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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창 Jan 09. 2017

탈색의 착색

어시스턴트라는 직책을 설명하기 힘들다. 해석하자면 도와주는 사람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하지만, 어시스턴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보통 어시스턴트는 어리다. 대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꿈을 실현하기 바로 직전에 사람들이다. 저마다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고, 그에 가까운 것을 맛보기 위해 어시스턴트 자리에 지원한다. 회사는 꿈을 받고, 어시스턴트는 경험을 받는다. 모든 수요와 공급의 관계처럼 주려는 사람보다 받으려는 사람이 적으면 주려는 사람의 값어치가 떨어진다. 지금은 어시스턴트의 값어치가 낮다.

일이라는 게 도와주지 않으면 일이 힘들 뿐이지 불가능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일이 힘든 걸 개인의 역량 탓으로 돌리는 사회니까. 이 사회에서 어시스턴트는 없어도 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시스턴트는 부조리한 사회에 꿈을 가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부작용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꿈 따위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어시스턴트가 있다. 그녀가 이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지도 꽤 됐다. 정확히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넉넉잡아 반년은 된 듯 싶다.


그녀가 처음 등장했을 때 주목받았다. 그녀의 외모 덕분이다. 그녀는 깡마르고, 야리야리하였다. 일본의 미소녀 만화 캐릭터처럼 옷을 입었고, 머리가 하얬다. 눈동자 색도 인위적이었다. 회사 어디서도 눈에 띄었다. 고압적인 분위기의 회사가 아니었지만, 그녀는 회사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백신처럼 사람들은 그녀를 둘러쌓고 질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회사의 이물질이었다. 그녀는 인사를 잘하지 않았다. 그걸로 꼬투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꾸밈을 지적하는 게 왠지 치사하게 느꼈으리라. 허나 내 눈에는 인사성을 지적한 것도 썩 나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 관한 이유없는 불만이 전염병처럼 회사에 퍼졌고, 그녀를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도 점점 그녀를 싫어했다.


그녀의 어깨는 좁았지만, 늘 곧은 모양새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작은 어깨가 점점 굽었다. 사방에서 그녀를 누르고 있는 듯했다.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관(일제시대 고문 도구)이 따라 다녔다.


한 달이 지났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일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모든 결과물 중 그녀의 것이 제일 돋보였다. 그녀가 잘했다기보다 달랐다. 전에 보지 못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다시 질타하기 시작했다. "우리 스타일이 아니야!" 우리의 기준에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좁아졌다.


그녀는 이곳이 좋았나 보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향한 지적들을 수용했다. 옷차림은 점점 수수해졌고, 머리색도 변해갔다. 그녀의 결과물은 점차 '우리 스타일'이 되었고, 그녀는 사람들과 친해졌다. 점점 그녀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그녀도 밝아졌다. 그녀는 어느새 우리 중 하나였다.


이제 회사에서 그녀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분명 이 공간에 있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프레임에 갇히고 말았다.

달걀 모양의 킨더 초콜릿처럼 그녀는 여전히  속에 어떤 장난감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겉은 모두 똑같은 달걀 모양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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