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 헤르만 헤세

삶은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by 아점

요즘 방송대 교양으로 ‘철학의 이해’를 아주 재미있게 수강하는 중에 만난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 데미안‘을 고르는 것에는 철학수업이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읽다 보니 머릿속에서 두 내용이 맞물려가는 것이 아주 절묘한 우연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읽을 책으로 데미안을 고른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그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다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 교보문고에서 이전에 출간했던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책으로 읽은 적은 있지만 절반쯤 읽다가 그만두었던 것, 그리고 유명한 그 문장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이 정도가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들 중 데미안을 고른 이유였을 것이다.

‘데미안’은 ’ 싱클레어‘라는 한 인간의 이야기다. 평화로운 가정이라는 안정된 세계에서 살아온 소년 싱클레어는 우연한 계기로 그와 정반대 편에 위치한 듯한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어둠의 세계로 부르는 이 세계는 싱클레어가 평안히 누려온 빛의 세계에서 경험하지 못한 유희와 두려움 등의 낯선 감정을 느끼게 하며 싱클레어는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한다. 좋지 못한 상황으로 인해 어둠의 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싱클레어를 데미안이 구해내며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만남이 시작된다. 두 세계를 이제 막 경험하며 아직 빛의 세계에서 교육받은 흔적이 남아있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금기와 같은 질문과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싱클레어에게 신선한 충격을 계속해서 안겨준다. 자신보다 성숙한 듯한 생각과 태도에 싱클레어는 매료된다. 함께 할 때도, 멀리 떨어져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때도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다. ‘데미안’은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다. 소설의 배경과 전혀 다른 모습의 세상을 살아가는 내가 싱클레어의 내적갈등과 고뇌에 공감하며 그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그의 성장을 함께 그려나가는 것은 이 책이 단순한 성장소설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데미안이 곧 싱클레어였던 것처럼 책을 읽은 후에 우리는 깨닫게 된다. 데미안은 곧 ‘나’이며, 싱클레어 또한 ’나‘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데미안의 실체에 대해 충격을 받거나 그렇다면 에바 부인은 누구이며, 데미안과의 에피소드는 모두 싱클레어의 상상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마침내 하나가 된,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자신 안으로 받아들인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싱클레어처럼 데미안을 내 안으로 받아들인 것만 같은 느낌을 가진다.

“나는 오직 내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삶을 살려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라고 말하며 절망하는 싱클레어에게 누가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행복을 찾는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계는 돈이 행복을 줄 거라고 소곤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절대적인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모두 나만의 행복을 찾아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나만의 행복, 즉 내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소명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러야 하는 오직 한 가지 소명밖에는 없다.”라고 말하는 싱클레어의 목소리는 그 자신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할지라도 듣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모든 생명체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지만 결국은 죽어가는 존재이다. 그중에서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지성을 가진 인간은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두고 절망만 할 것인가. 자신의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라 할지라도, 이 삶을 유의미하게 만들고 살아가는 매일에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오롯이 나의 의지다. 결국 나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가장 귀를 기울이며 내가 걸어가는 이 길에서 나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내가 걸어가는 길이 나를 향한 길이라면 그 길은 나 밖에 걸을 수 없기 때문에 좁을 수밖에 없으며 외로울 수밖에 없는 여정이 된다. 싱클레어 주변에 그를 사랑하는 부모님, 그와 시간을 보내는 많은 친구들이 있을지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이유다.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 존재감만을 드러내는 많은 인물들에 대해서 우리는 각각의 이름조차 알 수 없다. 싱클레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고 그에게 만족을 주는 존재는 오직 데미안, 그 자신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데미안’에서 우리는 싱클레어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거처럼 그의 내적갈등을 면밀히 읽을 수 있다. 소년시절, 청소년시절, 청년시절의 싱클레어의 생각을 따라가며 나는 새삼 요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며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단순히 아침에 일어나 생각하는 일상, 하루일과, 업무 등이 아닌 싱클레어와 같이 나의 삶의 의미에 대해, 나의 소명에 대해 깊이 묵상한 적이 있었던가. 그와 같이 치열하게 생각하고 답을 찾으려 하는 게 최근 나의 삶에 있었던가. 없었다. 오히려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미디어에 나의 시간을 허비하며 내 머리로 열심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정답이 없는 질문에 고민한 시간은 기억도 나지 않는 너무나 오래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이러다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바보 같지만 진지한 걱정도 들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콘텐츠를 클릭하면 자연스럽게 댓글을 확인한다. 내가 댓글을 보는 이유를 긍정적인 관점에서 유추하자면 사람들과 수다 떠는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하기 이전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먼저 확인하는 것으로 내 생각보다 타인의 생각을 우선시하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것은 배려나 상냥함이 아니다. 습관적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그냥 내 생각처럼 수집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잃어가는 것이 나 자신에게 좋을 리 없다.

책은 글자를 가지고 생각과 상상을 통해 이해하기를 요구하기에 ’ 데미안‘을 읽을 때 삶의 순간마다 드러난 싱클레어의 생각은 나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떠올리게 하고 그의 질문은 나의 질문이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잠시 멈춰 서서 나는 지금 올바른 길 위에 서있는 가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데미안’은 말한다. “우리의 진정한 소명과 삶의 의의는 오로지 우리의 자아를 찾아내어 그 자아를 남김없이 살아 내는 데 있다. “ 나의 자아를 찾아내는 것,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외면의 소리를 잠시 멀리하고 내면의 목소리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 진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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