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나는 런던에 무사히 잘 도착했고, 천천히 적응 중이야.
처음 막 도착했을 때,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 다양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보고 겁을 먹었어.
그런데 겁을 먹을 필요가 없더라고, 충분히 나는 용기 있고 씩씩하더라, 그리고 엄마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첫날부터 밤에 산책을 하면서 내가 꿈꾸던 런던이 어떤 향기, 색을 가지고 있는지 구경을 하면서 한창 내가 런던 유학을 노래 부르던 때가 생각이 났어.
엄마, 아빠 돈 없는 거 뻔히 알면서도 혼자라도 돈 벌어서 가겠다고 하던 철없던 내가 결국엔 이렇게 여행으로나마 런던을 오게 됐네. 그 노래가 나한테는 진심이었고 엄마도 그게 진심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테지만, 우리 집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늘 장난식으로만 말했어.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내 돈으로 갈 수 있을 거야' 했는데, 나한테 좀 더 소중한 것들이 가까이 있었다는 걸 알아서 그런지 유학의 꿈은 접기로 했어.
오늘은 박물관을 많이 돌아다녀봤어.
빅토리아 알버트, 내셔널 갤러리, 영국박물관을 갔는데 학창 시절 미술책에서만 보던 그림이나 조각상이 내 눈앞에 있고 고대 문명이라던지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유물들을 보면서 감탄하기 바쁘더라. 없앨 수도 없어질 수도 있었을 유물들, 그림들을 보면서 엄마의 물건들이 생각났어.
늘 메고 다니던 촌스러운 그림이 그려져 있던 가방, 같이 안경집 가서 샀던 선글라스, 엄마가 쓰던 촌스러운 색을 가진 화장품들, 홈쇼핑으로 대량 구매한 티셔츠들, 엄마가 신던 양말들... 이렇게 많은데 왜 엄마 냄새가 나는 게 없는 거 같지. 왜 나는 엄마 냄새를 모르는 거 같지..
내가 알고 있는 엄마 냄새는 식당일을 마치고 안기면 나던 기름 냄새, 땀냄새, 각종 반찬 냄새가 다 섞인 냄새뿐인데, 향긋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 엄마의 유일한 냄새들이 이젠 점점 기억이 나질 않아서 엄마 물건 냄새를 맡아보는데 그것마저도 희미해지고 점점 잊혀가더라.
난 엄마 냄새를 잊고 싶지 않은데, 이 놈의 기억력은 점점 엄마를 잊어가고 엄마의 물건들도 엄마를 잊어가고 있나 봐.
엄마 박물관을 하나 만들어야겠어.
엄마 물건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나만 간직할 수 있는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한 박물관을 만들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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