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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꽁커리어 Feb 11. 2021

“도대체 어떻게 견뎌내 온 거니?”

세상 듣기 싫은 말과 새해 진짜 듣고 싶은 말

“나 아니었으면 넌 이미 끝났어”

“아~됐고, 일이나 잘해라”

“아~짜증 나, 쟤 뭐래니?”

“어디 가든 중간만 해도 돼”

“이거 하느라 지금까지 그랬건 거니?”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너까지 이럴래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해,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어' 버전으로 듣기 싫은 말들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예산도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라...”

“여기 사장(책임자) 나오라고 해”

‘유빽유직 무빽무직’, ‘내로남불’

“그게 얼마나 한다고 그 유난이야?”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나아가 전혀 같은 취급을 받고 싶지 않은 최상의 인간계에 살고 있는 듯한, 

이 세상 외부자들 버전의 듣기 싫은 말들이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안 봐도 훤하다”

“요즘 직장(군대, 학교) 좋아졌네”

“돈도 실력이다. 너네 부모를 원망해라”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보여주는 것에 너무 목메지 말아라”     


세상 골백번 뒤집혀도 당신 시절의 경험 몇 치로 우주 끝까지 밀고 가려는 절망스러운 

이들. 나 아닌 다른 이의 아픔 근처에도 가보지 않으려는 버전으로 듣기 싫은 말들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듣지 말라’ 했다. 

당대의 주역들은 길이 아니면 만들어가고, 말이 아니면 말을 섞지 말고 요즘처럼 ‘거리두기’를 하는 방식으로 버전 업해야 할 것 같다.

새해에는 그 누구보다 ‘나부터, 나 먼저’ 내 몸과 마음을 살피고 챙겨가야 할 때다.

그래야 과거나 미래의 나보다 지금의 나, 옳고 그름과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제대로 파악하고, 

함께 우기며 갈 때와 혼자서 표표히 승부 걸 때를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집 앞 행길에서 넘어오는 소리들이 보고 싶다.

소독차 지나가는 소리,

소방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

향두잡이와 상여꾼들의 상여소리들

그 소리들에 화들짝 뛰쳐나가곤 했었는데

지금 나는 무슨 소리에 그런 반가움과 설렘, 심지어 기대 가득한 흥분을 소환할 수 있을까. 

그 세상 듣기 좋은 말 말이다.     


회사 일이나 학업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과도하게 일시적으로 업무가 몰리거나 장시간 열공에 들어가다 보면 그럴 수 있다. 이는 그 일과 공부의 결과에 따른 반대급부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비롯되거나 맺음이 잘 안될 때는 상당한 충격파를 몰고 오기 마련이다. 정말 앞날이 아득하고 버거울 때 진짜 듣기 좋은 말들은 자신의 내성과 이겨내려는 의지의 핵심 변수가 된다.     


드라마야 뭐 갈등이 있고, 오해가 쌓여도 꼭 그중에 메신저나 특사 역할을 하는 이가 오해와 반목을 풀어주고, 극적인 화해무드가 터지면서 반전을 맞곤 한다.

근데 우리 일상은 아니다. 되레 더 깊어지고 곪아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소통하기보다는 고슴도치가 되고 

섬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곤 한다.     

호언장담했던 프로젝트일수록 동료의 훈수가 간절해질 때,

궁지에 몰릴수록 '그럴 수 있어'라며 툭툭 털어주는 선배가 그리울 때, 

절망스러운 날, 술 한잔에 쓰디쓴 미소를 애써지어 보이지만 

차라리 울라며 잔을 채워주던 친구가 보고 싶을 때, 

정말 이런 말들이 나에게 나지막이 들려온다면...     


“힘들었겠다. 도대체 어떻게 견뎌내 왔니?”

“너니까 가능했던 거야”

“네가 없어 보여 주는 거 아냐, 마음이다 친구야”

“내가 존경하고 인정할 수 있을 정도라 너 사랑한 거야”

“야 무슨 일 있어서 전화하냐. 그냥 궁금해서 한 거야, 보고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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