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결국, 나에게 진실해지는 길을 걷는 것
지켜낸 마음들/이런 마음조차 사랑할 수 있기를
by
마음키퍼
Jun 30. 2025
어느 날 불쑥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말 한마디조차 꺼내지 못한 나,
왜인지도 모른 채 주눅 들어 있었던 그날의 나.
돌이켜 보면 누구도 나를 막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멈췄다.
그때의 나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프로젝트를 위한 자리, 처음엔 그냥 기뻤다.
내가 그 자리에 초대받았다는 것,
그 자체로도 감사했고 설렘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 자리 안에 들어서니
낯선 기류가 피부에 먼저 와닿았다.
이미 서로를 익숙하게 알고 있는 듯한 사람들 사이,
나는 그저 거기에 끼어 있는 한 조각의 그림자였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의 세계를 펼쳐내고 있을 때
나는 입이 얼어붙은 사람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말을 못 한 게 아니라,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할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 상황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나를 무시하지 않았고,
누구도 나를 배제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부드러운 침묵 속에는
‘너는 우리와 조금 달라’라는 무언의 경계가 분명 존재했다.
눈치 빠른 나는 그 분위기를 너무도 빨리 알아채 버렸고,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내가 여기 왜 왔을까.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 후로 오랫동안 그날의 침묵은 나를 괴롭혔다.
왜 말을 못 했을까?
왜 이름조차 밝히지 못했을까?
그 자리가 어색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나를 스스로 거기서 빼내고 싶었던 걸까.
나중에 안 사실 하나.
그때 그 자리는 일원들 서로 간에 협의가 되지 않은
일방적인 자리였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그들을 탓하지 못하고, 나만 자책하고 있는 거지?’
‘그 자리를 애매하게 만든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잖아.’
그런데도 나는 오로지 나만 탓하며
그날의 나를 꾸짖고만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속 깊이 내려가 보면
늘 따라다니던 마음의 그림자 하나가 있다.
‘학군’
왜 늘 그 문제에 부딪히면 작아지는 걸까.
왜 나는 학군 하나 때문에 자격 없는 사람처럼
기가 죽고, 작아지고, 위축되어 있어야 했을까.
분노 섞인 목소리가 안에서 울린다.
“그래. 너 스스로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그 수준에서 살면 되잖아.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말고 그냥 주제를 알고 살아.”
아프지만 정확한 말.
그건 결국 나의 마음이 나에게 건네는 가장 솔직한 질책이었다.
정체성?
그건 어쩌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인지도 모른다.
자꾸 어울리지 못하는 자리에 기대려 하지 말고,
내 마음이 편안한 자리부터 나를 놓아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불편한 마음의 조각들을 안고
나는 전남 무안의 백련지를 찾았다.
연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안에서 나도 함께 흔들렸다.
고요한 연꽃 사이를 걷던 그때,
문득, 이곳을 다녀가신 법정스님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너 자신이 어떤 모습이기를 원하는가?”
그 물음은 오랫동안 꺼내지 못했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 질문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하얀 연꽃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말하지 못했던 그날의 나,
주눅 들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나,
그리고 지금 그 기억을 꺼내고 있는 나,
그 모든 내가 결국 ‘나’였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끄러운 나의 마음을
하얀 연꽃 위에 오롯이 올려놓았다.
이런 마음조차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더 이상 그날의 침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움마저도 나의 일부로 끌어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쩌면, 진짜 성장은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못했던 나조차도 나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에필로그
그때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지금의 나는 그날의 나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날의 침묵도, 위축도, 심지어 자책과 후회마저도
내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여정이었음을.
사람들과의 거리보다
더 좁히기 어려운 거리가 있다면,
바로, 나 자신과의 거리다.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나는 여전히 걷고 있다.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뒤돌아보면서도
조금씩, 나에게로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삶은 결국,
타인에게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진실해지는 길을 걷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때의 나는 누구였고,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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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사람 참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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