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다섯에 쓰는 백수 예찬 - 4화

회사에서 '너 나가'라고 하기 전까지는 내 발로 나가지는 않으리라

by 권오윤

서부영화의 결투 장면을 보면 두 총잡이는 서로를 마주보고 서서, 한 동안 서로를 응시한다. 두 사람 사이를 모래바람이 훓고 지나가고, 거리의 사람들이 창가에 숨어서 침을 꼴깍 삼키기를 몇 번. 둘 중에 먼저 누군가가 총을 뽑아야 결투가 시작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당방위와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상대가 총을 뽑으면 비로소 나도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무기를 사용했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면 대부분의 경우 먼저 총을 뽑는 쪽이 죽는다.


회사와 직원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물론 회사와 직원간의 밀월관계가 지속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회사가 돈을 잘 벌고 있고, 매출도 성장하고 있다면 이 관계는 별 탈 없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회사라는 조직은 장사가 잘 되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구성원들에 대한 평가를 엄격하게 하지는 않는다. 즉, 옥석 가리기를 하지 않는다. 잘 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요즘과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벌써 많은 기업들이 하반기 채용을 백지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내부 구성원들에 대한 옥석가리기가 한창일 것이다. 각 회사의 인사부에서는 구성원 한 명 한 명에 대한 '경제적 관점'에서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현재 주고 있는 연봉에 비해서, 회사의 기여도가 얼마나 되는 가에 대한 평가.


이 평가의 결과는 처음에는 간접적인 신호들에 의해서 직원에게 전달된다. 승진에서 누락되고, 연봉인상률이 주변의 동료들에 비해서 낮아지며, 전망이 좋아보이는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기 시작한다면 회사가 나를 '손절'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때는 우선, 몸을 사리고 크든 작든 실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기한을 잘 맞추도록 노력하고, 이메일 회신에 있어서도 놓치는 것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회사가 먼저 총을 뽑을 빌미를 주어선 곤란하다. 서부영화의 결투와는 달리 회사와 내가 대결을 벌인다면 나는 백전 백패일 수 밖에 없다. 내가 회사를 떠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최대한 잔여기간을 늘려야 한다.


잔여기간을 늘리면서, 대비를 해야 한다. 사실 대비가 갑자기 되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에서 먼저 총을 뽑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직시한다면 당장 우엇을 해야할지 명확하게 보일 것이다. 이직을 준비한다면, 그 동안 내가 업무적으로 이뤄놓은 업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가져가야 할 커리어의 방향에 대해서도 내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준비를 해 놓아야 한다. 음주와 흡연을 줄이고,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느껴지는 분위기나 활력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회사를 갑자기 그만 둬야 할 경우에 대비해서 현재 재무상황을 점검할 필요도 있다. 당장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끊긴다면 몇 개월을 버틸 수 있는지 '스트레스 테스트'도 해야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내가 필요한 준비가 어느정도 완료될 때 까지는 스스로 먼저 총을 뽑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회사가 한 직원을 손절해야 겠다는 판단이 서면, 여러가지 경로로 신호를 준다. 회사 입장에서도 먼저 직원에게 '나가라고 통보'를 해야 할 경우 이런 저런 시간적, 금액적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스스로 나가도록 분위기를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자존심에 기스를 내는 상황들이 점점 잦아질 수 있다. 이럴때마다, 확 사표를 내고 나가버릴까 하는 충동이 들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나를 놓고 냉정하게 계산을 하듯이, 나도 회사를 놓고 냉정한 계산을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버티는 것이 나에게 이득인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으니 내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이득인지 저울질을 해야 한다.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경우와 '자진 퇴사'를 한 경우, 고용보험등을 청구할 때 해석이 많이 달라질 수도 있다.


어떤 회사와 직원도 영원히 함께 갈 수는 없다. 어쩌면 '퇴사 준비'는 입사를 시작한 날 부터 바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퇴사'는 냉정한 판단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준비가 아직 덜 되었다면, 절대 총을 먼저 뽑지 말아야 한다. 당장, 때려치는 순간에는 카타르시스가 있을 수 있지만, 그 후 벌어지는 일들은 회사에서 버틸때 보다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불러올 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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