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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지 Aug 28. 2021

수술

갑상선 유두암 판정을 받고 두 달이 지난 지금 병원복을 입고 낙상 주의라 적혀있는 침대 위에 몸을 기대고 있다. 왜 여기까지 왔을까 싶고 초기에 잡을 수 있어 감사하지 않지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친구들이 다들 무섭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이미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무서운 일을 겪어봐서 그런가 감흥이 없다. 사실 수술 과정을 듣고 조금 으악 했지만?

아침이면 샤워를 하고 수술을 위해 머리를 양 갈래로 묵고 2인실 옆자리 아주머니의 수술이 끝나면 무서워지겠지?(그 아주머니 다음 수술이 나다.)


괜스레 수술 위치를 표시해둔 보라색 잉크를 만져보며 잘 부탁한다 말해보고 내일 아주 편안함 잠을 잔다고 생각을 한다.


긴장해서 그런지 이리저리 움직이고 화장실도 몇 번을 갔는지... 앞 수술들이 밀리면서 예상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 전 병실에서는 아빠랑 신나게 수다 떨고 밝은 척했는데 눈물이 나올려는 걸 꾹 참느라 힘들었다.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옮겨지는데 기분이 묘했다.

밝은 조명이 눈부시고 밝은 표정은 사라지고 눈을 감았다. 계속 눈뜨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질끈 감았다. 아빠한테 잘하고 올게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만 마음속의 나는 잘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수술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에 의해 추운 수술실로 들어왔다.


와... 진짜 너무 무섭고 눈물 날 것 같았는데 꾹 참고 잠에 들었다.


꿈을 꿨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희미한 (안경 벗어서 그런가 보다) 주변이 보이고 잠에서 깨어났다. 아프다.

오... 아프다... 아... 아프다...

얼마나 아프냐는 선생님들의 질문에 10에서 5 정도라고 답했다. 7은 출산 고통이라길래...( 아직 모른다.. )

얼마나 지났을까 회복실에서 나와 아빠를 만났다.

눈물이 참을 수없이 올라오는데 수술부위가 너무 아파서 참았다. 

아빠는 얼마나 마음이 아려왔을까 그게 더 미안해서 눈물이 나왔다. 


아침을 먹을 수 있어 일찍 눈을 떴다. 사실 새벽마다 간호사분들이 오셔서 혈압 체크, 열 체크 등등하셔서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었지만 아침은 먹고 싶어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묶었다. (내가 못 묶어서 옆 침대 이모가 묶어주셨다.)  아침은 죽인데 진짜 죽방 맞은 것처럼 맛이 없었다. 흠


수술을 했다는 소식에 여러 지인들에게 응원의 말을 들었고 오랜만에 연락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고마웠다. 별거 아니었을 지나가던 인연에 별거 아닐지 몰라도 걱정과 위로의 말이 고마웠다.


'내일 퇴원하시면 됩니다'

아침 일찍 의사선생님이 회진하시면서 퇴원 통보(?)를 하셨다.


' 내.. 내일 퇴원이요? '

' 네. '

당황스럽지만 빠른 퇴원에 마음은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지기 무섭게 보험사에 청구할 서류를 알아보고 퇴원 시간 등 알아보았다. 조직 검사 결과는 2주 뒤에 외래 와서 듣겠지만 그래도 몸 안에 나쁜 혹의 존재는 사라졌음에 감사하다.


올해 큰 액땜을 끝내서 병원 중앙에서 춤을 출 만큼 기쁘지만 또 다른 일들이 나를 감싸올까 무섭긴 하다. 조금 길게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다. 아니 평생 평화롭게 살고 싶다.


'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다음 외래 날 봬요 .'

병실 옆자리 이모에게 인사를 하고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정문으로 나왔다. 아직은 덥네..  익숙한 친구의 차에 탄다. 우리 둘은 여전한데 내 몸에 갑상선의 일부가 없다는 점만 달랐을 뿐인데 울컥하는 감정에 살짝 놀라니 눈물이 들어갔다. 먼 길 데리러 와준 친구에게 맛있는 밥을 사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4일 동안 감지 못한 머리를 친구가 감겨주었고 다 큰 성인이 이러고 있는 게 웃기다는 말을 하고도 드라이기로 머리까지 말려주었다. 그리곤 평소처럼 대화를 하고 웃고 (웃으면 목과 가슴이 땡겨서 덜 웃었지만..) 하니 시간이 흘러 친구는 가고 나는 낮잠을 잤다. 병원에서처럼.


나만 달라졌다. 갑상선의 반이 없고 지금 나의 목은 뻣뻣하고 멍투성이다. 나만 달라졌나. 아니네. 주변이 달라졌다. 나를 동정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5년 전처럼,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그래도 지금의 나는 나를 크게 감싸 안을 수 있게 큰 사람이 되었다. 나는 괜찮다. 동정의 감정도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동정에 맛있는 음식이나 작은 용돈을 줘서 고맙다. 동정에도 나를 향한 애정인 거니까, 고오맙다.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겠다. 사람들의 동정도 받을 줄 알고 애정도 받을 줄 아는 그런 삶을 살아서 배부른 삶을 살겠다.

오늘은 편히 - 푹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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