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꽁커리어 Jan 10. 2021

정말 못 견딜 만큼 힘든 적이 있었나요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

지난 연말 SNS에서 받아본 심쿵한 우스갯소리를 담은 메시지가 눈길을 끌었다.

“신은 버틸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는데, 날 이만큼 강한 사람으로 보신 건지 묻고 싶다”는 문구. 빵 터질 새도 없이 애잔한 마음만 남는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나뉜다. 

육체적인 고통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리적 내성 외에도 관점과 의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다고 한다. 여성은 산고의 고통이나 남성은 군대에서의 훈련통일까. 이 고통이 처음인지, 그 아픔에 대한 반대급부는 무엇인 지, 견디고 나면 더 나아지는 게 있는지, 또는 내가 자처한 건지, 예상 못한 아픔이었는지 등에 따라 아픔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정도의 차이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더 극명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 정신적인 고통이다.

정신적인 고통의 가장 큰 요인은 나 스스로 자각하고 구속하고 규정짓는데서 발생한 자의적인 고통과 남들로부터 받는 정신적인 고통으로 역시 구분된다.

어떤 측면이든 정신적인 고통이 더 크고 오래간다는 통설이 있지만 주된 요인은 사람과의 문제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옛말이 격언처럼 내려오듯 지금에도 ‘사람을 조심해라’, ‘사람 관계가 제일 어렵다’라는 말들은 감히 부정하기 어렵다.     


가장 내편이고 가장 든든한 울타리인 가족이 가장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기도 하고, 세상 끝까지 가고 싶은 절친이나 소울메이트가 나를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존경의 대상인 스승이나 선배가 평생의 콤플렉스를 남기기도 한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기도 하고 돌아올 수 없는 지경까지 가기도 한다. 

직장인은 또 다르다. 흔히들 ‘회사나 비전 보고 들어왔다가 사람 때문에 퇴사한다’고 한다.

앞선 힘듦과는 결이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은 있다. 누군가에게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해받지 못했을 때 그 고통이나 어려움이 배가된다는 것이다.     


#경력직 관리자 면접 현장

“정말 역대급으로(?) 힘들었던 일이 있었나요?

oo와 oo가 갈등이 심했는데 중간 입장에서 너무 힘들었다. 동료가 그만둬서 본인이 그 일까지 도맡게 됐는데 선배의 도움으로 무난하게 해냈다” 자화자찬으로 귀결되는데 왠지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신규사업으로 정부위탁사업 계획서를 지역별로 9곳을 한 번에 준비를 했어야 했다는 지원자. 운영상의 과부하를 우려해 절반 규모로 줄여 내실 있게 하자고 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어차피 9곳 모두를 신청해야 한다면 무조건 다 되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준비했단다. 시간과의 싸움, 협업해왔던 팀장들과의 알력, 본부장의 이해되지 않는 경영행태 등 난감하고 버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단다. 타 부서 임직원들은 예정된 일정이긴 했으나 모두 해외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터였다. 눈시울이 붉어지나 싶더니... “죄송합니다”라며 눈물을 보인다.


사람이 힘들어하는 것은 사랑받지 못해서도, 곁에 친구가 없어서도, 갑자기 삶이 허무해져서도 아니다. 그냥 어느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이해받지 못할 때가 아니겠는가.      


또 다른 측면에서는 ’ 현상유지형 문제 대응‘, ’ 발전개선형 문제 해결‘은 마음 상태와 퍼포먼스가 달리 나온다. 현상유지형은 수동적, 방어적일 수밖에 없고 제대로 못하면 기본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는 치명적인 상황이 된다. 반면 발전개선형은 선제적, 적극적이어서 주도성과 성취감을 가지며 문제가 생겨도 가능성과 위험요인을 함께 보는 개선의 여지를 발견하게 된다. 가장 큰 차이의 배경은 당사자의 주도성이 있는지 여부다. 이런 차이는 갈등관리나 관계 회복력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된다.     


언젠가 본 병원 드라마에서 잊히지 않은 대사.

‘너, 나 아니었으면 환자 죽었어’,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뭔 생각으로 일하는데?’

이 정도면 이해받는 건 고사하고 나의 존재감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결국 본인의 존재감이 아닐까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 말이다.

그것은 정체성과 주도성이다. 정확히 말하면 정체성에 기반한 주도성이다.

자신 있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하고 개선하고 마무리해보는 것.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 두려움, 의심, 지적과 비난 등은 충분히 감수하고 수용하거나 정면 돌파해야 한다. 처음 단계의 정체성과 주도성을 잃지 않았다면 극복 가능하다.      


조직 내 핵심 결정권자의 비전과 달성지점을 공유하고 내 역할 가치와 방향성을 잃지 않으면 과정상의 어려움과 변수들은 충분히 극복 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자기 효능감과 성취감이 생겨나고 포텐까지 터지는 경우도 있다. 조직의 인정과 포상까지 따르면 이게 진짜 ‘대박’이다. 조직의 인정과 포상 그 자체보다 자신의 역량과 전문성이 객관적으로 검증됐다는 것이 더 기념비적인 대박사건이기 때문이다. 

조직 내 갈등관리는 자신이나 부서의 역할과 미션에 대한 비전과 목표의식이 선명하다면 다스려갈 수 있는 것이다. 직장이 아닌 여타 사회적 관계에서도 자신에 대한 정체성과 주도적 가치관이 분명하다면 소소한 질투나 견제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고 또한 다스려갈 수 있는 내공과 근육이 생겨났다는 뜻이다.


앞서 대박사건이라 함은 인정받은 그 내공의 힘으로 자신의 경력계획과 비전을 기반으로 더 멀리 보는 더 큰 생각을 다져갈 수가 있다. 목전의 갈등을 이해와 포기의 과정으로 보게 되고, 아득하게 꼬인 상황들도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해낼 수가 있다. 답이 안 보일 것 같은 힘든 사람 관계도, 정신적 갈등도 충분히 관리될 수 있다. 관리가 잘 안되더라도 부차적인 요소로 내려다볼 수 있는 여유와 힘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대체 어떻게 견뎌내 온 거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