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직원때 글을 잘쓰고 관리자는 말을 잘해야
조직의 허리, 미드필더, 소통의 중간자, 노조원과 회사 경영층의 회색지대 인간들.
성과 창출의 핵심이면서 주변인, 선수에서 코치로 승격되지만 플레잉코치로서의 역할이 더 무거워지는 자리. 그래서 향후 조직의 핵심리더로 갈지, 변방으로 떨어질지 갈림길에 선 중간자.
대기업은 팀장이 부장, 이사급도 있지만 구성원 1명도 없는 중소기업의 나홀로 팀장도 있다.
하여튼 어려운 자리다.
팀장은 조직 내 관리자의 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권한과 책임을 포함한 업무영역의 확장보다 업무대응과 처리의 깊이가 달라져야함을
의미한다.
생각과 고민의 질도 확연 달라진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다. 기술자(전문가)가 아닌 관리자여서 조직원들로부터의 미움과 원성을 마다하지 않을 용기도 있어야 한다. 동료나 상사를 전략적으로 실드쳐주는 부하직원은 봤어도 관리자나 상사를 찰나의 진심으로라도 띄워주는 구성원을 본 적이 없다. 자신의 부족함과 상대의 강점을 인정해주는 여유와 배려가 그래서 절실해진다. 팀장으로 올라서는 순간.
더 확실한 방법은 자기 위치와 입지는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부지런히 벤치마킹하고 은밀히 터득해가야하는 대목이다. 본인이 체급을 올리고 내성과 내공을 키워가야 한다는 의미다.
갑자기 너무 힘들다고, 버겁다고 함부로 조직 내에서의 고해성사는 말라.
전혀 급이 다른 나만의 시그니처 실적도 필요하지만 주변과 구성원들에 대한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 고용노동부 위탁사업 선정을 위한 우리회사 강남센터의 운영기관 선정 PT.
재작년 정부지원 사업의 예산 심의를 위한 감사에서 경고를 받는 바람에 1년간 사후관리만 하다가 절치부심해서 만 1년만에 다시 사업자 선정심사에 나서게 된 중요한 일전이다. PT는 강남센터장이 나선다.
10분간의 PT가 지난 2년과 향후 센터의 미래까지 달렸다. 선정이 안되면 그 센터는 접어야 한다.
구성원도 전환배치되거나 고용계약 종료로 제 갈길 가야 한다.
심사위원장의 시작시그널이 떨어졌다.
PT 기관과 발표자의 소개멘트에서부터 센터장의 떨림이 전해진다. 살짝 불안해진다.
기관과 소속 구성원들은 이 사업의 가치와 미션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사업을 해오면서 차오르는 자부심과 소명의식을 잃지 않으려 했다는 시작멘트도 어지간히 고민했단다.
그리고 지난해 경고를 받게 된 불가피성에 대한 억울함과 해당 센터 관리자로서의 통렬한 반성과 짙은 참회의 메시지도 잃지 않았다.
이후 센터가 어떻게 개선하고 보완해갔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이어졌다.
다소 멘트가 빨라지나 싶었다. 그런데, 무엇이 바뀌었고 나아졌는 지보다 환골탈태하려 어떻게 애를 쓰고 서로가 부닥치고 감내해온 이야기들을 드러내면서 발표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내용이 또렷하게 박히기 시작했다.
해당사업은 상담업무가 대부분인 상담원들이라 워낙 자존감과 개성이 뚜렷한데다 절반 이상의 구성원이 외부(지사나 센터)에서 근무하다 보니 자체적인 관리체계나 조직문화 구축이 가장 큰 역점이고 기반요소다.
마지막 3분정도 남은 상황. 올해 재선정이 되기 위해 어떻게 절치부심했고 또 달라지고 업그레이드된 면모를 보여줄 타이밍이다. 센터장은 시작 전 마지막 3분에 승부걸었다 했다.
지난 해 이맘때 우리센터가 맥없이 무너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안팎의 상황에 대해 억울함과 간절함이 뒤범벅된 시간들이었음을 반추했다.
한단어, 한문장씩 꾹꾹 눌러담아 얘기하듯 하더니 멘트를 갑자기 중단했다. 느닷없는 침묵은 어색했다. 불안하게 느껴질 정도의 침묵의 시간이 더 흘렀다.
7명 심사위원들의 분위기는 묘했다. 거부감은 분명 아닌 듯 한데 ‘이건 뭐지’라는 생소한 진정성이었을까.
하마터면 놓칠뻔한 한두분 심사위원의 끄덕거림도 있었다.
시작 멘트때 살짝 떨었던 센터장은 작정하듯 다음 워딩을 천천히 시작했다.
마치 곡예하는 스토리텔러처럼.
그동안 구성원들을 다독이고 일갈하면서 보듬어왔던 시간부터 1년간 일관되게 지켜왔던 약속들과 증명된 그 변화의 결과들을 단 3문장으로 마무리했다.
‘우리는 그 사업을 간절히 지속하고 싶고, 평가에 대한 억울함을 기대감으로 바꾸고 싶고, 연내에 그 기대감을 현실로 증명해서 민간위탁의 새로운 모델을 이 자리에서 다시 보여드리고 싶다고’
언젠가 다른 센터의 신임 센터장과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
구성원들과의 관계나 동기부여가 어렵다. 힘들다고 버거워하지 말고 감내할 마음과 의지가 먼저 있는 지 자문해보라고 했다.(나도 그랬던가 싶지만) 감내하고자 한다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지도 말이다.
직원들에게 제대로 쓴소리하고도 관계가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진정성과 절박한 의지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관리자 리더십교육을 받고 인문 서적을 읽고 새벽부터 조찬회나 세미나를 쫓아다니지 않던가
평직원 시절엔 글을 잘 쓰고, 관리자가 되면 말을 잘해야 한다.
입는 것이나 좋은 굿즈보다는 먹는 것, 좋은 음식에 투자하라고 하고싶다.
어쨌거나, 몸이 건강하고 기운있어야 팀장으로서의 고행도 이겨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심사장을 나서면서 강남센터장에게 물었다.
PT 마무리를 앞두고 그 ‘침묵’은 의도된 것이었는지, 마냥 해맑은 표정이었던 센터장은
“실장님, 전 한때 꿈이 개그맨이었어요. 개그맨은 웃음도 주지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