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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지 Jul 09. 2020

여행의 끝, 시작

'엄마가 돌아가신 거랑 여행이랑 무슨 상관?' 이라는 댓글을 유럽여행 갔을 당시 올린 게시물에서 본 적이 있다. 내 여행을 처음으로 삐뚤게 받아들인 말에 충격적이라 안 본 척 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울릉도로 가는 울릉울릉거리는 배 안에서 그 말이 되새김되어 과연 연관성이 있었나라는 생각에 빠졌다.

학창 시절, 처음 여행 에세이를 접하고 계속해서 여행 관련 책을 읽으며 배낭여행을 꿈꿨다.
언젠가는 나도 글쓴이처럼 이 나라 저 나라 여행하며 삶의 의미와 내 존재의 가치를 더 키워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여행 안에 손발 저리게 일하던 엄마가 존재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늘 엄마에게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없냐며 있으면 꼭 말하라고 내가 데려다주겠다고 간곡히 부탁했고 TV를 함께 나란히 누워 보던 날, 네모난 상자 속에 보이는 조그마한 산맥들 아니 네모난 상자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아주아주 거대하고 웅장할 만년설의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산맥들을 보자 엄만 '와~ 저기 가 보고 싶다. '며 툭 내뱉었다. 처음으로 듣는 엄마의 바람에 살짝 머엉하다가 ' 나랑 같이 가자! '며 이뤄질 수 없었던 그 약속을 했다.

2016년 갑작스러운 병으로 엄마는 돌아가셨고 휴학을 한 나는 아빠를 따라 엄마의 이승에서의 삶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뒤에도 알바를 하며 조금이라도 아빠에게 도움이 되려고 애썼다. 그렇게 나는 울면서 지새우는 밤들 중 어느 밤에 문득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네모난 상자 속 하얗던 산맥들이 떠올랐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럽게 여읜 상실감과 허망함에 조금은 도움이 됐으면 했고 또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에 한 달 만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용기를 내어 혼자 45L 짜리 배낭을 메고 14시간 비행을 해 낯선 땅을 밟았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거룩한 모험을 떠나온 지 약 4년 그동안 여러 배낭여행을 해왔지만 상상도 못했던 독도의 땅을 밟고 있는 순간, 내가 이제서야 3년 전 댓글에 당당해질 수 있었다.

나는 늘 여행을 할 때마다 마음속 엄마에게 ' 엄마, 이번에도 조심히 다녀올게, 지켜줘, 이번엔 또 어떤 풍경과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 어떤 이야기들을 엄마에게 해줄 수 있을까?' 라며 이야기해왔고 내 여행 순간 순간의 감정, 웃겼던 상황, 엄마가 생각났던 상황 등등등 만약 아직 살아있었다면 전화로 떠들었을 그 내용들을 마음속 한가운데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었고 65L 배낭을 메고 울릉도 약 110km를 걷고나니 그런 터무니 없이 불편함을 나타내는 문장으로 내 여행의 가치와 의미를 억지로 찾으려고 애썼음을 깨달았다.

엄마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을 만들자는 의미로 시작했던  배낭여행이 다른 누군가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양쪽 약지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고 같이 걷는 여행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알 수 있었고 앞으로의 나는 더 당당히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울릉도, 독도 여행의 끝맺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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