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 사람 참 사랑스럽다.

지켜낸 마음들/사랑의 또 다른 언어

by 마음키퍼

사랑은 거창한 언어보다,

때로는 투정 섞인 짜증에서

그 마음의 진심이 드러날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해져서,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만 솔직해지는 걸지도 모른다.

이 글은 그런 날, 그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를 뵈러 고향집에 다녀오던 날이었다.

멀고도 익숙한 그 길.

혼자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무리하면

눈에 실핏줄이 잘 터지는 것을 염려한 남편이 나섰다.

"나 같은 남편 없어."

라며. 서울에서 동대구까지 KTX를 타고,

다시 차로 네 시간을 넘게 운전해 온 사람.

누군가에겐 그 말이 허세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의 얼굴엔 장거리 여행의 고단함보다

창밖 풍경을 즐기며 책을 읽은 소년 같은 여유가 담겨 있었다.


"이런 여행도 참 좋네."

싱긋 웃는 그 표정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지며,

편안한 여행자가 될 수 있었다..


기분 좋게 휴게소에도 들러 커피도 마시고,

드라이브하듯이 가볍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저 그런 하루가 특별해지는 순간들이었다.

집에 도착해, 나는 작은 보답을 준비하였다.

셋째 오빠가 직접 길러 갓 수확한 참나물과 미나리, 햇부추와 상추 등

그 신선한 재료들로 몇 가지 나물반찬을 정성스레 만들었다.

긴 여정 끝에 지친 사람을 위한

사랑을 듬뿍 담은 저녁 한 상이었다.

"예전에 절에서 먹었던 밥 같아. 너무 맛있어."

남편은 입맛을 다시며

미나리와 참나물을 나물밥처럼 비벼 먹었다.

마지막엔 따끈한 누룽지 숭늉 한 그릇으로 여운까지 마무리.

그 만족스러운 표정에,


‘아, 내가 참 사랑받고 살긴 하는가 보네!’

그런 마음이 꽉 찼을 무렵, 남편이 말했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당신은 천천히 정리해."

평소처럼 다정한 그였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주방을 맡기고 정리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나…, 설거지통 앞에서 서 있던 사랑에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처음엔 괜찮았는데.

빈 그릇을 하나씩 받아 수세미질을 하던 남편의 손.

하지만 그 그릇이 점점 쌓여가자

그의 마음에도 피로가 쌓여갔던 걸까.


“아유,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누룽지만 먹을 걸…,

뭐 한다고 서울에서 기차 타고 내려가, 굳이 먼 길 운전까지 하고…,

밥 해준다고 했을 때 그냥 사 먹자고 말할 걸…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그렇게 혼잣말처럼,

분명 내게 들리도록 투덜거리는 남편.

그 모습에 나는 당황스럽고도 웃음이 났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설거지통 옆으로 스친 그의 표정은

어느새 험상궂게 굳어 있었다.

‘뭐가 문제일까.’라는 걱정도 잠시였다. ,

지금 이 짜증은 오늘 그가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는지를

비로소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지치고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모르고

하자면 하자는 대로 따랐던 내가 오히려 미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화를 내기보다는 다정하게 다독이듯이 말하였다.


“그만해도 돼요. 고생했어요. 이제 내가 할게요.”


사랑은 거창하지 않았다.

기차로 두 시간, 운전석에 앉은 네 시간,

그리고 그 끝에 찾아온 설거지까지.

그 모든 것이 오늘의 사랑이었기에

그만하면 충분하다 말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 먼 길을 달려온 그 사람.

말없이 기다려주고, 반찬 하나에 웃고,

하지만 그리 대단하지 않은 설거지 앞에서

아이처럼 투정 부리는 사람.

그 모든 순간이 지나고 나니

나는 이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금 마음 깊이 새겨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 그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사랑은 가끔, 그렇게 설거지 앞에서 멈췄다가

한 번 웃고, 다시 걷는 것인지도 모른다.


에필로그

사랑은 항상 부드럽지 않다.

때론 미운 말투 속에, 고단한 하루의 끝에서

"그래도 너라서 좋다"는 마음이 숨어 있다.


산책 삼아 들른 거창 창포원에서, 조용히

붓꽃을 보며 장미를 보며 걷던 그 시간이

우리의 마음을 다시 다정하게 이어주었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매일 배우며 살아간다.