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시간이 그만큼이나 됐나..?"
지켜낸 마음들/시간이 허락된 드문 선물
가끔, 시간은 그리움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그 멈춤은, 우리가 품고 살아온
사랑의 무게만큼 더 깊이 다가온다.
이번 여행은 그런 시간이 허락된 드문 선물이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고 돌아왔다.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만나기 위해 떠난 2박 3일의 짧은 여정.
그 며칠 동안 나는 평소의 모든 '역할'을 잠시 내려놓았다.
엄마도, 아내도, 주부도 아닌 온전한 ‘나’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마치 오래 참고 있던 숨을 내쉬듯,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가는 길목에서,
내가 잊고 있던 '딸'이라는 존재를 다시 만났다.
아주 모처럼 함께했던 엄마와의 시간은
무척 반가웠고 정겨웠다.
언제 공백의 시간이 있었냐는 듯이 예전의 일상을 찾은 듯했다.
엄마는 여든일곱.
하지만 엄마는 스스로를 여든 하나로 기억하신다.
요양원에 들어가신 지 1년이 지났다는 계산이시다.
치매라는 시간이, 엄마의 연도를 조금 덜어간 셈이다.
7년 만의 외출.
그 긴 세월이 엄마에게 짧게 느껴진다는 건,
어쩌면 다행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안쓰럽기만 하다.
기억의 창문은 닫히고,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엄마는 계셨다.
‘우리에겐 분명히 7년이 흘렀는데,
엄마에겐 그저 잠깐의 흐름이었구나...’
햇살 좋은 5월의 마지막 날.
오랜만의 외출이 좋아서일까.
엄마는 꽃처럼 환하게 웃고 계셨다.
하반신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하고 계시지만,
마음만은 이미 집을 향해 달리고 계셨다.
‘오랜 기다림으로 기쁨을 맞이하는 순간’처럼.
엄마의 집은 새롭게 단장되어, 낯선 새집이 되어 있었다.
큰 오빠가 자비를 들여 기존의 집을 리모델링한 지가 6개월이 지났다..
몰라보게 달라진 집을 본 엄마는 놀라움과 함께 걱정 섞인 말씀을 꺼내셨다.
“그동안 번 돈 여기 다 들어간 거 아이가?”
늘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염려하시던 엄마는
집을 수리하느라 든 비용마저도 부담이었을까 봐 염려하셨던 모양이다.
늘 ‘자기 몫의 삶’보다 ‘자식의 몫’을 더 생각하셨던 엄마.
평생 농사일로 자식들을 키워오셨던 터라,
그 삶에 부모님의 시간은 늘 절약과 배려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셨기에 자식에 대한 걱정이 먼저이셨던 것이다.
그날 엄마는 좋아하시던 백숙을 드셨다.
갖은 약재를 넣고 가마솥에서 정성껏 고아낸 백숙.
맛있다고 하시면서도 겨우 서너 숟갈. 수박도 쪼끔.
그나마 즐겨 드시던 쑥떡, 영양떡마저도 못 드신다.
기도가 막힐까 염려해서 내린 처방조치란다.
좋아하는 걸 참아야 하는 노년의 식탁이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차마 삼키기 어려웠다.
하지만, 엄마의 진짜 시간은
다른 데 있었다.
오래 함께 살아온 동네 어르신들과의 만남이셨다.
엄마는 그때 가장 빛나게 웃으셨다.
거실에서 마당까지, 도란도란 들리는 웃음소리.
“세상에, 그새 왜 이렇게 늙었어?”
“그새 형님은 더 이뻐지셨네.”
서로를 반가워하며 던지는 말들이 마치 시처럼, 노래처럼 흘렀다.
어쩌면 자식보다 더 깊은 정을 나눈 사이지 않을까.
그 시간 동안 엄마는 ‘요양원에 계신 분’이 아니라,
누군가의 친구이자, 이웃이자, 사랑받는 사람이셨다.
그렇게 웃음과 눈물이 섞인 대화들이
온 집안을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또 이런 시간이 주어질 수 있기를...’
요양원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벌써 시간이 그만큼이나 됐나…?”
그 한마디에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요양원에서 지내오셨던 시간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겠다던 말씀들.
그냥 멍하니 있다던 말씀들.
그렇게 엄마는 하루 두 끼 식사와 약에 의지해
그 따분하고 무료한 나날을 살아내고 계셨기에 마음이 더 아려왔다.
나는 그 하루들이 몇 번이나 더 남아 있을지 헤아려보며,
오늘의 햇살조차 괜스레 눈물겹게 다가왔다.
엄마는 다시 요양원 침대에 누우셨다.
지금은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실지,
또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실지.
그럼에도 그날이 귀하게 남은 것은
우리 모두에게 기적 같은 시간으로 남아있어서다.
‘그래도 이런 날도 있네.’
라며, 감사할 수 있는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 거제도에 들렀다.
엄마가 좋아하시던 해산물과 누룩식초가 어우러진 여름의 맛.
새콤달콤했던 물회의 맛을 다시 느끼며
젊었던 시절의 엄마가 문득 그리워졌다.
엄마가 잘 만드시던 누룩식초.
이젠 그 맛도, 그 시간도
엄마에겐 닿지 못하는 아득한 풍경이 되었다.
엄마의 시간은 우리가 놓쳐온 느림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그 시간이 얼마만큼 더 허락될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기도한다.
그 안에 사랑이 머물길.
그 안에 엄마가 웃으시길.
에필로그
한 끼의 식사, 한 번의 만남,
한 순간의 웃음이 이토록 귀한 것임을
엄마의 시간은 나에게 알려준다.
우리도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 느린 시간이 되겠지.
그러니 지금, 따뜻하게 바라보고
조용히 손잡아주자.
그것이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