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후 들게 된 불편한 생각 둘
계절 바뀐 바람이 매서워진 것을 금방 온몸으로 느끼고
책상 위 챙기던 서류 하나 보이지 않아도 금방 알아차리면서도....
아무 용건없이 걸려온 옛친구의 실없는 소리나,
불편했던 직장 동료의 엄지척에도
퇴근길 지하철 차창에 시들어 말라버린듯한 내 모습을 보고도
그 많았던 그리운 것들마저 깡그리 잊혀져 간다는 것을 몰랐다.
소중한 사람들, 남은 인연들, 그저 반가운 만남까지 고단해하는 이 굴레도 몰랐다.
그러다 올 한해가 끝자락에 와왔음을 알았다.
연말 세모의 위력은 늘 싫지않은 분주함을 동반하지만
올해의 연말은 텅 빈듯하면서 셀틈 없이 꽉 들어찬 생각 덩어리들 때문에
잠깐이기를 바라는 혼돈에 빠져버렸다. 마치 텅빈 듯하면서도 가득차있는 듯한 묘한 불편함 때문이다.
초유의 코로나19로 일상의 물리적인 생활 패턴이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사실 변화의 정도가 아닌 전혀 타의적으로, 전격적으로, 광폭으로 밀려가는 듯한 일상의 프레임은 갈수록 부적응과 불편함만 확대된다. 우리의 의식과 행동의지까지 변화시켜버린 것 같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듯이 말이죠
그래서일까요..
# 불편한 생각, 그래서 다른 사람들 생각이 궁금한 것. 하나
재택근무 명이 떨어졌다.
업무보고 서식과 시간, 일단위, 주단위 수행미션과 과제, 협업과 업무연계를 위한 선행업무와 체크리스트 등
재택근무와 원격보고, 진행업무 공유를 위한 지침과 함께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관리자급이 아니라면 아주 가끔씩이라도 회사에 나올 일은 없었다.
그렇게 한달 반이 흘렀다. 재택근무가 풀려 출근했다. 출근이 아닌 오랜만의 외출같다.
반가웠다. 새로웠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반가움은 부담으로 덧씌워지고 새로움은 무감한 일상으로 탈색되어간다.
마치 놀라운 사무실 버전의 복원력같다.
또다시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살핀다. 잠깐 확인할 게 있어 직원을 부르려다 먼저 눈치를 살피고, 고객과 통화 후 힘들어하는 직원의 혼자말들과 작은 한숨소리도 마음에 거슬린다. 껄끄러워하는 직원의 도움이 필요한 업무를 지시해야만 해서다.
오랫동안 조직이라는 시공간에서 함께 부대껴온 사람들이라 친하고 보고싶은 동료들이라 생각했을까?
아니지 싶다. 군대 다녀온 분들은 알 것이다. 제대 앞두고 “사회에서 꼭 다시 만나자” 하지만 하급자인 경우는 대부분 그렇지 않다. 학교 동창의 경우는 약간 다를까? 경쟁이나 대립구도가 아니고 상하간, 부서간, 동료간의 이해관계가 없어서 더 보고싶고 만나면 감정 터지는 것일까?
간단없이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사람보다는 능력을, 가치관보다는 가능성을,
가치보다는 결과물을, 비전보다는 눈앞의 성과를 보아야 하는 조직의 생리때문일까?
사람, 비전, 가치가 선명하게 유지되더라도 지금 직장은 그것들을 실현해가기 위해 거쳐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서일까? 진정 그런 연유에서일까?
# 불편한 생각, 그래서 다른 사람들 생각이 궁금한 것. 둘
재택근무때는 그냥 지시하고 확인하고 보완이나 추가지시면 끝이었다.
해야할 업무 기준과 처리량, 타이밍, 결과와 피드백, 평가 프로세스가 의외로 잘 작동된 배경도 있을 것이다.
사람보다 결과물에, 분위기 살피는 눈치코치보다 업무의 핵심과 팩트에 집중할 수 있고, 회사 상황보다 자기중심의 의견과 소신 발언이 가능해졌다.
차 한잔 하다가 알게 된 상사의 기분 상태까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 쌍수들어 환영할 정도는 아니어도 회사의 제도와 시스템대로 일하고, 성과내고, 공정하게 평가받고 그 기준과 결과에 따라 보상받고 인정받는 것. 딱 거기까지라면 워라벨이 그리 멀리있지 않을 듯 싶다.
보이는데로, 기준데로, 사실데로 가지않는 변수와 불확실성, 업무 외적인 노력과 정치함들이 뒤섞이는 현실조직은 또 다시 추가적인 나의 시간과 감정과 기운이 들어가게 한다.
이제 문제는 일부 트렌드이긴 하나 젊은 비즈니스맨들은 원격근무를 통해 이미 자신들만의 오너쉽과 스타일시한 워라벨을 동시에 임팩트있게 느껴버렸다.
정말 향후 회사조직과 분위기가 궁금해진다.
회사인간들은 각자 혼자서 가는 길처럼 외로운 고민에도 휩싸일 것이고,
옳았는 지 보다, 방법의 문제였는 지보다, 이겼는 지와 결과로서만 갈무리 되는 현실에서 동료에게 묻느니,
일상적인 안부일 수밖에 없고
함께 고민하느니, 깊은 공감에 갈 수가 없다.
새해는 코로나가 물러가지 않더라도 감히 회사 안에서 '사람'들을 생각해볼 엄두를 꼭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