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간다.

철은 없지만 다정한 마흔이고 싶어

by 남다른 양양

태풍이 지나가고 나니, 햇빛이 쨍쨍이다.


어제만 해도 비가 심하게 내리고, 당장 내일 왜 출근을 해야 하는지 열받는다고 속으로 천 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욕을 했던 게 맞았나 싶게도 출근길이 너무 상쾌해서 당황했더랬다.


브런치에 쏟아낸 내 마음들만 보더라도, 여름을 싫어하는 내가 가을을 얼마나 기다리면서도 힘들어하는지 알겠지만, 이번 가을만큼은 생각보다 덤덤하고 기대감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


저번 글에서 소원했던 대로 아마 조금은 단단해지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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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이번 봄과 여름은 유독 심하게 앓았다.


1월부터 아프다는 말을 수도 없이 달고 살았고, 병원도 자주 가고 정말 온몸 구석구석 아팠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정말 매월, 매주 아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이 아팠다. 오히려 이 역병의 시기에 역병은 아직 비껴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은 그 누구보다 더 자주 다니고, 아파서 휴가를 다 몰아 써서 내 연차는 겨우 0.5일이 남았다는 게 아직도 어이가 없다


혼자 있을 때 아프면 서럽다는데, 처음엔 서러워서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지만 너무 자주 아프다 보니 '잠이나 자자.'하고 기절한 게 더 많아서 적당히 서럽고, 적당히 덤덤해지고, 적당히 용감해진 봄. 그리고 여름이었다.


사실 엄마가 아팠고, 그래서 병원이란 장소와 아프다는 것 자체에 큰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어버린 나는. 아마 두려움 때문이겠지만 별거 아닐 수 있는 아픔도 나에겐 엄청 큰 걱정으로 밀려 들어오기도 했고, 누군가 큰 병을 앓거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나도 저렇게 되면 혼자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지?'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유독 심하게 닥쳐오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오버라고 하기도 하고, 겁이 많냐고 말하기도 했지만, 내 속에서는 병원을 갈 때마다, 누군가 아픈 모습을 볼 때마다, 혹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엄마를 데리고 매일 병원에 다녔던 그때로 돌아갔고, 병원 구석에서 울고 맘 조려 하던 나를 만나게 되었고, 다음은 내가 보호자가 아닌 환자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덮치기도 했으니 그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싶었다.


두려움이 크다면 결국 직면하는 게 답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방식대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정기적으로 피검사를 받고, 이번에는 몸이 자주 아파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검사 내역을 좀 더 확대해서 받아보기도 했다. 종합 정기검진도 곧 받으러 가긴 하겠지만 꾸준히 아픈 덕분인지 조금 용기가 생겨난 게 이 여름을 지나는 동안 얻은 거라면 얻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몸만 아팠으면 좋았겠지만, 마음도 힘든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냈다.


모든 게 가라앉는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리를 가득 채워서 한동안 발버둥 쳐봤자 소용이 없구나 싶어 정말 숨만 겨우 쉬면서 산 적도 있었다.


조금 지쳤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조금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어 보여서 그랬나 싶었는지 '해서 뭐하냐.'라는 지독한 감정이 파고들어서 헤어 나오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지금에서야 '너무 더워서 더위 먹었나.'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겠지만 제법 무거워서 그 무게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숨이 막혔고, 좀 더 이 무게에 짓눌려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는데 너무 눌려지다 보니 정신이 나갈 뻔했다.


근데 이 시간을 겪으면서 느낀 게 결국 나를 살리는 건 또 나였다는 것을 다시 뼈저리게 알았다.


나의 미래를 기대하는 사람도, 나의 현재를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나의 과거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도, 그리고 그 무거운 것들을 옮길 수 있는 사람도 결국은 나였다.


홀로서기가 시작된 2017년의 11월부터 매 년, 매 계절마다 마음의 소용돌이를 도장 깨기 하듯이 차곡차곡 정리하며 지금까지 지내오는 것 같은데 아마 근 30년 동안 제대로 나를 돌보지 않은 대가이겠거니 싶어서 몰아서 모든 걸 속성으로 배우는 느낌도 가끔 들 때가 있다.


그래서 그 가라앉았던 시간도 겨우겨우 또 힘을 쥐어짜 내서 잘 지나왔고 2022년의 늦여름을 조금은 시원한 마음으로 보냈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심하게 마흔 앓이를 했던 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하늘이 조금은 높아져서 가을이 오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이 모든 시간이 조금은 즐겁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살면서 어떤 나이에 맞는, 그 나이에만 필수로 느껴야 하는 감정보다는 내 속도에 맞춰서 내 환경에 맞춰서 깨닫고, 경험하고, 깨지고, 얻어가는 시간들이 생기는 것 같은데 꼭 이 나이어야 했었나 싶고 어릴 때 뭐하고 이제 와서?라는 마음이 나를 급하게 만들고 좌절감을 맛보게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냥 그 아팠던 4번이 가을과, 겨울. 그리고 지독했던 봄과 여름들을 이렇게 잘 버티고 다섯 번째 가을을 즐겁게 맞이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조금은 더 괜찮은 나은 내가 된 것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힘들게 힘들게 7월을 맞이하면서 써 내려갔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조금은 더 단단해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흔 번째 여름. 그리고 그날 이후 다섯 번째 여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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