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놈의 전염병
지난 연말 독감이 한참 유행했다. 난 독감 기사를 시리즈로 연달아 다섯 개를 써재끼며, 그렇게 연말을 남들보다 분주하고 바쁘게 보냈다.
http://www.dongascience.com/news.php?idx=15334
http://www.dongascience.com/news.php?idx=15335
http://www.dongascience.com/news.php?idx=15336
>> 기사 스토리텔링을 할 때 간절한 염원을 담아 최계장을 최대리라고(내남편 내맘대로 승진) 썼더니, 진짜 1월 1일자 승진 발령이 났다?!(믿는대로 될 지어다! ㅋㅋ) >> 웃자고 하는 소리다!
http://www.dongascience.com/news.php?idx=15477
http://www.dongascience.com/news.php?idx=15564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액션이었고, 나에게 미션이 주어졌고, 보란 듯이 해내고 싶었다. 결과야 아직 모르고, 워낙 장기전이라 난 일단 6개월은 내 인생에 없다 셈 치고 살아야 할 노릇. 그래도 든든한 동료와 선배들이 있기에 버틴다. 깜냥은 안되지만 악으로 깡으로 견딘다.
남들이 쉬엄쉬엄 보내는 연말에 밤낮, 주말을 다 바쳐 악바리처럼 기사를 만들었다. 그렇게 12월은 무서운 속도로 흘러갔다.
독감 전문 기자가 될만큼, 독감에 관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관한 다양한 논문과 기사를 섭렵했다.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독감 환자 추이를 살폈다. 주위에 꽤 많은 사람들이 적잖이 '감염' 소식을 전해왔다. 현실은 영화 <감기> 속 처럼 무섭진 않았지만, 특히나 워킹맘에게 이런 전염병은 '등원 불허' 이슈이기 때문에, (완치 판정을 받고 의사의 확인서 없이는 몇날 며칠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등원을 할 수 없는) 매우 민감하다.
다행히 두 아들은, 특히나 바깥 활동을 하는 큰 아들은 "독감" 의심 없이 평온하게 12월을 흘려 보냈고, 주위에 많은 염려에도 불구하고 잘 견뎌냈다. 이번 겨울 가벼운 감기없이 지나는 듯 했다. 입방정을 떨면 금새 아프다는 걸 알기에, 입방정도 조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삶은 늘 이렇게 갑자기 돌발 상황으로, 반전을 선물하는 법)
이 한 겨울에, (물론 따뜻하긴 허다.) 다녀온 곳은 교회랑 어린이집 뿐인데, '수족구' 판정을 받았다.
지난 여름 방학 시즌, 복직과 동시에 '수족구' 바이러스로 '뇌수막염'을 앓은 최 첫째 씨. 같은 바이러스가 손, 발, 입에 오면 수족구 뇌로 가면 뇌수막염이라 했다. 아이가 터질듯한 두통을 호소했다고 하고(할머니 증언), 병원에 실려간(할비 트럭에 실려감) 아들은 부랴부랴 회사에서 뛰어온 나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축 늘어져 있었더랬다. 복직 이틀 째부터 3일의 휴가를 내리 써재끼고, 4박 5일의 입원 생활을 마치며 화려하게 복직 신고식을 치렀다. 입원하던 그날 밤, 최 둘째 씨가 다시 고열+손, 발, 입에 수포를 보이며 나를 병원 바닥에 주저앉게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무사히 기나긴 여름을 마치고, 아직 6개월은 안심해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월 2일에 수족구라니? 응? 엄마 휴가 다시 충전된거 어찌알고?? 엄마 휴가 리셋된거 어찌알고?
하아. 수족구보다 더 쎈 뇌수막염을 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수족구가 킹왕짱이었다. 그래서 지난 월요일 부부가 모두 늦게 퇴근해(남편은 그 잘난 최대리 승진 회식으로 몇날 며칠을 연달아 늦게 들어왔드랬다) 어머님댁에서 하루 '숙식'을 해결한 아들 둘. 그런데 화요일 어머님께 전화가 올때부터 느낌이 쎄했다.(어머님은 큰일이 아니면 연락이 없으시기 때문).
역시나, 그날 복직 둘째 날 내가 대회의실을 박차고 나와 받던 전화 그 이슈 그대로였다.
아니 왠 수족구. 지난 밤 아들들을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잠시 이미 두 아들들은 수족구 한복판에 놓여져 있었다.
특히 첫째는 입안은 물론, 목구멍, 혓바닥, 입천장, 아구 모두 하얀 수포와 농이 가득했다. 혀를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 아픈지, 말을 할 때 혀를 움직이지 않고 말을 했다. 침을 질질 흘렸고, 집으로 데려온 뒤 3시간이 지났을 까. (ㄱ)진상모드가 시작됐다.
잠은 10분 이상 연달아 자지 않았고, 10분 울다 10분 잠들고, 또 10분 울다 10분 잠들다를 밤새 반복했다. 최 첫째 겨울방학시즌이라 하루는 휴가를 낼 생각으로 (수)요일 휴가를 승인받았었는데, (그러려면 화요일에 조금 늦게까지 기사를 써야, 수요일 일을 덜고 휴가를...) 이노무 수족구때문에 조퇴...ㅜㅜ
한숨도 못자고 에미는 에미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애비는 (큰 도움 안되지만) 애비대로 (나름 눈치본다며 잠을 설침) 잠을 못잤다.
불행 중 다행이라 여겼던 건, 둘째도 이미 전염되어 격리 수용의 수고를 덜어준 것. 만약 격리를 해야 하면, 인력 배치가 두 배로 필요한 상황. 둘째는 계속 어머님 댁에 두고 첫째 수발만 들었어야 되겠지.
하지만, 둘을 데리고, 못쓴 기사를 쓰며, 한 놈은 TV로 한 놈은 스마트 폰을 손에 쥐어주며 기사를 막았다. 하아. 하루살이 인생이여. 이렇게 기사를 막아도 금방 사라지는 온라인 기사여.
게다가 오늘은 동아일보 과학면 마감하는 날, 역시나 발로 쓴 기사는 ㅜ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환경이(라고 쓰면 핑계겠지)..ㅜㅜ 넘나 구멍과 허점이 많다. 엄마아빠를 집으로 소환하고, 엄마아빠께 효원이를 맡기고 나왔다. ㅜㅜ 엄마 몸도 안좋다는데, 죄송할 따름.
온라인 기사 쓰면서, 기존에 과거에 두려워하던 공포증이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동아일보는 넘사벽이다.
동아일보 ㅜㅜ 넘나 어려움. ㅜㅜ , 다른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게 어렵다. 그래서 데스크 선배들이 기사를 뜯어 고쳐야 하고, 그러면 손이 더 많이 가니 부족한 기사를 넘기는 꼴이라 선배들께 죄송한 이 순간.
수족구 두 아들을 양가 부모님께 하나씩 맡겨 놓고 난 마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