 시기에 역병은 아직 비껴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은 그 누구보다 더 자주 다니고, 아파서 휴가를 다 몰아 써서 내 연차는 겨우 0.5일이 남았다는 게 아직도 어이가 없다


혼자 있을 때 아프면 서럽다는데, 처음엔 서러워서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지만 너무 자주 아프다 보니 '잠이나 자자.'하고 기절한 게 더 많아서 적당히 서럽고, 적당히 덤덤해지고, 적당히 용감해진 봄. 그리고 여름이었다.


사실 엄마가 아팠고, 그래서 병원이란 장소와 아프다는 것 자체에 큰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어버린 나는. 아마 두려움 때문이겠지만 별거 아닐 수 있는 아픔도 나에겐 엄청 큰 걱정으로 밀려 들어오기도 했고, 누군가 큰 병을 앓거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나도 저렇게 되면 혼자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지?'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유독 심하게 닥쳐오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오버라고 하기도 하고, 겁이 많냐고 말하기도 했지만, 내 속에서는 병원을 갈 때마다, 누군가 아픈 모습을 볼 때마다, 혹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엄마를 데리고 매일 병원에 다녔던 그때로 돌아갔고, 병원 구석에서 울고 맘 조려 하던 나를 만나게 되었고, 다음은 내가 보호자가 아닌 환자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덮치기도 했으니 그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싶었다.


두려움이 크다면 결국 직면하는 게 답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방식대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정기적으로 피검사를 받고, 이번에는 몸이 자주 아파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검사 내역을 좀 더 확대해서 받아보기도 했다. 종합 정기검진도 곧 받으러 가긴 하겠지만 꾸준히 아픈 덕분인지 조금 용기가 생겨난 게 이 여름을 지나는 동안 얻은 거라면 얻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몸만 아팠으면 좋았겠지만, 마음도 힘든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냈다.


모든 게 가라앉는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리를 가득 채워서 한동안 발버둥 쳐봤자 소용이 없구나 싶어 정말 숨만 겨우 쉬면서 산 적도 있었다.


조금 지쳤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조금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어 보여서 그랬나 싶었는지 '해서 뭐하냐.'라는 지독한 감정이 파고들어서 헤어 나오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지금에서야 '너무 더워서 더위 먹었나.'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겠지만 제법 무거워서 그 무게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숨이 막혔고,  좀 더 이 무게에 짓눌려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는데 너무 눌려지다 보니 정신이 나갈 뻔했다. 


근데 이 시간을 겪으면서 느낀 게 결국 나를 살리는 건 또 나였다는 것을 다시 뼈저리게 알았다.


나의 미래를 기대하는 사람도, 나의 현재를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나의 과거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도, 그리고 그 무거운 것들을 옮길 수 있는 사람도 결국은 나였다.


홀로서기가 시작된 2017년의 11월부터 매 년, 매 계절마다 마음의 소용돌이를 도장 깨기 하듯이 차곡차곡 정리하며 지금까지 지내오는 것 같은데 아마 근 30년 동안 제대로 나를 돌보지 않은 대가이겠거니 싶어서 몰아서 모든 걸 속성으로 배우는 느낌도 가끔 들 때가 있다.


그래서 그 가라앉았던 시간도 겨우겨우 또 힘을 쥐어짜 내서 잘 지나왔고 2022년의 늦여름을 조금은 시원한 마음으로 보냈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심하게 마흔 앓이를 했던 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하늘이 조금은 높아져서 가을이 오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이 모든 시간이 조금은 즐겁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살면서 어떤 나이에 맞는, 그 나이에만 필수로 느껴야 하는 감정보다는 내 속도에 맞춰서 내 환경에 맞춰서 깨닫고, 경험하고, 깨지고, 얻어가는 시간들이 생기는 것 같은데 꼭 이 나이어야 했었나 싶고 어릴 때 뭐하고 이제 와서?라는 마음이 나를 급하게 만들고 좌절감을 맛보게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냥 그 아팠던 4번이 가을과, 겨울. 그리고 지독했던 봄과 여름들을 이렇게 잘 버티고 다섯 번째 가을을 즐겁게 맞이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조금은 더 괜찮은 나은 내가 된 것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힘들게 힘들게 7월을 맞이하면서 써 내려갔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조금은 더 단단해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흔 번째 여름. 그리고 그날 이후 다섯 번째 여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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